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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비 Apr 20. 2021

불가항력에 반비례하는 여유

<목화맨션>, 김혜진


어중간한 모짊은 늘 감정을 엉클어뜨린다. 나의 학교 바로 앞 정문은 동네에 비해 세가 비싸 가게 회전율이 빠른 편이었다. 그러다 몇 해 전 유명 TV프로그램에 소개 되면서 더 오를까 싶었음에도 완만한 상승곡선을 꾸준히 그려갔고, 그 선을 따라가지 못 한 많은 가게들이 빠져나갔다. 그 중에는 이 동네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한 곳도 있었다. 이런 일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다반사가 됐지만 그 건물 지붕 아래 살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늘 시금씁쓸하다. 한 건축가의 말에 따르면 젠트리피케이션은 절대 막을 수 없는 것이고 다만 그것을 지연시키는 것만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결국 그 공간이 어떤 이에게 무슨 의미를 띄느냐 하는 말은 회계장부에는 적히지 않는 감상에 그치고 만다. 그곳을 삶의 터전처럼 여겼다고 해도 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는 것이었다. 결국 그 터전은 다른 이에겐 그저 부동산일테니까.



집도 마찬가지겠지. 긴 시간동안 함께해 온 공간이라 할 지라도 법적소유권자가 나가라고 하면 그래야 하는 것이고, 보증금을 올려달라 하면 그래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법에서는 종이 뒤에 사람이 없는 것만 같다. 그런데 그 법 마저도 모두 사람이 집행하는 것이라 판결은 끝이 났어도 감정은 거기에 남아있다. 이 감정은 대게 찝찝하다. 갑의 위치에선 더욱 그렇고, 을에 대해 많이 알 수록 더욱 그러하다. <목화맨션>에서 만옥은 세입자가 된 순미와 너무 친해진다. 어떤 친분은 때로 일을 그르치기도 하는데, 불행히도 만옥과 순미의 우정이 그랬다. 만옥은 순미에게 일말의 희망을 약속했다가 나중에가선 모질게 끊어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감정이 자꾸 들어찼고, 그렇게 어중간해진 모짊은 많은 걸 엉클어뜨렸다. 무딘 칼로 야채를 자르다보면 잘 썰리지 않아 단면이 짓이겨지고 미끄러져 손이 베기 십상이다. 그 무딘 칼처럼 만옥의 어중간한 마음은 순미와의 관계를 짓이겼고, 이문이 아니라 죄책감만 덤터기 쓴 채 계약을 끝냈다.



그럼에도 만옥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선을 긋기에 순미는 너무 따뜻했고 만옥은 외로웠으며, 두 사람 간의 계약을 존속하기엔 남편의 병환이 악화 되며 한푼이 아쉬운 상황이 됐다. 그러니까 불가항력이었다. 마음을 베푸는 데도, 문서 뒤 사람을 챙기는 데도, 모두 돈이 필요했고 권력이 있어야만 하는데 순미와 만옥은 둘 다 그러지 못했다. 언덕 길을 올라가기엔 악셀을 누를 힘도 남은 연료도 없었다. 그저 브레이크만 밟은 채로 최대한 더디게 내려가길 비는 것이 최선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고, 색을 덧대어 사람들이 몰려오게 되면 자본이 들이닥친다. 그러면 처음 그 동네에 들어와 색을 입히던 사람들은 내쫓기게 된다. 그렇게 가파른 골목길은 음식 한접시가 2만원 대를 웃도는 핫플레이스가 됐고 관광객은 늘어났지만 어떤 사람들은 씁쓸히 발돌릴 수밖에 없는 곳이 됐다. 이태원의 인기가 처음엔 호재였을 거다. 호재에서 그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났으면 좋을텐데 애석하게도 삶은 프레임 밖에서도 계속 된다. 목화맨션도 마찬가지로 책장이 닫혀도 계속 거기에 있을거다. 그 결말이 좋든 나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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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인지 아닌지도 살아봐야 알지. 좋은지 나쁜지 뭐든 당장 알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 <목화맨션>,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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