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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song 꽃song Jun 12. 2024

누가 제발 나 좀 말려줘!(1)

아니, 그냥  내버려 둬!

 


 올해 3월 말,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은 후, 일주일에 한 편씩은 글을 써나가려고 마음먹었다. 5월 초, 여섯 편의 글을 발행할 때까지는 그 약속이 그런대로 잘 지켜지고 있었다. 5월 중순에 들어서자 1주, 2주 거르게 되더니 6월 중순에 이르도록 한 편의 글도 발행하지 못했다. 안 했다고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둘 다 맞는 말 같기도 하다. 브런치북에 연재하는 중도 아니었고,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맘이 계속 켕겼다. 변명이라도 해놓아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 급기야 책상 앞에 앉았다. 





 작년 6월, 우리 집에 새로운 정원이 생겼다. 집 뒤편에 있는 작은 개울너머엔 꽤 넓고 비탈진 돌땅이 있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그곳은, 큰 돌과 작은 돌들이 많이 박혀있는 데다가 땅도 고르지 않은 상태라서 손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곳이다. 그 후 몇 년이 지나는 동안 두릅나무와 으름덩굴, 사위질빵, 칡넝쿨, 갈대, 찔레덩굴들이 얽히고설켜 더욱 손을 대기 힘든 땅이 되어 있었다.


 은퇴하면, 원 없이 정원일을 해보려고 벼르고 있던 그곳 자꾸 눈길이 가 시작했다. 둘레는 꽃과 나무들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상태여서, 풀을 뽑는 걸 제외하면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말이 정원이지 큰 바위들을 쌓아 올려 지어진 집이었 마당장자리와 집둘레, 석축사이, 계곡에 꾸며진 정원 전부였다.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 이리저리 새로운 놀거리를 찾던 중이었다.


 통나무다리를 놓으면 쉽고 간단하게 그곳을 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숲에는 태풍에 쓰러진 낙엽송들이 많이 있으니, 대여섯 개 잘라 단단하게 엮어 걸치면 될 듯싶어 남편에게 부탁했다. 한동안 뜸을 들이던 남편은, 어느 날 아주 꼼꼼하고 튼튼하게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설레어 흥분된 마음으로 다리 걸터앉아 두 손으로 만세를  외쳤다. 그때만 해도 에서 바라보았을 때 지저분해 보였던 앞부분정리하여 꽃을 심어볼 생각이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남편의 손을 빌릴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정원일의 즐거움을 아직 모르는 남편에게 부탁하느니, 내가 하는 편이 훨씬 마음 편하고 일이 순조롭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힘이 필요하거나 큰 도구들이 필요할 경우에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풀을 베고, 돌을 캐, 속으로 깊이 뻗어나간 뿌리를 제거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 손에 쥐어진 도구는 호미와 전지가위, 톱, 낫이 전부였다. 방으로 뻗어나간 뿌리를 자른 다음, 길게 이어진 뿌리를 나씩 잡고 나뒹굴기를 수백 번 거듭했다. 호미에 돌덩이가 걸리면 깊이 파서 드러난 부분을 잡고 여러 번 흔들어서 헐겁게 만든 후 캐내었다. 일어나 보면 한나절이 지났다. 어깻죽지가 뻐근하고 팔목과 손마디에 쥐가 날 정도로 힘이 들어, 눈곱만큼씩 달라지며 새로운 공간이 탄생하는 재미에 하루가 휙휙 지나갔다. 돌을 캐그 돌들로 걸어 다닐  꽃밭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일은, 무에서 유를 들어 내는 창의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바깥 볼일이 없는 날은 거의 그곳에 꼬부라져 한 뼘 두 뼘 을 고르는 날들로 이어졌다. 저녁이면 나도 모르게 ' 아이고 허리야, 다리야'하다가도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나 정원으로 달려 나갔다.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에 걸쳐, 틈날 때마다 야금야금 돌땅을 개간하다 보니 어설프지만 제법 자연스러운 정원의 형태가 갖추어졌다. '쪼끔만 더', '쪼끔만 더' 하다 보니 처음 마음먹었던 면적을  뛰어넘어 돌땅의 절반이상이 새로운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으로 이어지는 나머지  땅은 그대로 두어도 때마다 예초기로 풀과 덩굴들을 깎아주면 보기 싫지 않을 듯했다.


 장마가 시작되자 '이때다' 싶다.  비 오는 날은 삽목 하거나 이식하기 가장 좋은 때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비어있는 정원에  순 지르기 한 꽃줄기와 꽃나뭇가지를 삽목하고 기존의 정원에 빽빽하게 번식한 꽃들을 솎아 내어 계속 옮겨 심어 나갔다. 비가 내리는 날, 우산을 거나 비옷 입고 일본 사람은 알 것이다. 행동자유롭지 못하고 몹시 습하고  답답하고 거추장스는 것을. 그러다 보니 나중엔 산도 비옷도 벗어던지고 온몸으로 비맞아가며 이리저리 뛰어다니 된다.  내 모습이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고 통쾌하 자꾸 웃음이 났다. 아마 누군가 빗속에 실실 웃으며 뛰어다니는 나를 , 틀림없이 '저 여자 미쳤구나! ' 했을 것이다.

 '그러려면 그러라지. 장수 골짝에는 비만 오면 정원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웃어대는 미친 여자가 산다' 혼자  속으로 흥얼거리 장마기간 동안 얼추 비어있던 정원을 거의 다 꽃나무들로 놓았다.




 그즈음 남편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그분도 최근 전원주택을 마하여 조경체에서 예쁘게 만들어 준 유럽식 정원을 가꾸고 다. 내가 하는 일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 남편이 '각시 혼자 일군 정원이라'며 정원을 구경시켰다. 친구 한번 둘러보더니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포클레인 한대 부르면 금세 끝날 일을 몇 개월을 그렇게 고생했어요?"

 맞는 말이다.  정도의 적이면 한나절만 포클레인 기사 부르 이보다 훨씬 가지런하고 매끄럽게 다듬어놓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랬더라면, 혼자 를 굴려가며 덩굴과 갈대뿌리를 뽑아내고, 큰 바위는 살리고 돌과 자갈돌들은 어, 그 돌 하나하나 그림 그려나가듯 정원을 구성하고 배치하며 느꼈던 창조의 땀방울로 일궈 낸 보람도 얻을 수 있었을까?




 새롭게 만들어진 정원에 이름을 붙였다. <라라정원>, 라라 '흥겹고 즐거운 삶'이라는 우리말이다.  땅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땅 고르는 일에  빠져 흥겹고 즐겁게 만든 정원에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되었다.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와  내가 일궈 놓은 정원을 보며 말했다.


"이건 기적(그곳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알고 있기에, 그리고 온전히 내 힘으로 일군 걸 알고)이야. 대단하구나. 너! 이렇게 해놓은 걸 보니 남겨둔 돌땅도 그대로 안 둘 것 같은데? 곧 숲으로 쳐들어가겠어."


  그 말이 씨가 되었나? 아니, 이미 싹이 터 있었을까?

 올해  오월이 시작되자, 나는  또다시 라라정원에  호미를 들있었.




 아직 그동안 글을 쓰지 못한 변명은 시작도 못했답니다. 다음 글에서 '누가 제발 나를 말려줘 2'가 이어집니다. 그때 변명 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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