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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 이후 벌어지는 전쟁 양상은 정치적 시각이든 일반인의 관점이든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많다.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던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 건은 이미 목적을 달성했고 친러 반군 지역인 동부의 돈바스도 점령했는데도 전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전쟁을 치르며 주고받는 상처가 너무 크고 후유증도 심각한데 말이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제재를 받아 심각한 경제 위기에 직면했으며, 국제 사회에서 신뢰를 잃게 되어 앞으로 예전처럼 제대로 된 위상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푸틴은 이미 전범이 되어 있다. 그럼에도 푸틴은 확실하게 승리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전혀 물러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외신들이 한결같이 전하는 내용 중 하나가 푸틴이 예스맨인 핵심 측근들에 둘러싸여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받지 못한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 필요하다’, ‘전쟁을 하면 며칠 내에 끝낼 수 있다’는 등 푸틴이 듣고 싶어 하는 정보와 조언만이 보고된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판단이 올바를 리 없다.
이처럼 푸틴과 같은 독재자 주변에는 바른말은 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초반에 바른말을 하려던 사람들은 사라지거나 제거되었고 지금은 푸틴이 듣기 좋아하는 얘기를 하거나 푸틴의 얘기에 무조건 ‘예스’하는 사람들로 측근 그룹이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지금까지 알려진 푸틴의 독특한 성향을 고려하면 이 전쟁의 끝이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예측할 수 있는 것은 푸틴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것과 러시아 국민이 독재자 푸틴으로 인해 겪게 될 고통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잘못된 방향으로 국가를 이끌면 그로 인해 수많은 국민은 가련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히틀러가 대표적이다. 처음엔 부국강병 정책으로 1차 대전 이후 패전국으로 전락한 독일 국민에게 희망과 꿈을 잠시 줬는지 모르겠지만, 궁극적으론 침략 전쟁을 일으켜 독일은 물론 유럽 전체 국가에 전쟁의 참화를 겪게 하였으며 유대인 수백만 명을 학살한 2차 대전의 전범이 아니던가.
히틀러라는 독재자의 야욕으로 일어난 전쟁이지만 거기엔 이를 제지하지도 못하고 예스만 남발하며 히틀러 눈에 들려고만 했던 괴벨스 등 이너서클에 있던 핵심 측근들이 있었다. 푸틴을 보는 것은 데자뷰다.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고경영자는 조직의 전략적 방향을 정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대부분 더 좋은 판단을 위해 다양한 정보 리포트를 받고 또 참모들의 조언을 듣는다. 좋은 리더, 좋은 기업일수록 소통 프로세스가 잘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소통의 절차를 무시하고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면, 그리고 이러한 경우가 빈번해지면 경영에서도 독재자가 된다.
경영에서 독재자가 존재하는 경우는 보통 대주주인 오너家에서 사례를 많이 본다. 못된 성질에다 어떤 견제도 받지 않으니 폭주하는 경우다. 대기업 총수가 사장단 회의시간에 마음에 들지 않는 발언이 나오자 핸드폰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는 전설적인 얘기가 있듯 그릇된 성향은 독재자로 가기 쉽다. 그런 사람에게 올바른 소리 하나 못하는 예스맨들만 주변에 머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또한, 오너는 아니어도 애초부터 독재적 성향이 있거나 장기집권하는 최고경영자가 초심을 잃으면서 독재화가 된 사례도 있다. 조직에서 독재적 성격의 보유자가 승승장구하며 대표이사에 오르면 필시 독재 경영자가 된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오래 집권하다 보면 쓴 말, 바른말을 듣기 싫어하면서 독재화가 되기도 한다.
최고경영자의 독재 여부는 대체로 임원 회의를 어떻게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CEO 혼자만 얘기하고, 나머지는 동조만 하고 의견을 내지 않는다면 그 CEO는 십중팔구 독재 경영자다. 거기서 조금이라도 반대 시각으로 의견을 냈다가는 호된 질책을 받을 수 있기에 입을 닫는 것이다. 사례를 보자.
H사의 J사장은 전문 경영인으로 경영의 모든 것을 통제하길 원했다. J사장은 회의시간에 자신의 의견을 많이 또 강하게 얘기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참석자의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호되게 질책하곤 했다. 그러니 모든 참석자는 간단한 호응만 할 뿐 발언을 자제했다. 문제는 계속 입을 닫고 있다 보니 다른 사업부 발표가 있을 때 누구도 질문하지 않는 것이었다. 괜히 질문했다 질책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J사장은 왜 질문도 하지 않냐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임원들이 다른 사업부 일에 아무 관심이 없다며 질책한 것이다. 이후 웃기는 일이 벌어졌다. 회의에 들어오기 전 누가 어떤 질문을 할지 그리고 어떻게 답변을 할지 짜고 들어온다는 것이다. 사장의 호통에 임원들이 질의응답을 짜고 치는 웃지 못할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대기업인 H사의 일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J사장은 제대로 된 정보와 조언을 받기 어려웠고 그래서인지 핵심 측근 임원 몇 명에겐 주요 보직을 맡기며 이들만큼은 확실히 챙겼다. 핵심 측근을 제외한 나머지 임원들은 J사장을 두려워하고 조심스러워하며 이를 견뎌야 했다.
J사장은 한때 장수 모드에 들어갔다가 결국엔 옷을 벗고 그 자리에서 내려왔다. J사장에게 우군이 많이 있을 리 없었고 그래서 전후좌우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총알을 받아내기엔 한계가 있었다.
독재 경영자들의 공통점은 푸틴과 같이 예스맨으로 둘러싸인 불통의 커뮤니케이션 구조에 있다는 점이다. 이들 주변에 바른말이나 쓴 말을 하는 사람은 없고 예스만 하는 충성도 높은 핵심 측근들만 존재한다.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 과정도 없다. 혹여 소통 프로세스라는 형식을 갖추더라도 이미 결론을 내놓고 하는 요식행위다.
여기에 툭하면 폭언을 일삼으며 공포를 조장하는 것도 공통점의 하나다. 푸틴도 회의에서 거의 광적인 모습으로 폭언을 쏟아내는 경우가 있는데 독재 경영자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쏟아내는 폭언은 거침이 없다.
대한항공 오너家 조현민 전무의 음성으로 추정되는 ‘폭언 녹음 파일’을 들어봐도 그렇다. 네이버를 검색해보면 다양한 사례가 나온다. 아파트 주민회장이 경비원에게 폭언한 내용도 가히 충격적이다.
“회장이 폭행, 폭언,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 직원 기자 회견”
“또 갑질 논란, 이장한 종근당 회장 기사에 상습 폭언”
“폭언 물의, 김우남 마사회 회장 해임”
“미친xx야, 대웅재약 윤재승 회장, 상습 욕설 폭언 논란”
“종놈이 감히... 삿대질하며 폭언 퍼부은 강남 고급아파트 주민회장”
대부분 견제받지 않는 무한 권력에 못된 성격이 결합 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최고경영자 중엔 카리스마라는 칼 같은 권위적 리더십을 갖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들에게 만약 고집 세고 못된 성깔이 잠재되어 있었다면 불통과 폭언으로 이어지면서 위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고 푸틴과 같이 되는 것이다.
이들 중엔 바깥에선 근엄하고 예의 바른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 회의에선 한마디로 ‘개00’ 떠는 최고경영자도 있다.
P사의 M부회장은 한때 필자가 긍정적으로 봤던 최고경영자였다. 평소에 젠틀한데다 경영 철학이라든지 경영의 방식이 혁신적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그 회사의 임원으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는 충격이었다.
M부회장은 바깥에선 젠틀해 보일지 몰라도 내부에서 임원 회의할 때는 폭언을 달고 산다는 것이다. 상습적인 폭언이었다고 한다. 자기 레벨에 맞지 않으면 임원들에게 욕을 하거나 서류나 결재판을 내던지고 인간적인 모욕을 한다는 것이다. 폭언과 함께 당장 그만두라는 얘기를 들은 어느 임원은 대표이사실 앞에서 종일 무릎 꿇고 빌었다고 한다.
푸틴의 푸른 두 눈에서 레이저를 발사하고 있는 사진을 보노라면 10M 테이블 저 끄트머리에 앉아있는 측근 참모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있을까. 질책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부들부들 떨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폭언이나 막말을 일삼는 CEO 주재의 회의장에 앉아있는 임원들도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이래서는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하고 독재의 길만 열려 있는 것이다. 그러니 판단이 흐려질 수밖에 없다.
리비아에서 오랜 기간 독재를 했던 카다피 대통령이 커다란 홀에 수백 명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하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시가를 입에 물고 담배를 피우며 고성을 연발하고 있었다. 참석한 관료들의 공포에 떠는 처연한 눈빛이 지금도 기억에 선연하다.
경영에서는 푸틴의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전혀 이를 눈치채지 못하는 최고경영자가 있다. 왜냐면 시간이 흐르면서 최고경영자 주변엔 쓴소리 바른 소리 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아부하는 사람이 늘어나는데 이런 구조에 취해 있다 보면 정작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반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험담은 담장을 타고 넘어간다. 앞서 필자가 직접 경험한 두 사례 외에도 여러 독재적 사례가 필자의 귀에 들려왔다. 이들 최고경영자도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할 만 해지고 자신감이 생기면서 주변을 무시하거나 의견을 듣지 않았고, 심지어는 폭언까지 일삼게 된 것이다. 그것은 지나친 오만이며 자멸의 길이다.
그래서 독재의 구조에 빠지지 않으려면 소통구조가 정상인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달콤한 소리에 취하지 말고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주변엔 그런 조언과 보고를 해주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단 소리와 쓴소리를 골고루 듣는 것이야말로 최고경영자가 가야 하는 소통하는 길이다.
독재자의 불통 다음 단계는 폭언으로 이어질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폭언은 인간적으로 추한 모습이며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폭언의 단계에 이르면 그때는 주변엔 아무도 남지 않으며 혼자가 된다. 말로가 명확한 것이다. 푸틴의 소통 없는 밀실정치와 공포정치를 보며 교훈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