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롯트 프페라 , 비비드핑크 F촉
꽤 오래 전 나는 회사를 다니는 와중 한 아이를 소개받아 퇴근 후 과외를 하기 시작했다. 대학생이 아닌 직장인으로써 과외를 하게 되다보니 돈을 더 벌어야겠다라는 생각보다는 부모님이 바쁘셔서 전혀 챙김을 받지 못하는 이 중학생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주어야겠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이 아이는 ADHD였고 2시간을 집중하는 일은 좀처럼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한시간씩 쪼개서 매일매일 퇴근 후 그 아이를 만나러갔다. 시험기간이면 일주일 내내 그 아이를 만나러 갔고, 갈 때마다 빈손으로 가는 법이 없었다. 간식 하나라도 꼬옥 챙겨서 그 아이가 먹을 수 있게 했다. 그렇게 헌신하는 내 모습에 아이 어머님은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고 어느 날 내게 선물 하나를 주셨는데 내 이름 석자가 각인된 예쁜 만년필이었다.
"선생님과 핑크색이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라는 말과 함께 건네셨는데 특별한 무언가를 선물 받은 느낌이라 무척 행복했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만년필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만년필의 만자도 모르는 시절이었는데 예쁘니까 그냥 자꾸 꺼내보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아이의 어머님이 필기구 회사를 운영하고 계셨다. 그래서 그때부터 심심할때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구경하곤 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내가 현재 그 회사에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는 것- 이 집을 매일 들락거리면서 한번도 나는 이 회사에서 일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해봤는데 아이에 대한 사랑을 옆에서 쭈욱 지켜보시던 어머님께서 본인의 회사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이 회사에 입사해서 4년넘게 일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내가 이 곳에서 만린이 친구들을 위해 이 핑크 만년필(그 당시엔 이름도 모름), 파이롯트 프레라를 추천하고 있다는 사실이 순간순간 신기하기도 하고 또 놀랍다. 좋은 구두는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준다는 말처럼 좋은 만년필도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 주는 것만 같은 느낌- 나의 이 인생 첫 만년필은 내가 갖고 있는 그 어떤 비싼 만년필보다 제일 소중하고 제일 특별하다. 나의 삶을 이렇게 계속 이어주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