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관련 몇 가지 일처리를 위해 114 통화를 하게 되었다. 상담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몇 분을 기다린 끝에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계속된 상담에 지쳤을 법도하건만 나긋나긋 친절한 설명에 나도 덩달아 편안한 마음으로 원하는 일처리를 빠르게 잘 마쳤다. 얼마 후 처리된 결과에 대한 몇 가지 안내문자가 왔다. 덧붙여문자하나가 따라왔다.
'고객님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객님과 같은 좋으신 분을 만나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통화 내내 오히려, 고객님께서 너무 매너 좋은 음성으로 기분 좋게 전화를 받아주셔서 감사한 마음에 작지만 제 마음을 담아 문자 하나 남겨봅니다.
다음에도 언제든지 연락 주시면 고객님의 문의만큼은 제 일처럼 가족 같은 마음으로 이해하기 쉽고, 친절하게 도움드리겠습니다. 매일매일 기분 좋은 소식만 가득하시고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매 순간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상담매니저 000 올림]'
뜻밖의 문자를 받고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기쁘게 했다는 사실에 나도 기쁜 마음이 되어 간단한 답장을 보냈다.
'어머나, 그랬다니 저도 정말 기뻐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가장 힘든 일이라는데 저도 모르게 기분 좋게 해 드렸다니 제가 더 기쁩니다. 하하하하 많이 웃는 하루 되셔요'
나중에서야 업무용 공적 일반 전화라서 내가 보낸 답장은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서비스직 감정노동의 어려움을 잘 알기에, 조금 더 신경 써서 부드럽고 따뜻한 말씨로 통화한 것뿐인데 그몇 마디 말이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기쁘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하루 내내 기분이 좋았다. 머릿속에서는 '누군가 나도 모르게'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다. 저녁 무렵이 되자, 2년 전 후배교사가 챙겨 준 퇴임선물로 기뻐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도 '누군가 나도 모르게'라는 말이 하루종일 맴돌았던 날이다.
퇴임식이 있는 날, 살짝 내 의자 위에 올려져 있던 제법 큼지막한 선물박스. 정신없이 퇴임식과 작별인사를 마친 후 집에 돌아와 풀어 본 상자 안에는 몇 가지 선물과 편지가 들어있었다. 편지 속에는 두 달 전, 겨울방학이 시작하면서부터여행을 가거나 예쁜 선물가게를 지날 때마다내게 어울릴 선물을 생각해 보며 하나 둘 준비했다는 말과 함께 감사함과 아쉬운 마음이가득담겨있었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가 두 달 동안이나 기쁜 마음으로 나를 떠올리고 있었다는 사실에마음이 달떠곧바로 문자를 보냈다.
ㅇㅇ샘, 나도 모르게 누군가가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기쁨인지!
여러 날을, 나를 떠올리며, 내게 어울릴만한 것들을생각해 보고, 오래오래 머뭇거리던끝에, 마침내 하나 둘 바구니에 담았을 그 마음이 그려져 황홀한 기분이었다오.
내가 앞치마를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환한 봄날, 동백꽃 가득한 앞치마를 입고 빨강머리 앤 되어 우리 호시랑 초롱이랑 둥이랑 숲 속 여기저기 돌아다닐 생각만 해도 동백꽃 미소 절로 피어나네.
도톰한 테이블보는 앞으로 가장 애용하는 물건이 될 것 같아.
좋은 날, 좋은 사람과 함께, 또 혼자서, 언제나까지나 소풍 같은 행복한 시간을 그 위에서 보낼 거야.
동백꽃 수첩에는 무얼 적으면 좋을까?
동백꽃키링은 어디에 달아볼까?
즐거운 상상으로 남편 앞에 호들갑 피워보는 행복한 저녁시간이네……….
다시 떠올려봐도 후배교사의 정성스러운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 마음이 벅찼다. 머릿속에서는 영화 '역린’에 나오는 명대사가 스치듯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