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베틀의 노래

by 고강아놀자

제17장: 베틀의 노래

임피제 신부가 아일랜드의 누이에게 편지를 보낸 이후, 그의 세상은 두 개의 다른 시간 속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하나는 제주의 시간이었다. 해가 뜨고 지고, 바람이 불고, 계절이 바뀌는, 예측 가능하고 영원할 것 같은 리듬. 다른 하나는 그가 보낸 편지가 만들어낼, 아직 오지 않은 미지의 시간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우편배달부가 삐걱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지만, 그가 기다리는 답장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시간은 그저, 의미 없는 우표처럼 하루하루 소인(消印)되어 쌓여갈 뿐이었다. 그의 희망은 바다를 건너갔지만, 바다는 좀처럼 대답을 돌려보내 주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 있던 '한림수직'이라는 이름의 기묘한 공장은, 그러나 그의 내면에서 멈추지 않고 가동되고 있었다. 그는 밤마다 꿈속에서, 수백 마리의 양 떼가 정물의 푸른 풀밭을 하얀 구름처럼 뒤덮는 풍경을 보았다. 그는 베틀이 내는 규칙적인 소리를 들었고, 소녀들의 거친 손이 부드러운 실을 잣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오직 그만이 볼 수 있는 영화와도 같았다. 현실의 시간은 멈춰 있었지만, 그의 내면의 시간은 미래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어느 날 밤, 그는 자신의 작은 사무실에서 홀로 위스키를 마셨다. 낡은 책상 위, 램프 불빛이 만든 작은 원 안에서, 위스키 잔에 담긴 호박색 액체가 작고 따뜻한 행성처럼 빛났다. 그는 축음기에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The Sound of Silence> 음반을 올렸다. 바늘이 내려앉고, 잠시의 정적과 함께 기타의 아르페지오가 흘러나왔다. 어둠이여, 나의 오랜 친구여. 그 가사는 이 섬의 공기와 기묘하게 공명했다. 사람들은 말이 없었고, 그들의 침묵은 때로 소리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 그는 생각했다. '패트릭, 자네 정말 미쳤군. 목초지를 만든 것만으로도 기적이야. 그런데 이제 와서 양 떼? 양모 공장? 양은 어디서 구하고, 그럴 돈은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자네의 그놈의 편지 한 통으로 세상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건 신앙이 아니라 망상이야.' 그 목소리는 임피제 자신의 내면에서, 훨씬 더 날카롭고 집요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망상일지도 모르지." 그는 텅 빈 방을 향해, 혹은 자기 자신을 향해 나지막이 속삭였다. "하지만 모든 위대한 일은, 언제나 누군가의 망상에서 시작되는 법 아닌가."

그는 편지를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누이에게 보낸 편지에 답이 없자, 그는 전 세계의 가톨릭 구호 단체와,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외국의 독지가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편지에는 감상적인 호소나 거창한 비전이 담겨 있지 않았다. 대신, 그는 지극히 건조하고 사실적인 데이터들을 나열했다. 이 섬의 소녀들이 처한 현실, 그들의 평균 임금, 도시 공장의 노동 환경, 그리고 자신이 구상하는 양모 사업의 예상 생산량과 기대 효과. 그의 편지는 구원을 요청하는 사제의 기도문이 아니라, 투자를 유치하려는 어느 고독한 사업가의 사업 계획서에 가까웠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새로운 '망상'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신부가 4-H 클럽의 소년들과 어울리거나, 텅 빈 테쉬폰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시간이 늘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가 밤마다 램프 불 아래에서, 세상의 저편으로 수십 통의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다림이 절망의 빛깔로 변해가던 1966년의 어느 봄날, 마침내 답장이 도착했다. 그것은 뉴질랜드의 어느 작은 가톨릭 자선 단체에서 온, 얇고 가벼운 항공 우편이었다. 그 안에는 격려의 말이 담긴 짧은 편지와, 그가 평생 만져본 적 없는 거액의 수표가 들어 있었다. 돈은, 그러나 그가 꿈꾸던 양 떼와 공장을 모두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배를 만들려는 사람에게 망치 한 자루와 못 몇 개를 쥐여준 것과 같았다.

김만수는 그 수표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이걸로는... 양 몇 마리 사면 끝이겠습니다. 신부님. 우리가 하려는 일에는, 말 그대로 언 발에 오줌 누기입니다."

하지만 임피제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아니, 김 선생. 이건 돈이 아니야. 이건 '신호'일세. 세상 어딘가에, 우리의 이 기묘한 연주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다는 신호."

그는 그 돈으로 양을 사지 않았다. 그는 전혀 다른, 훨씬 더 위험하고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는 그 돈의 대부분을, 육지의 낡은 방직 공장들을 수소문하는 데 썼다. 그는 문을 닫은 공장에서, 헐값에 팔려 나오는 중고 베틀 스무 대를 사들였다. 그것들은 녹슬고, 낡았으며, 제대로 작동할지조차 미지수인 기계들이었다.

"신부님. 제정신이십니까!" 김만수가 거의 소리치듯 말했다. "실을 만들 양도 없는데, 베틀부터 사들이다니요! 자동차도 없는데 주차장부터 짓는 꼴입니다! 이건 순서가 틀려도 한참 틀렸습니다."

"순서가 틀렸네. 김 선생." 임피제는 조용히 말했다. "나는 지금, 자동차를 만들 사람부터 찾고 있는 걸세. 운전할 사람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고철에 불과하니까."

그의 방식은 철저한 창업가의 그것이었다. 그는 '공급(양)'보다 '생산(베틀과 사람)'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 했다. 가장 불확실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 즉 '사람의 의지'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것은 그의 가장 대담한 도박이었다. 그는 시장이 없으면 시장을 만들고, 자원이 없으면 자원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 노동력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생산 수단을 먼저 확보하고 있었다.

베틀이 나무 상자에 담겨 한림항에 도착하던 날, 마을은 다시 한번 술렁였다. 사람들은 저 거대한 나무 상자 안에 무엇이 들었을지 궁금해하며, 멀찍이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상자가 열리고, 그 안에서 묵직한 쇠와 나무로 만들어진 기계 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사람들의 얼굴에는 실망과 의혹이 떠올랐다. 저것은 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저 코쟁이는 이제 고철까지 사 모으는 것인가.

임피제와 김만수, 그리고 이제는 청년이 된 영호는 며칠에 걸쳐 그 무거운 기계들을 정물의 테쉬폰 안으로 옮겼다. 그것은 기이하고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마치 고대의 신전 안으로, 미래에서 온 정체불명의 기계를 들여놓는 듯한 이질감. 텅 비어 있던 테쉬폰의 둥근 공간은, 어느새 낯선 기계들로 채워져 갔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들은 베틀을 조립하는 법을 몰랐다. 수많은 부품들은 마치 해독 불가능한 고대 문자처럼, 그들 앞에서 침묵하고 있었다. 며칠 밤낮으로 씨름했지만, 그들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은 어설프게 얽힌 고철 더미일 뿐이었다. 임피제의 위대한 계획은, 시작도 해보기 전에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김만수와 영호의 얼굴에는 깊은 절망이 서려 있었다.

"신부님.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건 미친 짓입니다." 김만수는 기름 묻은 손을 바지에 닦으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원망과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물에서 오는 첫 배를 타고, 한 여자가 한림항에 내렸다. 그녀는 마흔 줄의 과묵한 여자로, 평생을 베틀 앞에서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이금희였다. 임피제가 수소문 끝에, 삼고초려하여 겨우 모셔온 직조 기술자였다.

그녀는 테쉬폰 안에 널브러진 부품들을,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던 자식들을 대하는 듯한 눈으로.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공구 가방을 열었다. 그녀는 어떤 설명서도 보지 않았다. 그녀의 손은 마치 물 흐르듯,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쇠와 나무가 맞물리고, 나사가 조여지고, 팽팽한 실이 걸리는 소리. 그녀의 손끝에서, 죽어 있던 고철은 서서히 생명을 되찾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조립한 첫 번째 베틀이 그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시범을 보이기 위해 페달을 밟았다.

덜컹. 쿵.

그 소리는, 테쉬폰의 둥근 천장을 때리고,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그것은 희망의 소리라기보다는, 멈춰 있던 운명의 톱니바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어딘지 모르게 불길하고 서글픈 소리처럼 들렸다. 그 소리는 마치, 이 섬의 소녀들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음을 알리는 신호탄인 동시에, 그녀들의 삶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경고음 같았다.

임피제는 마을 회관 앞에 다시 팻말을 세웠다.

<실을 잣고 싶은 처녀들은, 보름달이 뜨는 날 저녁, 정물로 오시오. 밥은 먹여 줌.>

그의 제안은 너무나 투박하고, 어딘가 미심쩍었다. 하지만 '밥은 먹여 줌'이라는 마지막 문장은, 가난에 지친 소녀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낭만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제안이었다.

보름달이 뜨던 날 저녁, 스무 명 남짓한 여자들이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그녀들의 대부분은 열여섯에서 스무 살 사이의 처녀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도시의 공장에서 도망쳐 온 양순임도 끼어 있었다. 그녀들은 희망이나 기대를 품고 온 것이 아니었다. 그녀들의 눈에는 짙은 의심과, 뿌리 깊은 체념, 그리고 '이번에는 또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속이려는 걸까' 하는 냉소적인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다. 그녀들은 마치, 덫일지도 모르는 곳에 놓인 먹이를 바라보는, 굶주린 짐승들과도 같았다.

임피제는 그녀들을 데리고, 베틀이 늘어선 테쉬폰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들은 그 기이한 공간과 낯선 기계들 앞에서 주눅이 든 듯. 서로의 등 뒤로 숨었다.

임피제는 긴 연설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이금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이 여러분에게 길을 가르쳐 줄 선생입니다." 그리고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곳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날부터, '한림수직'이라는 이름의, 세상에 없던 공장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마지못해 베틀 앞에 앉았다. 그녀들의 서툰 손놀림에, 베틀은 비명을 질렀고, 실은 맥없이 끊어졌다. 테쉬폰 안은 여자들의 한숨과, 기계의 불협화음. 그리고 이금희의 차가운 침묵으로 가득 찼다. 임피제는 그 모든 혼돈을, 자신의 작은 사무실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축음기에 마마스 앤 파파스(The Mamas & the Papas)의 <Monday. Monday>를 올렸다. 월요일 아침은 아무런 경고도 없이 찾아온다는, 예측 불가능한 운명에 대한 노래. 그는 생각했다. 지금 저 소음과 혼돈은, 어쩌면 새로운 음악이 탄생하기 전의, 가장 깊고 완전한 침묵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그가 설계한 시스템이 스스로의 길을 찾아낼 때까지, 그 어떤 개입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