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3년 간 매일 블로그를 썼더라. 그런 꾸준함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건지, 그냥 그 시절에는 힘이 남아 돌아서 글로 풀었던 건지, 참 신묘한 일이다. '이게 왜 안되지?' 싶을 정도로 타인에 비해 수월하게 해내는 게 바로 재능이라는데 그러면 그때의 나는 그런 재능이 있었나?
그럴리가.
재능이라는 단어는 너무 무겁고 과분해서 감히 붙일 수는 없다. 그런 건 최진영이나, 최승자나, 그런 사람들에게나 허용된 단어 같아서. 나의 씀은 다른 증상이었던 거 같다.
책을 중독적으로 읽기 시작한 때부터 자꾸 뭘 써댔다. 생전 글로 어떤 성과를 본 적 없던, 그 흔한 백일장 상장도 하나 없는 사람에게 그런 씀은 그저 낙서였다. 생산이 아니라 잉여인, 막 읽은 텍스트의 대단함을 속으로 끌어안고 끝낼 수가 없어서 괜히 주절대는 호들갑의 낙서. 그런 낙서를 매일 같이 하고 지내니, 쓰는 게 익숙해졌다. 아주 어릴 때부터 샀던 종이 다이어리를 2월을 채 넘기지 못했던 그 애가, 매일 같이 필사 노트를 채워나가다가 결국 매일 쓰는 사람이 되는 걸 보면 사람 일 참 모른다.
그래서 아주 명백히, 나는 읽지 않고 쓴 글과 읽고 쓴 글의 성김의 정도가 확연했고(당연히 읽고 쓴 글이 훨씬 촘촘했다.) 나아가 읽지 않으면 쓰지 않았다. 나의 씀은 모두 읽음의 부산물이었으며, 씀이 요즘의 읽음에 대한 증상이었고 진단이었다.
단골 서점의 J작가님은 저 요즘 쓰질 않아요, 라고 하면 너 힘들구나, 잘 못 읽는 거 보면. 이라고 진단하신다. 나의 읽음은 곧 씀이었고 둘 중 하나가 어그러진다는 건 힘들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런 진단은 내가 책을 업으로 삼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던 때부터 때 맞춰 앓는 계절 감기가 됐다. 정말 겨우, 너무 좋아하니까, 이걸 잃고 싶지 않아서 돌아섰을 뿐이었다. 아주 돌아선 것도 아니고 단지 책으로 돈을 벌 지 않겠다고 고민 끝에 선택을 했던 게 다였다. 그냥 거긴 너무 불안하고, 영세하고, 사양산업이며, 그런 현실 사이에서 내 애정이 깎일까 두려웠다. 정확히는 내 애정이 그정도일지 시험하는 일이 두려웠다. 때문에 책을 제하고 남은 선택지 중에서 가장 쉽고 빠른 길을 골라 돈을 벌었다.
그러고는 책을 못 읽었고, 그러나 나를 깎아서 번 돈은 쌓이니 이걸로 책은 계속 샀고, 그렇게 산 책 중 어느 하나 읽지 못 하고 여러 계절이 흘렀다. 그러면서 뭐라 말할 순 없지만 분명히 어떤게 죽어갔고 내 블로그는 정돈되지 않은 단말마만 그득해졌다. 내가 진짜 글에 재능이 있었으면 그 단말마들이 조금의 편집만 거쳐도 팔 수 있는 IP로 바뀔 수 있었을텐데 전혀 아니더라? 그래서 작가의 꿈은 좀 미루기로 했다. ㅋㅋ
회사 생활은 인턴과 정규직을 굽이굽이 걸쳐 퇴사로 종결됐다. 스스로의 방어기제 때문인지,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여러 사건들을 회사에서 겪고 버티다 그만두었고, 그러고서는 책이 슬금슬금 다시 잡혀서, 이제는 매일 책을 한번은 펼치던 그때처럼 읽는다. 그러면서 서점에 놀러가듯 들르고, 그렇게 들른 곳에서 더이상 서점에서 j작가님과 마음님은 내 얼굴을 보고 짐짓 놀라 슬픈 사람을 위한 책을 건네지 않는다. 그저 요즘 가장 좋아하는 책에 대해 떠들기 바쁘며 블로그를 켤 때 들던 왠지모를 의무감도 지워졌다.
그쯤에, 영화가 혹은 영화제가 좋아서 그 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을 무더기로 만났다. 좋아하는 걸 업으로 둔 사람들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책 앞에서 자꾸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따져대며 망설이던 내가 무색해질 정도로. 어쩌면 나는 복잡해서 좋아하는 것과 멀어졌고, 그때의 내가 단순했으면 그저 여기의 사람들처럼 좋아하는=일!이라고 아주 직선적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 단순하고 용감한 사람들에게 자극됐고, 결국 당장 내가 좇을 건 책이었다.
돈 받고 하는 일이 되면, 어찌 됐건 사람이 힘들고 일이 힘들어지는 건 당연지사지만 그래도 그걸 버티게 하는게 하나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나에겐 그게 영화이고, 그래서 시간 비는 틈을 타서 계속 영화를 본다던 친구가 있다.
기자 일이 참 삶과 일의 경계도 없고,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불합리적인 부분 투성이지만 나는 월급일만을 기다리면서 살지는 않는 거 같다고. 그냥 내 몫의 취재를 하다보면 어느새 월급일이 되어있더라는 언니가 있다.
애정이 그런 걸 이겨내게한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도 소진되지 않게 한다. 그런 애정의 마음을 따라 가면 행복과 여유의 매일로 도착할 거라고, 어쩌면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건 그런 순진한 믿음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