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존 윌리엄스) & 패터슨(짐 자무쉬)
"고래"라는 소설을 읽은 다음에 읽어서 그런지, 그래서 매운맛에 절여져 있어서 그랬는지,
이 무미건조하고 심심한 내용이 책 읽는 속도를 내는 데는 약간의 방해가 됐던 것 같다.
"데어 윌 비 블러드"라는 영화를 본 다음에 보고, 성공과 욕망에 절여져 있는 주인공을 본 다음이었지만,
하루하루 묵묵하고 담담하게 성실히 살아가는 주인공을 바라보는 재미는 꽤 컸다.
의도치 않게 뭔가 대척점에 서있는 책과 영화를 동시에 보다 보니, 더 정리가 안 되는 느낌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각각의 매력이 차고 넘쳐서 각각의 재미를 느끼기에도 충분했다.
사실 스토너의 삶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는 사실이 난 의외였다.
다들 어떤 삶을 살고 있길래... 스토너의 삶에 연민을 느끼는 걸까..
내가 바라보는 스토너는 누구보다 단단하고, 인생의 중대한 갈래길에서 누구보다 확실하게 자신의 선택을 굳건히 밀고 간 강인한 사람이었는데..
(마찬가지로, 패터슨 역시 단단하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너무나도 부러운 사람이었다.)
개인적으로 (이것도 편견이겠지만) 자기 홍보의 시대라고들 하고, 스스로를 잘 어필하고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그렇게 스스로를 잘 과시하는 사람들에 대해 크게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그보다는 "인비저블"이라는 책에서 다루는 사람들처럼 묵묵히 자신이 맡은 바 해내가는 사람들에 대한 리스펙이 훨씬 크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건 뒤에서 묵묵히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나이가 되기도 했고,
사람들이 떠받들지도 않고 우러러보지도 않을지라도
흔히 '꿈'이라고 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다 하더라도
현재 자신이 맡은 일에 긍지를 가지고 세상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나에겐 더 크게 와닿기 때문일 것 같다.
아마 그래서 올해 본 드라마인 '수수하지만 굉장해!'라는 드라마를 좋아했던 게 아닐까...
이 드라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이런 장면들이다.
독자에게 드러날 일은 없고, 단 한 번의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교열' 업무를 맡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누군가에겐 한가롭게 디오라마나 만드는 교열부 직원일지 모르지만,
소설의 내용을 바탕으로 집의 구조를 파악하고, 그 오류를 찾아내는 사람이 존재하고
그 누구보다 직업의식이 투철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스토너와 패터슨에서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누군가에겐 단조롭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재미없는 사람들일 수 있지만,
이런 사람들이 내 곁에 더 많고, 그래서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위대함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 나에겐 더 중요하다.
모두가 떠받들어주는 사람들은 이미 충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을 테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