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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저김 Dec 11. 2023

#13. 어른들을 위한 동화

지문사냥꾼(이적) & 빅 피쉬(팀 버튼)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파이이야기' 마지막에는 이런 대화가 나온다.


"두 이야기 다 배가 가라앉고, 내 가족 전부가 죽고, 나는 고생하지요."

"맞아요."

"그럼 말해보세요. 어느 이야기가 사실이든 여러분으로선 상관없고, 또 어느 이야기가 사실인지 증명할 수도 없지요. 그래서 묻는데요.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나요? 어느 쪽이 더 나은가요?"


파이이야기 소설 내용 자체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지만, 사실 가장 오랜 시간 마음에 남았던 부분은 바로 위 대화였다.

아마도 그래서 (개봉한 지 20년이나 됐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긴 했지만...) 개봉 당시 본 뒤로 한 번도 제대로 다시 본 적 없던 영화가 불현듯 다시 보고 싶었던 이유와 맞닿아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 누구보다 녹록지 않은 현실을 살아간 에드워드에게는 자신의 삶을 (약간의 과장을 보태) 반복해서 가족과 지인들에게 들려준다.

아들인 '윌'이 태어난 순간 역시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주치의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차이에서 알 수 있듯이

(당사자인 아들은 아닐 수 있어도) 제 3자 입장에서 이야기를 듣는 청자입장에서 더 마음에 들어 하는 이야기는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이고,

이렇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만이 주는 힘이 그리스신화, 성경 같은 것에도 적용되어 사람들에게 계속 회자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에드워드 혹은 지문사냥꾼의 저자인 '이적'처럼 글재주나 말재주가 없는 나에게는

이런 사람들이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다.


2005년에 출판된 '지문사냥꾼'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를 읽을 때처럼 이야기에 매료되는 경험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영화와 마찬가지로 20년 가까이 시간이 지난 지금 읽었을 때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지문사냥꾼의 첫 이야기인 '활자를 먹는 그림책'은 점점 글(책) 보다는 영상(유튜브, OTT 등)에 빠져드는 현실을 비쳐주는 것 같았고,

'음혈인간', '지문사냥꾼'은 소수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95년에 발매된 패닉의 '왼손잡이'라는 노래의 소설 버전처럼 보이기도 했다.


동심은 이미 잃은 지 오래라, 동화를 읽는 목적을 동심회복에 두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상상력을 자극하고, 다소 유치하더라도 동화 같은 이야기가 주는 힘은 있다고 믿기 때문에

어른이 된 지금, 모두에게 어떻게 읽히고 어떻게 감상했을지 궁금해진 마음에 이번 모임의 첫 주제를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정해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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