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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o Aug 11. 2021

무슨 일이든 열정적으로 하지 말자

실패를 겪고 나서야 얻게 되는 소중한 진리

그날은 평소에 스스로를 사회생활 만랩은 아니더라도 더 이상 사회생활에 대해 배울 건 없다고 자부한 나로서는 충격적인 날이었다.


외국계 기업에서 일한 지 어느덧 5년이 지나 어느 정도는 모든 업무 처리에 대해 익숙해질 무렵, 회사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본사로부터 새로운 조직 체계에 대한 방침이 내려왔고, 그 방침은 다른 누구보다도 나에게 가장 큰 변화를 가져왔다.


본사에서 조직도에 대한 방침이 내려오기 전부터, 지사장은 나에게 새로운 position을 제안했다. 새로운 position은 PM, 프로젝트 매니저였다. 기존의 마케팅 업무를 진행하면서 추가적으로 수행해야 되는 업무가 생긴 것이다. 그것도 일의 비중이 크고 해야 할 일들이 다분히 많은 프로젝트 매니저는 수행할 자신은 있지만 참으로 꺼려지는 일이었다.


그러한 마음을 아는지 지사장은 나에게 PM직을 수락한다면 연봉 상승과 회사 관리자로서의 직급 상승 그리고 그에 걸맞은 인센티브를 약속하였다. 그렇다면 나로서도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말이 좋아서 지사장의 제시였지만 어떻게 감히 지사장의 요청을 거절할 수 있을까. 그리고 평소에 마케팅 업무에 대해서 0.5명 정도의 man/hour가 소요된다고 생각하는 지사장과 다른 동료들에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기에 언젠가는 맡는 업무가 바뀌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평소에도 했었다. 때문에 한편으로는 지사장의 제안이 반갑게 느껴졌다.


수락과 동시에 업무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졌다. 어느 정도 생각한 업무 내용과 프로세스였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게 새로운 업무를 접하게 되었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겠어


자신만만했던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일은 전개되었고, 예상한 일정대로 일은 진행되지 않았으며 내부적으로도 많은 논란과 문제가 발생되었다. 이는 대외적으로도 문제가 되어 고객사는 지사장과의 미팅을 요청했다.

PM으로서의 최악의 순간이 아닐까 싶다.


고객의 컴플레인과 직장 동료의 컴플레인을 동시에 듣게 된 날, 머릿속은 그야말로 새하얀 백지처럼 변해버렸으며 자신감은 바닥으로 추락했고, 패배감과 절망감이 내 전신을 휘감았다. 그와 동시에 모두에 대한 원망과 함께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감정만이 나를 지배했다.


기세등등했던 나의 커리어에 금이 간 순간이었다.


결국엔 수많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다툼 끝에 정상궤도로 다시 돌아왔지만 그날의 짙은 패배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왜 그런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발생되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나조차도 미처 깨닫지 못한, 깊은 욕구에서부터 나오는 감정이 섞이였던 걸까? PM으로서의 역할을 처음 수행하게 되었을 때의 마음 가짐이란, 아무런 문제 없이 누구보다도 훌륭하게 그 역할을 수행하겠노라는 대단히 열정적인 자세였다. 이전부터 회사생활을 하면서 다짐했었던 것 중의 하나는 '무슨 일이든 열정적으로 일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은 회사 생활 중 내가 가장 금기시한 사항이다.

 

새로운 사람이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그 사람은 자신을 입증하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쓰고 열성적으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경력자의 경우 이전 회사와 비교하여 안 좋다 싶은 것들은 바꾸고 싶어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여러 가지 제안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아직 새로운 직장의 문화가 어떠한지도 파악하지 못한 채 진행하려고 하는데 이 경우, 그 아이디어가 상황이나 방향성이 맞고 효율성이 아무리 뛰어난다 하더라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직장 문화와도 연관되며, 회사마다 업무 방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정말로 바꾸고 싶다면, 현재의 방식부터 완전히 파악하고 난 후에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열정보다는 한 템포 쉬어가고 한 템포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이전부터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망각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나의 열정이 나의 발목을 붙잡았던 것이다.

이 점이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아무리 따져보아도, 내가 한 행동들과 업무 처리 방식은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계속 생각해보니, 나의 잘못은 업무의 처리 방식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잘못한 점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었다는 뒤늦은 판단이 선다. 아무리 내가 잘한들 못한들 동료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으며, 단지 자신의 영역이 침범당했다는 사실과 나로 인해 그들 또한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욱 중요하였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큰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위의 두 가지 실수는 어떻게 보면 이전에도 이미 알고 있었던 부분이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뒤섞여 엉키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다 보니 간과하게 되고 까먹게 된 것 같다.


오롯이 좋은 점을 들자면, 이로 인해 한 가지 더 배웠다는 것과 너무 자신에 대해 과신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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