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끄저김 Dec 11. 2023

#14. 믿음, 의심, 불신, 그리고 분노에 대하여

분노(요시다 슈이치) & 분노(이상일)

소설 원작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왜 봤는지도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떤 내용인지도 전혀 모른 채 봤던 영화였다.


이동진 평론가가 이야기한 좋은 영화의 기준인 '두 번 시작되는 영화'에 부합한다고 느낀 영화이기도 했는데,

살인사건으로 시작하고, 살인사건의 범인이 드러나는 끝맺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끝났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워서 잔상이 오래 남은 영화였고, 그래서 이 영화가 더 좋았던 것 같다.


그 뒤에 소설 원작이라는 사실을 알고, 읽어본 소설에서는 영화에서는 (여러 제약이 있었겠지만) 다루지 않았던 수많은 이야기로

영화에서는 전혀 알 수 없던 이야기들과 각 캐릭터의 심리묘사까지 탁월해서 말 그대로 술술 읽힌 책이었는데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 든 첫 번째 생각은 '영화를 먼저 보기 잘했다'였다.


원작이 있는 영화의 경우, 대부분 원작을 보면서 그리는 이미지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실망하는 포인트가 하나씩은 생기기 마련인데,

그런 부작용을 원천 차단할 수 있었고

영화라는 매체가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 없다는 점 자체가 또 하나의 매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독이 생략한 부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단순한 스토리라인이지만

세 가지 이야기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상황과 비슷한 뉘앙스의 대사들은 관객과 독자들을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대상과 목적이 분명한 분노는 말 그대로 분노를 표출할 대상과 이유가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불특정 다수를 향하고 이유를 알 수 없고 정체를 모르는 분노의 위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이유 없이 누군가를 너무 쉽게 믿기도 하고, 별 이유도 아닌데 쉽게 의심하기도 한다.

'분노'는 이런 우리의 모습을 다시 보게끔 하지 않나 싶다.

'나'의 믿음을 배신한 '너'에 대한 분노는 행동으로 옮겨지고

'너'를 믿지 못하고 의심한 '나'에 대한 분노는 마음에 응어리로 남겨져 좀처럼 극복하기 힘들어 보인다.


'분노' 속 캐릭터와 나는 과연 얼마나 다른 사람일까, 아마 나도 전혀 다르지 않은 그들 중 하나일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13. 어른들을 위한 동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