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이 질리다

치킨은 추억을 닮아

by NaeilRnC

배경 : 추석 내내 치킨을 먹고 싶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튀김옷 속에 감춰진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그 음식은 한때 나에게 완전한 진리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치킨이 질리기 시작했다. 한때 사랑했지만, 지겨워졌던 그 음식이 다시 떠오르다니, 오늘은 치킨이라는 묘한 놈에 관한 이야기다.


□ 치킨, 그놈

치킨에는 바비킴의 노래 ‘사랑 그놈’처럼 묘한 여운이 있다. 뜨거운 기름에 갓 익혀나온 치킨은 뜨거운 음식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치킨은 쓸쓸한 음식이다. 이별 후 혼자 삼겹살집에 가지 않는다. 하지만 혼자 소주 한잔 기울일 때 치킨은 매우 유용한 술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치킨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세상이 온통 치킨뿐이었다. 연휴 내내 치킨집 사장이 주인공인 드라마와 치킨집이 주요 배경인 영화가 나왔고 하다 하다 의학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치킨을 뜯는 장면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이재용 회장도 석방되자마자 치킨을 뜯었다고 하던데, 이쯤 되면 치킨은 만인지상이요, 그 앞에서 모두를 평등하게 만드는 묘한 녀석이다.


□ 우정도, 사랑도, 이별도 함께

우정의 치킨은 김서방 양념치킨이었다. 고3때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나를 매일 찾아오던 J는 그의 여자친구 집 근처에 있는 가게로 나를 데려갔다. 나는 그곳에서 매일 짐승들의 사랑싸움을 지켜보며 양념치킨에 화풀이했었다. 사랑과 이별의 치킨은 오븐마루였다. 2017년 나는 내일R&C라는 사업자를 내고 오피스텔처럼 쓰던 지하방에 살았는데 그 근처에는 중학교 때부터 같은 반이었던 모쏠 K가 살고 있었다. 학교 선생님이었던 K는 퇴근할 때마다 ‘오.마’를 외쳤고, 우리는 매일 그곳에서 치킨을 시작으로 매일 밤 달리기 주자가 되었다. 매일 연애를 하고 싶어하던 K가 안쓰러웠고, 여성들을 소개해 줬는데, 희한하게 여성들과 깨질 때마다 닭집이 망해 나갔다. 그렇게 오마가 망하고 잠시 다녔던‘오빠닭’도 망하면서 K의 집 앞에 오픈한 ‘맛닭꼬’에 정착할 수 있었다. 나는 맛닭꼬에서 그에게 연애 상담을 해줬고, 그때의 치킨은 상담의 대가였다. 교육의 결과 드디어 세 번째 연애를 시작했던 K는 또 한 번의 이별을 끝으로 나와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소문으로는 모든 속세의 연을 끊고 중이 되었다고 하지만, 개가 똥을 끊을 수는 없을 것이다.


□ 치킨이 질리다

한국에서 치킨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음식은 단순히 맛의 경험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의 트리거로도 작용한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정서적 대체’라 부르는데 사람은 결핍된 감정이나 관계의 빈자리를 음식으로 메우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치킨은 한국인의 정서적 보상 음식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겐 퇴근길 아버지가 사 오던 통닭의 냄새가 가족의 행복이었고, 누군가에겐 군대에서 허락된 유일한 자유의 향기였으며, 이재용에게 치킨은 옥살이 동안 그리웠던 바깥세상의 맛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치킨은 한국 사람들에게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정서적 위로로 작용했을 것이고 국민 음식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치킨이 질렸던 이유는 기억이 너무 많아서였을 것이다. 사기를 당해 수중에 돈이 없을 때도 먹고 싶었던 치킨은 한때 나에게 위로이자 외로움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치킨이 땡겼던 이유는 기름 냄새가 그리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명절 때마다 전을 부치던, 녹진하면서 따뜻한 기름 냄새 속에는 분명 웃음이 배어 있었을 것이다.


퇴사를 권고받았고, 앞으로 먹고살 길은 막막하고, 그럼에도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 불안감 속에서 내가 치킨을 먹고 싶었던 이유는 회복을 위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사람은 불안할 때 새로운 자극보다 익숙함을 찾는다고 한다. 비 내리던 명절이, 그 외로움이 본능적으로 기름 냄새를 찾게 되었고, 그 냄새가 바로 치킨이었을지 모른다. 난 튀긴 닭보다 구운 닭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다녔던 치킨집은 닭튀김이 아니라 닭구이집이었다. 그럼에도 굳이 기름 냄새 나는 치킨이 먹고 싶었던 그 이유가 그리움과 외로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잘 계시냐고, 밥은 잘 드시냐고, 또 연락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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