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힘이 세다 강연
오늘의 강연 주제는 '여성은 힘이 세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힘이 센 여성인가? 하는 질문을 해보았는데요. 엄청난 힘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진 평범한 주부로서, 힘세지고 싶어 노력하는 저의 일상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신체적으로 어떻게 힘이 세어졌는지, 그리고 내적으로 단단해지기 위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요. 그 키워드는 나, 루틴, 시간입니다.
저는 순발력도 스피드도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운동 꼴찌였어요. 그런데 코로나시기에 남편의 권유로 어쩌다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달리기를 하면서 저는 제 자신을 새롭게 발견했어요. 단거리는 이루말할 수 없이 느리지만, 대신 천천히 오랫동안 달리는 것을 잘한다는 것을 난생처음 알게 되었어요. 달리기를 시작하고나서야 내가 이렇게 땀이 많다는 것을 마흔이 되어 알게 되었죠.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코로나 시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이 동네 저 동네 뜀박질을 하게 되었어요. 매일 아침 운동화를 신는 저를 보고 큰 딸이 "엄마 또 뛰어?"라고 묻는 것이 '또띠아'라는 저의 별명이 되었습니다. 천천히 조금씩 거리를 늘려나가는 재미에 신이 난 저는 급기야는 풀마라톤에 3번 도전해서 무사히 완주했습니다. 정말 힘센 여성이 되었죠.
풀마라톤을 준비하면서 몸의 한계를 직접 체험하고 극복하고 다시 달리는 이 모든 과정들이 저에게 큰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달리고 난 뒤의 제 자신이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운동의 긍정적 영향 때문이었는지, 일 벌이는 거 별로 안 좋아했던 제가 새로운 것에 도전했었습니다. 그것의 시작은 그림인문학 북클럽 리더였고 이번 달 세돌을 맞았습니다.
이제 그림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그림을 좋아하다 보니 자꾸 들여다보게 되고, 무슨 일을 해도 그림과 연결을 시키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어서, 방금 강연을 마치신 이영미 작가님의 책 <미리, 슬슬 노후대책>을 읽었을 때 떠오르는 화가가 있었어요. 바로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입니다.
루소는 미술 전공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파리의 세관원으로, 아픈 아내의 남편이자 7명 아이의 아빠였던 평범한 가장이었습니다. 세관원으로 성실하게 일을 했던 그는, 40세 무렵 삶에 변화를 주기 시작합니다. 그건 주말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어요.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멀리 스케치 여행을 가지 못했지만, 미술관 식물원 동물원 등을 찾아가서 그림을 독학했습니다. 세관원을 은퇴하기까지 10년 동안의 주말 루틴이었습니다. 루소처럼 정식으로 그림을 학교에서 배우지 않고 취미로 독학한 화가들을 ‘소박파(naive art)’, ‘아마추어 화가' ‘주말 화가'라고도 불러요. 전문 화가는 아니었지만 주중에 열심히 일하며 주말에 무엇을 그릴지 생각하며 분명 그는 설레었을 것입니다. 그림 찐 취미 10년 만에 그는 세관원을 은퇴하고 화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그림을 보실까요? 뉴욕 현대미술관에 있는 <잠자는 집시 여인 The Sleeping Gypsy, 1897>,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 있는 <미식축구 선수들 The Football Players, 1908>입니다. 다른 화가들의 그림과는 달리 무언가를 보고 그린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열심히 세부묘사도 하고 사실적으로 그렸어요.
한 번도 사막에 가본 적이 없었지만 사막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모래 위 집시 여인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물덩이와 기타를 옆에 놓고 사자가 온 줄도 모르고 피곤에 지쳐 곤히 자고 있어요. 현실이라면 사자는 자고 있는 여인을 공격해야 맞지만 오히려 꼬리를 세우고 그녀를 지켜주는 것만 같아요. 현실에서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모습이죠. 머릿속에 떠오른 모습을 상상해서 그린 상상화에 가까워요.
<미식축구 선수들> 그림을 볼까요? 독학으로 배워서인지 인물의 구도나 형태, 비례 등이 잘 맞지 않아요. 루소 그림은 소위 ‘완벽하고 잘 그린 그림'과는 거리가 먼 아마추어 그림이에요. 하지만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그의 그림은 개성이 강하고 특별합니다. 당시 동료화가들은 그의 그림을 무시했지만 후에 피카소가 극찬한 화가이기도 합니다. 나이 마흔이었지만, 미리, 슬슬 매주 붓을 놓지 않았던 '루틴' 덕분에 루소는 좋아하는 일 하면서 노년의 삶을 이어나갔습니다.
두 번째 화가를 소개해드릴게요.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미국의 대표 여성화가 “조지아 오키프(1887-1986)"입니다. 작은 꽃의 중앙 부분을 큰 캔버스에 확대해서 그린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인데요,
조지아 오키프, 분홍 바탕의 두 송이 카라, 1928, 필라델피아미술관
조지아 오키프, 음악, 분홍과 파랑 No. 2, 1918, 뉴욕 휘트니미술관
조지아 오키프, 흰색 장미 추상, 1927, 조지아 오키프 뮤지엄
왜 그녀는 꽃의 중앙 부분을 크게 확대해서 그려놓았을까요? 그녀가 활동했던 시대는 1900년대 초중반, 뉴욕이었습니다. 속도, 생산성,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산업화된 사회에서 어쩌면 그녀의 그림은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는 나약한 그림으로 여겨졌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그렸던 이유에 대해 그녀의 말을 들어볼까요?
아무도 꽃을 보지 않는다. 너무 작아서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고, 무언가를 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그녀는 속도를 줄이고 멈추어서 작지만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자세히 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놓치고 있는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라고요. 조지아 오키프는 그것이 꽃이었다면, 저는 그 아름다움이 여러분 자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지아 오키프의 말대로 무언가를 보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소중하다면 더욱 필요하죠. 그렇다면 나는 하루 24시간 중,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을 따로 두고 있는지 생각해 볼까요?
저는 그 시간이 새벽시간이었습니다. 달리기로 새벽루틴이 자연스럽게 생긴 후, 새벽의 맛있는 그 맛을 알아버렸습니다. 가족 모두 잠들어있는 깜깜하고 조용한 새벽. 저는 매일같이 우리 집 반 지하 골방에 내려갔습니다. 그 방은 아이들 놀이방이었는데 레고블록, 인형의 집을 싹 정리하고, 그곳에 아이들 어렸을 때 쓰던 책상을 가져다 놓았어요.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저는 매일 새벽 그곳으로 가상의 출근을 했습니다. 커피 한잔을 들고요. 그 방에 앉아 다이어리를 쓰기도 하고, 음악도 듣고, 책을 읽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저는 저에게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무엇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 돈이 되지 않더라도 내가 즐겁게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낼 것인지, 어떻게 사랑을 표현할 것인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소명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등등. 미루었던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하고 또 답을 하는 그 고요한 시간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나를 위한 시간을 “Me Time”이라고 하죠? 미타임을 통해서 저에 대해 고민하고, 상상하고, 꿈꾸면서 엄마도 아내도 아닌 저 자신을 많이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시간이 쌓이면서 새로운 일도 하나씩 도전해 보게 되었고요. 미타임을 통해 저는 내면이 더 단단하게 되었고, 저를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어령 선생님께서 “가장 부유한 삶은 이야기가 있는 삶이라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오직 나를 위한 시간”에서부터 창조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 그 블록시간을 처음에는 가족들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삶의 루틴으로 그 시간을 채워나가다 보면 아이들도 '우리 엄마 혼자 있는 시간이구나' 생각하며 금새 익숙해지게 됩니다.
나의 이야기가 어떻게 완성될지 그건 아무도 모르지만, 확실한 건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 일때만 내 삶이 풍성해지고, 힘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에요.
주말마다 자신의 취미생활을 했던 앙리 루소처럼 나만의 루틴을 만들고,
오키프가 꽃을 확대시킨 것처럼,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확대시켜서 자주 바라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미타임”을 응원하면서, 이상, 여성은 힘이 쎄다 강연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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