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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Jun 12. 2023

도덕적 부채

(우리는 누군가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법학자인 히로이케 치쿠로는 도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도덕과학’ 이론을 만들었다. 도덕과학에서 인간은 살아 있는 한 도덕적 과실을 저지르는 존재다. 


매일 먹는 음식은 고기나 생선, 채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며, 매일 이용하는 철도나 도로도 건설 노동자들의 희생의 산물이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덕분’에 편안한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도덕과학에서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저지른 ‘도덕적 과실’과 받은 ‘은혜’를 ‘도덕적 부채’라고 부른다.  

[내가 도덕적으로 그린 부채]

의뢰인 1만 명을 만난 경험으로 『운을 읽는 변호사』를 쓴 일본 변호사 니시나카 스토무는 스스로 운이 좋아지게 만드는 방법을 이렇게 말했다.


첫째는 ‘도덕적 과실’을 깨닫는 것이다. 법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남에게 손해를 끼친 데 따른 죄나 누군가의 희생으로 입은 혜택을 도덕적 과실이라고 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한 이기적 행동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이 나로 인해 상처를 입거나 손해를 보았다면 분명 그 사람은 나에 대한 원한이나 서운한 감정을 갖게 될 것이다. 저자는 이것이 형법상의 죄는 아니지만 도덕적으로 분명히 죄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운이란 것을 과학적 혹은 법률적 근거로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는 법률상의 죄가 아닌 도덕적 과실이 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한다. 세상에는 교활한 짓을 해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남이 생각지 못한 법의 틈새를 파고들어 이익을 보지만 법적으로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자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한때 교활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지만 나중에는 대부분 몰락했다. 그래서 자신의 도덕적 과실을 깨닫고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불운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입은 ‘은혜’를 갚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자연이 주는 혜택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은혜가 없어진다면 인간은 단 하루의 삶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도덕적으로 그린 부채]

   

 도덕적 과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은혜들 역시 도덕적 부채로 쌓이므로 반드시 갚아야 한다. 


하지만 부모님처럼 이 세상에 안 계신 사람이나, 자연의 은혜는 갚을 방법이 없다. 그럴 때 자신이 받은 혜택을 타인에게 갚으면 그 사람도 내가 아닌 타인에게 은혜를 갚게 되므로 세상 전체에 은혜가 순환하게 되는데 저자는 이것을 ‘선행 나누기’라고 부른다. 이처럼 자기가 받은 혜택을 잊지 않고 그에 보답하며 인정을 베푸는 것이 사람의 운을 바꾸는 근간이 된다는 것이다. 



몇달 전 맡은 사건은 피고인이 70대 중반이었다. 아픈 부인을 위해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나 해서 벼룩시장 광고를 보고 단순 물건 받아오기 심부름을 했는데, 사실은 그것이 보이스피싱 피해금이었던 것이다. 형편이 어려워서 합의는 쉽지 않아 보이고, 구속이 자명해 보였다.      


피고인이 말한 피고인의 지난 삶은 이렇다.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외아들인 피고인을 위해 재가하지 않으시고 혹독한 시집살이를 견디며 시부모님을 모셨다. 피고인은 어려운 살림과 어머니의 눈물을 보고 자라서 늘 위축되어 있었고 학창 시절 내내 맞으면서 학교를 다녔다.


평생 고된 일을 했고 가난했으나 남의 돈을 탐하거나 다툰 적이 없고 전과가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를 모셨지만 어머니는 일찍 치매가 와서 오랫동안 간병해야 했다. 아픈 아내를 대신해 살림살이를 하고 있고, 모든 불행이 자신의 무능력 때문인 것 같아서 일자리를 구하려고 벼룩시장 신문을 보다가 이 사건에 연루되게 되었다.     


피고인의 어머니는 늘 피고인을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피고인은 어머니의 바람처럼 잘 살지 못했고 어머니처럼 고단한 삶을 살았다. 


일평생 어머니의 눈물을 보고 살았는데, 이제 하늘나라에서 어머니가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70이 넘어 감옥에 가게 생겼으니 얼마나 통탄하실지..라고 말하더니 갑자기 기도하듯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더니 “엄마”라고 하면서 우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같이 울었다.    

 

이 피고인이 없으면 아내는 혼자 살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피고인에게 자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내 마음속에 커다란 건물이 하나 묵직한 것이 들어오듯 마음이 무거웠다.   

  

모르고 한 일이라고 해도 보이스피싱과 관련이 되면 무죄가 나기 힘들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에 이 사건은 합의에 집중해야 한다. 유죄가 되고 합의가 되지 않으면 구속될 것이다.      


그는 마침 노인복지센터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일자리를 구했는데, 나는 1심에서 징역형을 받더라도 법정구속만 시키지 않으면 불구속으로 항소심을 받는 동안 돈을 더 모으고 합의를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피고인은 어느 날 사무실에 편지와 함께 통장을 들고 찾아왔다. 몇 달치 월급을 보여주면서 열심히 모아서 피해자에게 줄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 각별한 마음이 생기고, 그에게 더는 심한 불행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게 들었다. 그 마음은 내 표정과 태도에서도 나타났을 것이다. 피고인은 나를 만난 이후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특별히 더 돕고 싶고 간절한 마음이 생기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다못해 말이라도 친절하게 하고 눈빛이라도 친절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내 도덕적 부채를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갚고 상대방은 언젠가 베풀었지만 보답받지 못한 도덕적 은혜를 소액 돌려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도덕적으로 그린 부채들]


나는 부채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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