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인문학 미술관
멈추어서 꽃을 자세히 봐주기를 바랐던 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
아무도 꽃을 보지 않는다. 정말이다.
너무 작아서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고, 무언가를 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효율성과 생산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1900년대 초반의 뉴욕 한 복판에서 꽃을 자세히 봐주기를 바랐던 화가가 있어요. 그녀는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입니다. 당시 남성 화가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예술계에서 꽃 하나를 주인공으로 크게 그린다는 것은 여성의 나약함으로 비추어졌을지도 몰라요. 속도 중심의 사회에서 그녀가 추구했던 메시지 또한 사회적 분위기가 맞지 않았어요. 잠시 멈추어서 꽃을 보라니! 노동의 가치로 사회를 위해 헌신하며 경제적 이바지를 해야 하는 것이 옳은 가치로 여겨지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조지아 오키프는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화가이자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한 명이예요. 그녀는 그림의 소재를 대부분 자연에서 가져와요. 다양한 꽃, 뉴멕시코의 광활한 사막과 언덕, 구름, 동물 뼈 등을 주로 그렸는데 특히 꽃을 확대해서 그린 작품이 많아요. 졸업 후 뉴욕에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면서 꽃의 중심 부분을 화면 가득히 크게 확대해서 그린 작품들을 그렸어요. 꽃잎이 겹쳐지는 부분을 놓고 세간에서는 여성의 생식기를 표현한 것 같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녀는 절대 그런 의도를 갖고 그린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녀의 말에 작품의 의도를 가늠해 볼 수 있어요.
나는 내가 본 것, 다시 말해 꽃이 나에게 의미하는 바를 그릴 것이다.
나는 그것을 묘사함으로써, 꽃을 구경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일깨울 것이다. 심지어 나는 바쁜 뉴요커조차
내가 꽃을 통해 본 것을 알아보는데 시간이 걸리게 만들 것이다.
그녀가 시간을 들여 ‘본 것’은 자연이었고, 자연에서 본 것을 반복해서 그리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만들어요. 그녀의 단순화된 자연은 후에 추상으로 이어져요. 그녀의 추상은 영감이 떠올라 단번에 나온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관찰하고, 또 그리기를 반복하며 나온 자연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어요.
1분 동안 하나의 사물을, 또는 한 사람을 쳐다본 적 있나요? 타이머를 맞춰보고 1분 동안 내가 사랑하는 무언가를 쳐다보는 실험을 해 보세요. 사랑하는 가족들의 눈을, 아름다운 꽃을, 하늘의 구름을 그리고 그림 작품 한 점을. 1분이라는 시간이 아주 짧은 시간일 것 같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것만 생각해서 바라보면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어요. 바라보는 대상의 몰랐던 모습에서 분명 새롭게 발견하는 무언가가 있을 거예요. 바라보기만 하더라도 우리가 그 대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면 1분은 전혀 아깝지 않은 시간이죠.
오키프의 바람대로 1분의 시간을 내어 집에 있는 데이지 꽃을 바라보았어요. 꽃의 중앙을 바라보고, 만져 보고, 향기를 맡아보았어요. 그 작은 꽃 안에 옹기종기 수술 암술이 야무지게 붙어 있는 것이 신비로웠어요. 하얀 꽃잎에 여기저기 떨어진 노란 꽃가루들을 보면서 이 작은 세계의 움직임에도 우주의 원리가 깃들어 있음을 새삼 깨달았어요. 작은 동전만 한 꽃의 중앙을 톡톡 만져보며 아기살보다도 부드러운 촉감을 느껴보기도 했고요.
현대를 살아가는 바쁜 우리는 주변을 애써 둘러보지 않는 이상 대부분 스크린에 눈을 두고 있는 것 같아요. 오키프는 이러한 우리에게 내가 이렇게 ‘줌인’해놨으니 잠깐 여기 좀 봐달라고 하네요. 그녀의 바람대로, 잠시 숨을 고르고 1분만이라도 멈추어 무언가를 지그시 바라보는 연습을 해볼까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의식 없이 몇 시간씩 바라보는 것과 주체적인 나의 눈으로 1분을 바라보는 것은 시간의 양에 상관없이 질적으로 많이 달라요. 그녀의 그림을 보며 잠시 멈추어 ‘작은 아름다움’도 볼 수 있는 눈을 갖기를 희망했습니다. 유튜브와 꽃의 대결 구도 속에서 단 몇 분만이라도 꽃이 승리하기를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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