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 활동의 탄소저감량은 측정이 가능할까?
많은 나라와 기업들이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품의 제조, 폐기 과정의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탄소저감활동을 평가하여 이를 인증받은 뒤 탄소배출권의 형태로 거래하고 있기도 합니다. 소비자들은 탄소배출량이 적은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탄소저감활동에 동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다시 사용하는 중고거래 활동이야말로 탄소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법입니다.
중고거래가 탄소저감 효과가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능합니다. 신규 제조에 들어갈 원료를 아끼고, 폐기 과정의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한편 장롱에서 잠자고 있는 제품들을 다른 쓸모를 가진 누군가에게 연결해 주기 때문입니다.
재사용은 별도의 에너지와 비용을 투입하지 않고도 이미 만들어진 제품과 서비스를 최대한 오래 사용할 수 있어 자원순환의 우선순위에서 최상위에 속하는 활동이다. -서울연구원 2021
그렇다면 중고거래 활동의 탄소저감량을 측정해서 탄소배출권의 형태로 거래할 수도 있을까요?
실제로 여러 연구기관들이나 재사용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중고거래 플랫폼들에서 중고거래 활동의 탄소저감량을 계산하려는 시도들이 꾸준히 생겨나고 있습니다. 개인간 거래 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는 Adevinta는 The Second Hand Effect 2021 Report를 통해 거래 활동을 통해 절감되는 탄소배출량을 발표했습니다. Thred Up이나 The Realreal 같은 경우에도 IMPACT REPORT나 지속가능성 계산기를 제공하며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중고나라가 투자하기도 한 자전거 거래 플랫폼 라이트브라더스가 탄소계산기를 제공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중고거래 활동의 탄소저감량을 인증을 받고 credit화하여 거래하는 케이스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왜냐면 중고거래 활동이 실제로 얼마나 신품 거래를 대체하는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새 제품을 샀다가 바로 중고로 팔아버리고 다시 새 제품을 사버립니다. 이런 거래들까지 탄소 저감 거래로 측정할 순 없습니다. 또한 의류나 자전거와 같이 동질적인 제품군이 아닌 전체 제품군에 대한 탄소배출량을 측정하는 일반적인 모델을 만드는 것은 방대한 데이터가 있어야지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중고거래 플랫폼 중 아직 중고거래 과정의 탄소저감량 측정에 대한 일반 모델을 내놓은 사례는 없습니다.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의 중고거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라면 이런 모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중고나라는 2003년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20년 가까이 이뤄진 8억 건에 달하는 중고거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회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특허를 출원해봤습니다. 중고거래로 대체되는 탄소배출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내용년수와 잔존내용년수 개념을 도입합니다. 중고거래되는 물품이 신품을 100% 대체할 수는 없기 때문에 신품의 배출량 x 잔존내용년수/내용년수만큼 탄소배출량이 저감되는 논리입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가정은 중고거래가 되는 특정 제품이 아니라 그 제품이 속한 제품군의 평균 배출량을 대체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1. 중고거래 제품의 배출량을 저감량으로 측정하게 되면 탄소배출량이 큰 제품들을 거래할 때 오히려 더 많은 크레딧이 발생하는 역효과가 생기고, 2. 중고거래의 대체재는 해당 제품이 아닌 현재 시장에 존재하는 신품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제품의 내용년수를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중고나라의 거래 데이터를 활용했습니다. 즉, 특정 제품군의 제품들이 거래되기 시작해서 거래가 없어지는 기간을 거래내용년수로 산정해서 내용년수의 대체치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거래내용년수에서 제품별 출시시기부터 거래시기까지 경과된 시간을 빼면 잔존거래내용년수를 추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델은 잔존내용년수, 즉 예상사용기간에 대해서만 탄소저감량을 계산하기 때문에 그린워싱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2022년 12월, 특허가 등록되었습니다. 중고나라의 탄소저감량 모델의 진보성이 인정된 것입니다. 해외 출원도 진행중입니다. 이제 정말 큰일이 났습니다. 중고나라가 이 모델을 완성하지 않으면 전 세계 어느 누구도 이 모델을 만들 수 없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모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중고나라가 보유한 데이터가 쓸모 없으면 어떡하지?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다른 형태의 결과가 나오면 어떻게 하지?하는 걱정이 먼저 듭니다. 중고나라는 거래글을 분석하기 위한 언어모델인 J-NER을 갖고 있습니다. J-NER로 지난 10년간의 아이폰, 갤럭시 모델의 거래글을 추출해서 시기별 거래량 그래프를 그려 보았습니다. ...큰일난 걸까요...?
출시시기를 일치시켜서 평활을 시켜보았습니다. 오!! 예쁩니다!!!
신기하게도 특허를 낼 때 가정했던 판매량 형태와 거의 일치합니다. 이제 자신이 붙었습니다. 잔존내용년수를 뽑아봅니다. 처음 생각했던 모델의 잔존내용년수 가정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1. 출시 이후 초기 시점의 거래, 즉 리셀 거래에 대해서도 저감량을 계산하게 됩니다. 2. 중고거래가 자주 일어날 수록 저감량이 과대 평가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고나라는 "최소사용기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였습니다.
"최소사용기간"은 평균적으로 사람들이 중고거래를 하면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사용하고 다시 중고물품으로 시장에 내놓는지에 대한 가정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중고나라의 데이터 중 "미개봉 신품", 혹은 "신동품"의 거래량과 "중고제품"의 거래량의 관계를 이용했습니다. 즉, 출시 초기에는 새제품 거래량이 많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중고제품 거래량이 증가하게 되고 이 거래량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을 평균적으로 신제품이 중고제품이 되는 기간(최소사용기간)으로 가정합니다. 그리고 이 "최소사용기간"을 리셀거래의 탄소저감량을 없애기 위해 거래내용년수에서 차감하는 한편 사람들의 예상사용기간의 보수적 추정치로 사용합니다.
역시 중고나라의 데이터는 예쁘게 나옵니다. 미개봉 신품의 비율은 역 지수함수 형태를 띱니다. 전체 거래내용연수중 초기 기간으로 최소사용기간을 한정할 수 있어 반복 중고거래로 인한 과대계상 오류를 차단합니다.
이렇게 해서 다음과 같은 최종 베이스라인 배출량 모델이 완성되었습니다.
탄소저감량을 만들기 위해서는 중고나라의 사업이 필요하고 사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배출량 역시 반영해야 합니다. 중고나라의 전력소모량과 중고나라가 사용하는 AWS 서버의 탄소배출량을 이용해서 사업배출량도 반영하였습니다.
이 모델은 2023년 1월 중에 검증기관의 검증을 거쳐 자발적 시장에 등록될 예정입니다. (아마도) 세계 최초의 중고거래 과정의 탄소저감량 거래 사례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측정된 탄소저감량을 중고나라는 2023년 4월경부터 중고나라 유저들에게 에코마일이라는 이름으로 적립할 예정입니다. 중고거래는 돈을 아끼는 동시에 지구를 아끼는 활동이니까요. 장롱 속에 잠자고 있는 물건을 꺼내서 중고나라에 올려주세요. 쓸모를 연결하고 불필요한 생산과 폐기를 막을 수 있습니다. 중고나라의 유저들은 중고거래로 세상을 구합니다.
p.s. 특허를 출원했지만 중고나라는 이 탄소저감량 모델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다른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도 동일한 모델을 적용하여 탄소저감량을 계산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중고나라의 거래 데이터가 필요하다면 중고나라의 수치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플랫폼이 모델을 더 발전시킬 데이터를 제공해주시는 것도 물론 환영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모델도 더 정밀해지고 중고거래 활동이 지구를 지키는 활동이라는 인식도 더 확산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