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5%, 절망 95% 인 밤이었다. 내 마음과는 다르게 몸안에서 아기들은 밖으로 나오려는 신호를 보냈다. 모니터 상 자궁수축 강도가 심해졌고 계속되는 하혈로 정신이 몽롱해졌다. 간호사들은 나를 고위험산모실에서 진통실로 침대 채로 옮겨주었다. 곧이어 당직의사 선생님이 와서 초음파로 상태를 보시고는 라보파(자궁수축억제제)를 16에서 32로 올리라고 했고, 이어서 아빠(남편)한테 연락하라고 했다. 새벽 3시였고, 당직선생님은 한마디를 더했다.
"오늘 밤에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 지 몰라요."
남편은 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잠도 많이 못잤을 텐데 새벽 3시에 전화해서 곧장 오라 하기가 미안했다. 가만히 핸드폰으로 카톡만 남겼다. 후둥이까지 모두 보내줘야 하는 상황임을 직감하고 나는 조금 담담해졌다가도 이내 눈물을 터뜨렸다. 초음파를 보는 동안 들리는 아기 심장소리에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새벽 내 진통이 이어지면서 심호흡을 했는데, 길게 내쉬는 호흡과 함께 몸에서는 액체가 계속 흘러 나왔다. 내 몸에서 뭐가 계속 나오느냐 물으니 당직 선생님은 양수와 태반이 나오는 거라 했다.
열이 오르고 자궁수축이 이어지는 밤이었다. 밤새 간호사쌤들이 패드를 갈아 주었다. 아침이 되어 내 카톡을 확인한 남편이 병원으로 왔고 나는 남편을 보고 울다가 웃다가 했던 것 같다. 그 순간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아침 7시반 쯤, 주치의 교수님이 출근해서 내 상태를 보더니 이제 아기들을 보내줘야 한다고 했다. 산모가 아프지 않도록 무통주사를 맞는 게 좋겠다 해서 바로 마취과로 이동 했다. 등허리에 맞는 척추마취 주사는 이제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투여하고 있던 자궁수축억제제를 모두 제거 하고 아기들이 자연분만 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이미 심장이 멎은 선둥이가 먼저 나왔다. 눈물이 줄줄 나면서도 하나도 아프지 않아서 어찌나 감사하던지... 선둥이를 진한 하늘색 천으로 덮어 간호사가 어디론가 데려갔고 나는 후둥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자궁수축억제제가 아니라 그 반대로 수축제를 투여받고 후둥이가 자연스럽게 분만 되기를 기다렸는데 아플까봐 어찌나 두려웠는지 신경이 잔뜩 예민해졌다. 몇 분이 되지 않아 후둥이가 나왔고 간호사쌤을 불러 아기가 나왔다고 했다. 후둥이 역시 간호사쌤이 와서 하늘색 천으로 덮어 데려갔다.
아기울음 소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20주차 사산아 둘을 낳은 산모가 되었다. 걱정했던 것보다 아프지 않았지만 후둥이가일주일 사이 선둥이 보다 많이 커서 더 묵직한 느낌이었다. 옆에 있던 남편에게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고 얘기했고 허탈함과 슬픔 그리고 안도감에 뒤엉켰다. 내 몸에서 빠져나간 아기들에게, 천국 갔을 아기들에게 어찌나 고맙던지 찬송가 412장을 머릿속으로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