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 스포츠웨어 히드코트 런칭기_6
촬영일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졌다.
촬영일에 임박해 촬영 아이템을 두 가지 더 늘렸다.
버킷햇과 여성 쇼츠였는데, 계획한대로 디자인이 잘 나오지 않으면 촬영에서 제외하기로 하고 우선 샘플 작업을 의뢰했었다.(다행스럽게도 너무 잘 나와줬다..)
일기예보를 보는데 촬영일 전날부터 그 다음날까지 비 예보가 있었다.
기상청이 틀리기를 촬영 전날까지 기도했다.
촬영 당일 아침 5시에 일어나 5시 30분에 집에서 나왔다.
차를 몰고 장비 대여처까지 가는데 올해 들어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폭우를 뚫으며 아... 오늘 야외촬영은 글렀구나 하면서 강남을 들어섰는데 신기하게도 비가 잠시 그쳤다. 그리고 촬영 전 마지막으로 거래처를 들리기 위해 동대문을 향하는데 한강을 건너자마자 다시 비가 내렸다.
그때부터 생각했다.
'아.. 그냥 운명에 맞기자.'
룩북 촬영을 준비하는 일은 정말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다.
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옷을 촬영하는 하루에 모두 보여줘야 한다.
1. 촬영 컨셉을 준비한다. 핀터레스트에서 Fashion Brand Campaign 등을 치면 다양한 하이엔드부터 디자이너 브랜드의 컬렉션 캠페인들이 나온다. 그중 이번 우리의 키워드, 컨셉과 가장 잘 어울리는 사진을 레퍼런스로 골라둔다. 이때 최대한 많은 사진을 모은다.
2. 모은 사진들을 토대로 촬영 감독님과 1차 미팅을 갖는다. 사진을 많이 찾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때인데, 내가 생각했을 때에는 비슷한 느낌의 사진일지라도 촬영 감독님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사진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 공간과 조명 그리고 모델까지 조언을 듣고 좀 더 구체적인 컨셉을 확정한다.
1. 촬영 컨셉을 정했다면 이제 구체적으로 그 느낌을 실현시켜줄 모델을 찾는다. 내가 준비한 사이즈와 잘 어울리는지를 기준으로 다양한 모델들을 찾은 후에 촬영 감독님과 짧게라도 논의해보는 것이 좋다.
2. 모델과 헤어 메이크업 전문가를 찾는다. 우선 모델 후보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모델 후보를 정한 후 브랜드에서 요구할 내용을 정리한다. 이때 촬영한 사진의 사용 범위 및 기간 그리고 용도 등을 충분하게 설명하고, 중요한 경우에는 간이 계약서라도 작성하는 것을 추천한다. 중요한 부분인데 그냥 넘겼다가 모델이 추후 사진을 내려달라고 할 수 있다. 서로 양측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소통하자. 물론 에이전시를 사용한다면 이 과정이 생략되고 정식 계약서에 명시된 바를 따르면 된다.
마찬가지로 내가 원하는 컨셉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헤어 메이크업 전문가를 찾는다. 포트폴리오를 확인해보면 촬영과 결이 맞는 사람인지를 대략 알 수 있다. 그 후 레퍼런스를 보내주며 논의를 한다. 모델이 정해진 뒤 찾는 것을 추천한다.
3. 스튜디오를 찾는다. 내 컨셉을 실현시켜줄 공간을 찾는다. 모델의 키가 크다면 층고가 높은 곳을 찾아야 한다. 내가 필요한 배경이 하얀 배경인지 아니면 까만 배경인지, 자연광이 필요할지 야외 촬영이 필요한지 등에 맞춰 고르면 된다. 가격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그나마 가장 수월하다고 생각된다.
또 헤어 메이크업 실장님과 촬영 감독님, 모델들이 대중교통이나 자차를 이용해서 편하게 올 수 있는지도 체크하면 좋을 것 같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출장비를 별도로 지급한다.)
1. 내 머릿속에 있는 결과물을 다 같이 협력하여 만들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지시와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 브랜드 설명 및 이번 시즌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담은 가이드를 일하는 모두에게 배포해 준다. 착장샷을 직접 입어보기 위해 피팅 미팅을 잡는 것도 좋다.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모델들에게 직접 입혀보고 수정할 부분은 없을지 기장은 잘 맞는지 확인한다. 이렇게 직접 확인을 해두면 현장에서 생길 수 있는 크고 작은 이슈에 대비할 수 있다.
2. 촬영 동선 구상하기. 착장을 직접 입어보고 어떤 소품과 들었을 때, 어떤 옷과 매치했을 때, 가장 예쁜지 직접 확인하고 사진을 찍어둔다. 그리고 그 사진을 바탕으로 동선을 구상한다. 1번 착장과 2번 착장 그리고 2-1번 착장 등 메인 착장과 그 메인 착장에서 분리된 다른 조합의 착장을 모두 분류한다. 그다음 어떤 순서로 해야 최소한으로 피팅을 하고 빠르게 다음 착장으로 환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이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촬영 당일에 이 모든 착장을 순서대로 뽑아 모두가 확인할 수 있는 보드에 붙인다. 나 같은 경우에는 컷별 예상 시간도 적어뒀는데 이렇게 하면 촬영 시간이 밀리고 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3. 앵글과 포즈 레퍼런스를 준비한다. 운 좋게도 지금까지 시작과 동시에 촬영 몰입도가 높은 모델을 만나왔지만, 현장에서 당장 카메라를 들고 포즈를 취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사전에 촬영 컨셉과 분위기를 이야기하더라도 현장에서 포즈나 표정을 취하면 잊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는 촬영 감독님과 모델들이 촬영 앵글 및 포즈, 표정 등의 레퍼런스를 쉽게 체크할 수 있도록 보드에 붙여둔다. 촬영이 중간에 막혔다고 생각될 때 재빠르게 "우리 이런 포즈로, 이런 앵글로 한번 찍어볼까요?"라고 제안할 수 있다.
4. 개인 지시사항 반드시 전해주기. 촬영마다 요구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하얀색 원피스를 촬영할 예정이니 심리스 혹은 스킨톤 이너웨어를 입어달라거나 하얀색 스니커즈를 준비해달라는 말 등이다.
촬영 장소에 대한 설명이나 주차안내도 해준다. 긴 촬영시에 샌드위치나 김밥을 제공할 예정인데 못 먹는 음식이 있는지 등도 물어본다. 디테일해서 손해 볼 일은 없으니 최대한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슈는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좋다. 나의 경우 마지막에 제시간에 와주길 부탁드린다는 말을 꼭 쓰고 있다.(시간은 돈이다.)
5. 마지막으로 동선을 한 번씩 싹 훑으며 착장은 물론 소품이나 필요한 물건을 다 챙겼는지 확인 또 확인하자. 촬영 중엔 그것들을 다시 가지고 올 시간 따윈 없다. 정말 그 시간, 한번뿐이다.
1. 촬영 디렉터님은 꼭 경력이 있는 사람과 함께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의 경우는 이런 룩북 촬영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경력 10년 정도의 디렉터님을 섭외했다. 내가 원하는 부분을 말하면 충분히 피드백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실행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2. 현장은 정신이 없다. 아침 5시 반에 나가 저녁 5시 반에 들어왔는데, 밥을 한 끼도 못 먹고 심지어 커피 한 모금 할 여유도 없다. 촬영 현장에 있는 모든 번거로운 일을 도맡아 해야 하고, 중간중간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 이번 촬영에서는 잠깐 해가 보일 때 야외촬영을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장비의 문제도 생겼었다. 또 헤어 메이크업이 예상보다 딜레이 됨에 따라 커플 촬영의 순서가 밀리게 되었다.
어시들이 많은 촬영에서는 나는 큰 그림만을 보고 있으면 되지만, 우리처럼 당일 어시가 한두 명뿐인 촬영에서는 최종 디렉터인 내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궂은 일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또 밝고 파이팅 넘치게 현장의 분위기를 주도해야 한다. 클라이언트인 내가 지치고 표정이 무거우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긴장할 수 있다. 그러면 결과물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무조건 웃고 칭찬하고 파이팅 넘치게 현장을 이끌자.
룩북 촬영은 패션 브랜드에게 정말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큰 비용이 쓰이는 것도 당연하다. 내가 적은 것은 최소한의 리스트인데 위의 내용보다 훨씬 더 많은 과정들이 포함될 수 있다. 그래도 처음 촬영을 진행하거나 매번 크고 작은 이슈관리가 어려웠던 개인 대표님들에게는 이 정도 체크리스트만 있어도 촬영을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촬영에서 얻은 결과물 중 일부를 공유한다. 디렉터님이 무작위로 몇 장만 뽑아준 사진이고 원본은 60기가에 달하기 때문에 다음 주에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