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 낯선 글
Minolta SRT 101 | Portra 400
연말은 여러모로 바쁜 것이 많다지만, 마감은 3주째 겹치고 있고, 3번 연속으로 다시는 보기 싫은 각자 다른 클라이언트들을 상대하면서 멘탈이 나가버려 아이패드 자체를 만지질 않았기에... 이렇게 늦게나마 글을 써본다. (사실은 브런치가 2주째 게을러졌다고 혼내고 있었다...)
내가 글을 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로 하는 방식은 나의 다이어리(아이디어 스케치용이지만 어느새 그림보다 글이 더 많아진) 안에 여기저기 흩어진, 몇 문장의 글들을 비슷한 내용끼리 짜깁기를 하여 정리하고 제목 콘셉트를 맞추고 쓰기 시작하는 것이기에 상당한 시간이 드는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브런치에게 이런저런 변명으로 미안함을 표현하고 있지만, 뭐 내 글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는다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내 양심은 본래의 모습을 찾았기에 만족하는 바이다.
사진을 찍으러 다닐 때마다 빠짐없이 담는 장면이 있다면, 낯선 공간과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뒷모습을 담아내는 것은 알게 모르게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장면 중 하나이다. 몇몇 사람들은 낯섦에 관해서 두려움과 공포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나에게 있어 낯섦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수치 중 하나라 생각하는 '편견'의 방해 없이 누군가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장치 중에 하나이다. 오늘은 내 인생에 있었던 어느 '낯섦'에 관한 이야기이다.
20대 초반의 나의 모습은 나 자신을 바라볼 줄도 모르고, 항상 우울감에 휩싸임과 동시에 그 모습을 감추려 애쓰던, 너무나도 안쓰런 모습의 사람이었다. 어찌 보면 어른이 돼가는 과정이었고, 나의 가치관을 성립하는 기간으로써 중요한 시기였지만, 그때 당시를 상상하면 과거의 나에게 안쓰럽기까지 할 정도로 감정을 극한으로 몰아넣었던 아이였었다. 그 시기에 나는 글을 쓰는 취미는 없었지만 항상 한 두문장 내 머리에 새기면서 세상을 살아가던, 조립되지 않은 건축물 같은, 형체는 없지만 존재는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직도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던 건지, 복학을 반년 남기고 글쓰기 모임에 가입해 낯선 이들과 마주했다. 처음엔 물론 어색했고 무서웠지만 그때만큼 내 인생에서 편안한 감정으로 누군가와 소통했던 적이 없었을 정도로 나에게 있어 그 시기는 너무나도 소중한 시점이다. 무지에서 오는 편안함 때문이었을까, 그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했던 나에게 있어 치명적이고 감추고 싶던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깨달았다. 나는 그들을 모르고, 그들도 나를 잘 모르기에 우리는 모두 각자를 하나의 소중한 존재로써 바라볼 수 있고, 그 어떤 고통이든 행복이든 그 나름대로의 이유를 각자 가지고 있기에, 그때 그 순간 중요했던 건 우리 모두가 이 이야기를 단지 아무 중압 감 없이 나누고 있고 듣고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아름다웠다는 것을.
다음 글은 이날의 후기를 썼던 내용이다. (참고로 이날 토픽은 이별이었다)
이별은 항상 무거웠고, 무겁고, 무거울 것이고
그리고 아팠고, 아프고, 아플 것이다.
각자 다른 장소에 붙어있는 반창고를 때서 보여줄 때면 남아있는 상처 자국은
서로의 마음을 조여와 더욱더 그 사람에 인생에 빠져들게 했다.
시간이라는 약은 우리 모두를 더욱더 강하게 만들고 상처를 어느 정도 아물게 했지만,
'기억'이라는, 좋지만 어쩌면 잔인한 존재 때문에 상처는
어느새 사라지지 않고 각자 인생의 동반자가 된 후였다.
그렇기 때문에 - 가족, 친구, 동료, 반려동물 - 어떤 종류의 이별인지, 상처의 깊이는 어느 정도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으며,
우리는 그냥 각자의 말에 진득히, 조용히, 그리고 차분히 귀 기울일 뿐이었다.
항상 옷 뒤에 꽁꽁 숨겨왔던 나의 상처들을 보여줄 때,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별'이라는 존재를 맞이하기 위해 내가 쌓아온 수많은 가치관의 울타리들.
'인간적'과 '비인간적'의 경계에서 불안한 외줄 타기를 해왔던 나의 모습.
창피하진 않았지만, 굳이 얘기하고 다니지 않았던 나의 모든 행동의 이유와 원동력.
나는 항상 장미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존재이고 완벽한 존재이고 싶었지만,
그 향기에 이끌려 누군가 가까이 올 테면 날카로운 가시를 들이 내밀며,
속으론 연약하고 가녀린 나의 줄기를 건들지 말라고 울부짖는 그런 존재였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지도 모르는,
아니면, 지나가는 행인일지도 모르는 그들은 묵묵히 나를 그냥 응시해줄 뿐이었고, 응원해줄 뿐이었다.
만지지도, 묻지도 않고 바라봐 주기만 할 뿐이었다.
'너 참 예쁘다'는 한마디와 함께, 조심스럽게 등을 보인 그들을 바라보면서
오래된 나의 가시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이제는 인스타 라이크나 하는 사이가 돼버린 지 오래지만, 그들과의 낯선 인연은 불완전하던 나의 그 시절에 어찌 보면 기둥 역할을 했던, 평생 간직하고 싶은 나의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그때의 좋은 기억은 시간이 지나 글을 쓰는 취미로 변하여 지금 내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다.
다들 잘 지내고 계시겠죠?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