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박서련
우리 아빠는 게임을 좋아한다. 부루마블, 루미큐브 같은 보드게임부터 온라인 게임까지 아빠의 가장 오랜 취미가 게임이었다. 게임 하나를 줄기차게 하기보다는 만렙까지 찍고 다른 게임으로 넘어가기를 반복하신다. 그래서 여러 게임을 섭렵했는데, 아빠가 해 온 게임 중 유일하게 내게 이 게임은 정말 별로였다 말했던 것이 리그오브레전드였다. 게임의 만듦새에 대한 비판은 아니었고, 게임 내 자리잡은 혐오를 두고 한 말이었다. 게임을 시작한 첫날에 채팅창은 부모님 안부로 가득 찼다고 한다. 저급한 힐난을 참아가며 할 만큼 좋은 게임은 아니라며 나에게 절대 하지말라고 했다. 잔뜩 상처받은 얼굴로 습기 어린 당부를 하는 아빠가 처음엔 귀여웠다. 그러나 얼마 후 그 생각은 싹 사라졌다.
친구들과 다섯이서 피씨방에 놀러갔었는데, 다섯명은 참 애매한 숫자다. 크레이지아케이드를 하기엔 한명이 많고, 테일즈런너를 하기에도 팀을 나눌 수 밖에 없다. 다섯명이서 할 수 있는 게임은 정말 리그오브레전드 밖에 없었고, 그날 한시간 내내 회원가입을 하고 처음 시작했다. 다섯명이서 주먹구구식으로 뚝딱뚝딱 포탑을 하나씩 부숴가는 건 재밌었다. 그날 하루는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소환사의 협곡에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후로도 게임을 꽤나 했는데 문제는 우리가 늘 다섯명일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몇 명이 빠지면 모르는 사람들과 팀을 꾸려 게임에 참여해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가관이었다.
조금만 못하면 입에 담지도 못 할 욕설이 오갔다. 그냥 직설적인 욕설도 아니었고, 그걸 꼬고 또 꼬아 그 뜻을 알 수도 없는 괴랄한 언어가 쏟아졌다. 나보다 게임을 좀 더 오래한 친구에게 무슨 뜻이냐 물을 때마다 친구는 망설이다가 소근거리며 말해줬고, 풀이하면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저급한 말들이었다. 그때 아빠의 말이 크게 와닿았다. 또 동시에, 아빠가 봤을 채팅창도 이와 별로 다를 것 없었으리라 생각하니 속상하고 화가났다. 익명성 아래에서 그 몇 픽셀의 창은 그냥 배설의 공간이 됐다. 무법지역이 따로 없었다. 온갖 혐오와 조롱과 힐난을 자기 네들 입맛에 맞게 편집한 단어들은 재밌단 이유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러니까 정말, 상상 이상으로 혐오가 만연한 세상이었다.
무엇보다 암담한 건 이 게임이 당시 피씨방 점유율 1위였다는 데 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채팅창을 방관하거나 채워가고 있으며 그 채팅창에 수치를 느낀 사람들은 결국 창을 닫고 게임을 포기한다. 더러워서 못 해 먹겠다고 말하는 친구들을 보면 보통 혐오의 대상이었다. 어리거나, 여자이거나, 부모님이거나. 그때 게임을 같이 한 친구들 중에 아직도 리그오브레전드를 하는 친구는 딱 한명 밖에 없는데, 걔는 늘 먼저 나서서 남자인 척을 한다고 한다. 전에 보이스가 켜진 걸 모르고 게임했을 때 여자인 걸 알자마자 게임을 조금만 못하면 여자라 못한다며 깎아내렸고, 조금 잘한다 싶으면 치근덕댔던 기억이 아주 안 좋게 박혀있어 이젠 그냥 남자인 척 게임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게임 속 익명은 어리지 않고, 늙지 않고, 여자가 아니며, 게임을 꽤나 잘하는 남성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었다. 그 중 하나라도 노출되면 그때는 익명 뒤에 숨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친구는 게임을 계속 하기 위해 남자인 척 하는 걸 택했다고 한다. 어떤 게임을 할 때는 가끔 성별도 포기해야만 한다. 진짜 웃긴 소린데, 하나도 웃을 수 없는 세상이다. 웃으려면 프로필을 바꿔야했다.
여자는 다음 게임의 대기 버튼을 누르고는 덧붙인다.
저는 이 게임 입문하고서는 저보다 잘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어요. 게임중에 누가 혜지 소리를 꺼내면 그게 저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 너무 화가 나요. 그럼 나도 나보다 게임 못하는 사람한테 아무 남자 이름을 붙여서 놀려도 되나? 남자들이 나보다 게임 못하는 건 당연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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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라고 그만해. 계속 욕 쓰면 아이디 정지 먹어.
엄마가 왜 욕이야? 내가 네 엄만데.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박서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