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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 마음, 프리패스 여행 중입니다

브런치 글벗님들께 드리는 편지

by 숲song 꽃song

봄바람보다 가을바람이 더 무서운 줄, 지금에서야 알았습니다.
추석날 허리를 삐끗하고, 뒤이어 감기까지 호되게 앓고 나니, 한동안 붙들고 있던 일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그저 마음 닿는 곳으로 떠돌고 싶었습니다.


아무 걸림도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은퇴할 때, 저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이제부터 하고 싶은 건 다 해봐.
굳이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괜찮아.
하다가 하기 싫어지면 멈춰도 돼.
대신 가슴이 뛰는 일이 생기면 망설이지 말고 뛰어들어.
그 자유가 필요해서 조금 앞당겨 은퇴한 거잖아.
그리고 당분간은 ‘돈이 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겠어.
돈엔 책임이 따라붙고, 책임은 다시 너의 발목을 붙잡을 테니.

올해로 은퇴 4년째.

돌아보니 감사하게도, 망설임 없이 정말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지냈더군요.


라라정원 만들기, 기체조, 남편과 함께 걷고 읽기, 유럽 두 달 여행, 인도 여행, 일본 그림책 도서관 여행,
국내 그림책 기행, 국제그림책도서전 원화 도슨트, 일본 그림책 낭독활동, 그림책 읽기 모임,
3개의 독서모임, 글쓰기 모임, 브런치 작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벗어나 모처럼 ‘무용한 일’에 치열하게 몰두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늦가을, 텃밭과 꽃밭을 대충 갈무리해 놓고 보니, 작년 말부터 병원을 들락거리시던 양가 어머님들이 잠시 평안하실 때였습니다. ‘이때다!’ 싶은 마음이 들었지요.

몇 개월간 친정엄마의 병원 왕래와 입원생활을 챙기며, 언제 또 어떤 일이 다시 내 발목을 붙잡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도 크게 자리 잡았고요. 때맞춰 브런치 작가 생활을 시작하면서 생긴 습관, 매일 글을 쓰는 것도 아니면서 계속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습관에서도 잠시 벗어나있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넘게, 숲 속 집은 잠시 머무는 정거장이 되었습니다. 바람난 마음이 이렇게 길게 이어질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머문 어제와 오늘은 월동 준비를 했습니다. 난방 보일러 기름도 채우고, 나무데크에 오일 스테인도 새로 바르고, 갈무리하지 못한 꽃씨도 채종 하고, 마른 꽃대들도 정리하고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다시 살살 간질이지만, 아직 다 잠재우지 못한 바람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제풀에 사그라들 때까지, 그 바람을 조금만 더 즐기려고 합니다. 올라오는 작가님들의 글에 자주 들러 라이킷과 댓글로 인사드리지는 못해도 마음은 자주 브런치를 향합니다. 그건 어쩔 수 없네요.

폭설이 내리기 전, '돌아와 거울 앞에선 누이'처럼 책상 앞에 차분하게 앉아볼게요.


갈무리할 것이 많은 12월입니다.
브런치 글벗님들, 건필하시고 무엇보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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