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브런치가 서비스명을 '브런치스토리'로 변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작가 수익화 모델까지 공개했습니다. 저 또한 최근 다시 브런치에 글을 사부작거리기 시작한 사람으로서 사람들의 반응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크리에이터로 선정된 분들이 소수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번 수익화 업데이트에 대해 날선 비판을 내놓고 있더라구요. 이번 업데이트 자체가 좋냐 나쁘냐를 떠나서, 사람들이 브런치의 수익화를 얼마나 오래 기대해왔는지, 그리고 그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 주는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까지의 브런치스토리는 수익화 모델이 사실상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매년 브런치북 공모전을 통해 작가들에게 출판의 기회를 주고 있기는 했지만, 그 공모전에 당선된 사람의 수는 극소수였습니다. 브런치북 공모전 외에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브런치를 통해 수익화를 기대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더라도 3가지 정도 뿐입니다.
1. 셀프 브랜딩
커리어적으로 글쓰기나 콘텐츠가 중요한 사람들, 또는 셀프 브랜딩을 통해 본인의 가치를 높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프리랜서나 마케터, 에디터, 디자이너와 같이 자기PR 역량이 곧 몸값이 되는 사람들이 대표적입니다. 사실 이 케이스에서 브런치스토리는 글쓰기 수익을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개인 포트폴리오에 가깝습니다.
2. 외부 기고나 강연
브런치스토리에는 작가에게 제안을 보낼 수 있는 기능이 있습니다. 간간히 브런치스토리에 게시한 글을 보고 외부 매거진이나 언론과 같은 콘텐츠 업체에서 기고 요청이나 강연 요청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저 또한 웨비나를 기획하거나 할 때 강연자 섭외를가장 많이 신청했던 플랫폼이 바로 링크드인과 브런치스토리였습니다.
3. 다른 방식으로의 단행본 출판
꼭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통하지 않더라도 브런치스토리 글을 모아 단행본을 출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이 올 때도 있고, 내가 출판사에 먼저 투고하거나 POD(Publish On Demand, 맞춤형 소량 출판) 방식으로 독립출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책이 팔리냐 팔리지 않냐는 둘째 문제로 두더라도, 단행본을 출판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이후 여러 기회가 생길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수익모델이 실질적으로 작가들에게 크게 와닿지 않아 왔다는 점입니다. 사실상 앞서 언급한 수익화 방법 또한 소수만 가능했을뿐더러, 가능하다고 치더라도 그다지 돈이 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글이라는 것은 수요에 비해 시간과 노력이 꽤 많이 들어가는 콘텐츠입니다. 처음에는 순수한 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이만큼이나 시간과 노력을 들였는데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보상심리가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옆 동네 티스토리 하는 누구는 얼마 전부터 애드센스를 붙여서 수익이 얼마가 들어오기 시작했다더라, 네이버 블로그 하는 누구는 체험단으로 생필품을 쏠쏠하게 챙기고 있다더라, 인스타 하는 누구는 협찬을 얼마나 받았다더라 하는 소식을 들으니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집니다. 블로그로 돈 버는 법, 인스타로 파이프라인 늘리는 법 어쩌고 하는 책들도 자꾸 눈에 밟힙니다. 누군가가 내 글을 많이 읽어 주기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구조적으로 브런치스토리에는 작가들만 우글거리지 순수한 의미에서의 독자가 많지 않습니다. 운 좋게 다음 메인에 걸리거나 구글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지 않는 한 내 글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같은 처지의 작가들입니다.
물론, 브런치스토리가 작가들에게 수익을 돌려주기 위한 노력을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브런치북 프로젝트 이외에도 알음알음 외부 출판사들을 통해 작가들의 글이 출판될 수 있도록 도와오고 있고, 오프라인 강연이나 전자책, 오디오북과 같은 제3의 콘텐츠로 브런치스토리의 글을 연결시키려는 노력도 계속해서 해 오고 있으니까요. 브런치북이나 매거진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어찌 보면 작가들이 완결된 형태의 콘텐츠에 가깝게 글을 연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의도라고 볼 수도 있겠고, 제일 중요한 것은 '수익이 아예 나지 않는 플랫폼'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2021년 아웃스탠딩과 브런치 팀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카카오가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얻는 수익은 제로라고 합니다.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데 일조하기 위해 글 쓰는 사람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데에 거의 예산을 쓰고 있다고 말하죠. 물론 정제된 말들만 들어 있는 인터뷰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브런치스토리 팀의 가치관을 대략 파악해볼 수 있습니다.
올해 3월 29일, 브런치가 브런치스토리로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4월에는 카카오스토리, 티스토리, 브런치스토리의 콘텐츠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도록 '스토리 홈'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브런치의 폐쇄적인 성격에 대한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보입니다. 스토리라는 이름 하나 추가된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냐고 물어본다면, 카카오의 대표적인 애물단지 sns들이었던 카카오스토리, 티스토리, 브런치스토리를 하나의 이름으로 묶으면서 콘텐츠 플랫폼으로서의 통합적인 브랜드를 구축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점은 스토리홈을 통해 이제는 점점 이용자가 줄고 있는 다음 포털에 의존하지 않고 카카오 서비스(특히 카카오톡)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노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2~3년 전부터 네이버는 커머스 기업과 유통 기업들과의 적극적인 인수합병 및 전략적 투자를 통해 쇼핑 플랫폼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카카오는 반대로 콘텐츠 업계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해 왔습니다. 이런 맥락을 보면, 어쩌면 이번 서비스 개편은 카카오가 가지고 있는 콘텐츠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시간이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최근 숏폼이 대세가 되기는 했지만, 그 말인즉슨 다시 긴 호흡의 콘텐츠가 부상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실제로 최근 네이버 블로그를 비롯한 텍스트 플랫폼들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카카오의 스토리 삼형제는 카카오가 '당장 뭔가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놓고 싶지도 않은 패'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정비의 시간은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까놓고 말해서, 브런치팀이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다 사실이라고 치면 브런치스토리는 지금까지 돈 먹는 하마 역할만 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인터뷰에서 포장을 잘 했다 뿐이지 브런치스토리 서비스가 일반적인 기업 ESG의 형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카카오의 다른 사업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지만, '고작' MAU 10만명대 서비스인 브런치스토리가 카카오의 전사적인 브랜딩에 엄청난 영향력이 있다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BM이 없는 서비스가 생존할 수 있을까요? 어느 순간 조직에서도 한계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올해 이루어진 스토리 시스템으로의 서비스 개편과 수익화 테스트는 그런 맥락에서 개인적으로 더더욱 일리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이번 브런치스토리의 수익모델 도입은 실제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찾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실험을 이제 막 시작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후원 모델 업데이트가 아주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유저들의 불만은 차치하더라도, 브런치스토리의 폐쇄적인 성격과 더불어 영상(그 중에서도 라이브나 숏폼) 콘텐츠에서 주로 활용하던 후원 모델을 비교적 생산과 소비의 호흡이 긴 편인 텍스트 콘텐츠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에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돌려돌려 말했지만, 지금의 후원 모델에서 문제는 누가 크리에이터가 되고 누가 크리에이터로 선정되지 못했느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후원할 독자가 없는 플랫폼 안에서 제대로 이런 모델이 작동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 카카오가 추구하려는 방향은 짐작해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독자들의 참여 증대와 브런치스토리 내 콘텐츠의 질 강화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소위 말하는 '감성 에세이'에 대한 인기는 점점 떨어져가고 있고, 반대로 브런치 안에서는 완결성이 떨어지는 신변잡기적 글들의 생산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번 크리에이터 시스템의 도입은 전반적으로 브런치스토리 안에서 생산되는 글의 질을 높이고 작가들의 콘텐츠 완성도와 일관성을 어느 정도 요구하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후원 시스템은 더 근본적으로 실제 독자들이 작가의 글을 지지하고 있다는 액션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는 장치입니다. 반대로 작가들에게는 또다시 '독자들이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읽고 싶은 질 높은 콘텐츠를 제작해라'라는 무언의 압박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작가들 사이에서 품앗이식으로 누르는 라이킷이 아니라 실제 독자가 평가하는 후원으로 작가들의 경쟁력이 갈릴지도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번 후원 모델이 실패하고 카카오가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다시 실험할 수도 있지만, 그 시스템 또한 큰 줄기의 방향성은 소위 '고인물화' 되어가고 있는 플랫폼에 생기를 불어넣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이것은 건전한 비즈니스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생존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플랫폼 내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아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작년부터 카카오는 대내외적으로 꾸준히 성장성과 수익성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작년 데이터센터 화재 이슈 때 정점을 찍은 서비스 신뢰도 문제, 일부 광고주들에게 대부분의 매출이 집중되어 있고 수익모델 또한 다변화되지 못한 광고 시스템, 콘텐츠 업계의 성장 저하 등 다양한 요소들이 맞물려 있습니다. 현재 스토리 서비스들의 BM 다변화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카카오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숙제였습니다. 옳다 그르다, 당장 기분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 앞으로 카카오가 지향하려고 하는 방향성을 냉정하게 파악하는 것은 플랫폼 서비스 안에서 콘텐츠를 생산하는 우리들의 새로운 숙제가 될 것입니다.
크리에이터로 선정되지 못해서 실망하신 작가분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작가분들이 언젠가 브런치를 통해 수익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오랫동안 놓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업데이트가 더 큰 실망으로 다가왔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짐작이 갑니다. 저야 뭐 브런치에 가뭄에 콩 나듯 끄적거리는 게 전부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까지나 큰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내고 있다는 것은 곧 브런치스토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유저들이 이 서비스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번 이슈는 오히려 건강한 BM 구축을 위한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현재 유저들이 불만을 가질 수도 있고 앞으로 지속될 다양한 실험들을 경험한 유저들이 서비스 일관성을 의심할 수도 있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카카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새로운 실험들을 이어나가야 합니다. 프로덕트 기획의 관점에서 실험의 실패는 결국 모범답안의 조각을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 유저들이 서비스의 존속과 성공적인 수익모델 안착을 위해 해야할 일은 서비스에 꾸준히 피드백을 주고, 앞으로 브런치의 행보를 예측해 보고, 끊임없이 평가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비스가 제공하는 실험과 유저가 제공하는 피드백이라는 것은 굉장히 미묘한 지점에서 충돌하고 또 위기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영 신통치 않은 업데이트들을 계속하는 서비스에게 실망하고 많은 유저들이 기다리지 못해 떠날 수도 있고, 유저들의 건강한 비판이 어느 순간 근거 없는 비난으로 바뀌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뭐,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천천히 진짜 고인물 커뮤니티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구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서비스가 유저를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브런치스토리가 앞으로 유저들과의 줄타기를 얼마나 잘 하느냐겠네요.
* 3줄요약
1. 올해 스토리홈 업데이트와 브런치스토리 수익모델 적용 업데이트는 오랫동안 지속된 작가들의 불만, 오랫동안 부재했던 서비스의 수익화 구조에 대한 고민, 점점 떨어지고 있는 콘텐츠 질 개선, 신규 유저 유입의 필요성 등 다양한 원인들이 한꺼번에 작용한 결과로 보임.
2. 지금의 후원 시스템이 완성된 형태의 수익모델은 아닐 가능성이 크고, 앞으로 브런치스토리를 비롯해 다른 스토리 서비스들의 수익모델 찾기 실험은 계속될 것임.
3. 이번 크리에이터 선정으로 인해 실망한 작가분들의 마음 또한 충분히 존중하지만, (브런치스토리의 생존을 바라는 유저 입장으로서) 무작정 비난을 하기보다는 충분한 피드백을 주고 앞으로 계속될 다양한 실험들을 함께 테스트하는 시간이 필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