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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르륵 Dec 06. 2023

마흔, 시작하기 좋은 나이

글쓰기의 시작

 “당신, 글 써보는 거 어때?” 


늦은 저녁, 한참 드라마에 빠져 있던 시간 남편이 나에게 한 말이었다. 


"뭐?"


남편의 의식 흐름이 참 엉뚱하다 생각하고 무시했다. 그날 이후 남편은 계속해서 글을 써보라는 말을 했다. 농담 같지도 않은 말이라 그냥 넘기기 일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살아오면서 책도 많이 읽지 않았고 글은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내가 글이라니. 남편은 이 말도 안 되는 말을 3년 동안 지속했다.      


 그러던 2019년 11월경. 남편이 갖고 있던 오래된 노트북을 꺼냈다. 20년 정도 된 유물 같은 노트북이었지만 문서만 이용하면 됐던 터라 어떤 것이든 상관없었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오래된 노트북의 전원 버튼을 누르던 그 순간을. 


실제 사용했던 노트북


 막상 한글 페이지를 띄워놓고 보니 뭘 써야 할지 모르겠고 막막했다. 글을 써보라는 말을 듣고 노트북을 펴고 앉아있는 내 모습도 어이없었다. 잠시 고민하다 ‘그래, 뭐라도 써보자’ 하는 마음을 먹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의 첫 장르는 현대로맨스였다. 제일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했다. 자판을 치는 동안 생각하는 짧은 텀은 있었지만 첫 글쓰기 치고는 순탄하게 글을 써 내려갔다. 앉은자리에서 내 맘대로 1, 2화까지 마무리했다. 


 막상 쓰고 나니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했는데 당장 물어볼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그렇게 글 써보라고 했던 사람. 내 글을 보고 별로면 앞으로 글 쓰라는 말은 그만하겠지 싶었다. 일하고 있는 남편 옆에 노트북을 쓰윽 밀었다. 


“한번 봐줘.” 


 덤덤하게 이야기하고 거실에 나와 앉아 있는데 그 시간을 다시 떠올리면 뭔가 부끄럽기도 하면서 초조했던 거 같다. 나만의 비밀일기를 남에게 보여주는 그런 느낌? 기다리는 그 시간은 꽤나 길게 느껴졌다. 잠시 뒤 글을 다 읽고 난 뒤 남편이 노트북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나에게 건넨 첫마디.

      

“그래서? 다음에 어떻게 되는데?” 

    

 난 아직도 이 한마디를 잊을 수가 없다. 궁금해? 내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거지? 이때 느낀 묘한 기분은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남녀 주인공들이 어떻게 되냐며 재촉하 듯 묻는 남편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 글을 궁금해하는 그의 말에 새로운 감정 세포가 터지는 기분이었다. 남편은 원래 입에 발린 말을 잘 못 하긴 하지만 너무 가까운 사람이라 완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객관적으로 내 글을 평가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지금은 글 쓰는 플랫폼들이 다양하게 생겨났지만, 그래도 글쓰기의 문턱이 가장 낮은 곳은 바로 웹소설이었다. 어떤 제한도 없이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는 곳이 네이버 웹소설 무료연재였다. 그곳에 내 글을 올려보기로 결심했다. 내 나이 39세 첫 글쓰기 도전이었다.  

 

 2020년 1월 2일부터 네이버 웹소설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몇 편에 글을 더 썼고 그 글을 읽어본 남편은 바로 최신형 노트북을 사줬다. 단 조건이 있었다. 올해 이 노트북 비용을 뽑아내라는 것. 부담스러워서 싫다고 하자 열심히 하라는 의미라며 회유했다. 얼떨결에 최신형 노트북을 받은 후 무언의 압박 속에서 열심히 글을 썼던 것 같다. 남편은 아니라고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노트북 비용 뽑기가 각인 됐던 것 같다. 


그 덕이었을까? 


결과적으로는 그 해에 노트북 비용은 뽑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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