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도 없고 미신도 별로 믿지 않는데, 연말이나 새해만 되면 나의 새해 운명이 궁금한 건 인간의 잘 살고 싶은 본능일까? 사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미리 새해 운세를 파악하고 피할 건 피하고, 취할 건 취하고 싶은 이 마음.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자 우주의 먼지보다 못한 작은 존재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내 삶을 통제하고 싶은 건 참으로 오만한 마음이다. 하지만 궁금한 건 어쩌겠는가!
"이름, 생년월일, 태어난 시 대 봐"
대학 신입생 시절 학교 앞 3평 남짓한 지하 공간에 자리 잡은 공간에 '미래사주'라는 사주 집이 있었다. 그곳엔 60대 언저리의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한 아저씨가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아저씨는 나를 보고 무심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말투로 한 마디 던졌다. 그러더니 그는 족히 몇 십 년은 된 명리학 책을 들여다보고 슥슥 한자를 새하얀 A4용지 위에 써 내려가더니, 5분도 안 되어 내 평생의 운명을 점지한 냥 내 인생을 해설해 줬다. 순진한 나는 고개를 끄덕 거리며 그의 해설 속으로 빠져들었었는데, 모든 게 자세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내 인생에 '역마살'이 있다는 것만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평생 어디 한 군데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주야. 해외 이주 운도 있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겠구먼"
아니 스무 살이 되도록 한평생 여권도 가지지 못했던 나에게 역마살이 있다니. 반신반의하면서도, 갓 대학에 입학했던 신입생 소녀는 괜한 기대감에 내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까 설레기도 했었다. 그리고 아저씨가 예측한 대로 남들이 어느 한 곳에 잘 정착해 진득하게 삶의 성취를 쌓아 나가는 동안, 나는 20대 후반까지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마음 둘 곳을 찾아다녔다. 30여 개 국을 여행 후 찾은 후보지는 북유럽 스웨덴이었지만 2년 간의 유학 후 스웨덴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국에 정착하나 싶었는데 어느새 다시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를 찾고 있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에서 마음먹고 편히 살면 되지, 굳이 왜 내 마음은 자꾸 왜 한국 밖으로 향할까? 정말 타고난 나의 운명인 것일까,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는 열등감일까.
20대의 나는 늘 바쁘고 경쟁과 비교 문화가 만연한 한국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다른 나라에 가면 경쟁 없이, 인간적인 환경에서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7~8년 간의 해외 유랑 끝에 어디 살든 '내 마음과 내 중심을 지키는 것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환경의 영향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어도 내 삶의 중심을 지켜낼 용기만 있다면, 행복과 삶의 주도권은 바로 내 안에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결혼 후 나는 다시 한국 밖 삶의 터전을 찾고 있다. 20대 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남편과 함께라는 것이다. 20대의 방랑이 온전히 '나의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우리 가족'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말이다.
식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과 마주 앉아 우리 삶에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고 나열해 보았다.
1.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2. 미래에 태어날 아이들이 자연 가까이 살 수 있는 곳
3.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 우리 아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곳
4. 개개인의 개성과 자유가 존중받는 사회
5. 날씨가 좋은 곳!(영국인 남편에겐 날씨가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자연의 소중함을 체득하고,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자연을 존중하며 크기를. 인류 역사에서 종교, 언어, 국적 등 다름을 둘러싼 이유로 수많은 갈등이 반복되어 왔지만, 적어도 우리와 우리 아이들만큼은 다름이 틀림이 아니며, 다름 덕분에 삶과 사회가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음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각기 다른 모습의 개개인의 고유함이 존중받고, 날씨가 좋은 곳이면 좋겠다!
Photo by Joey Csunyo on Unsplash
그렇게 해서 좁혀진 후보지 중 하나는 바로 호주다. 남편이나 나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땅. 한국보다 77배의 면적에, 인구는 절반 밖에 안 되는 곳. 영국의 과거 식민지이자, 영연방 국가이기도 하지만 영국인 남편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우리 둘 모두에게 낯선 나라. "세상에서 호주보다 가장 아름다운 곳은 없다"는 캐치프레이즈로 전 세계의 관광객들을 사로잡는 곳. 장엄한 자연환경과 더불어 따뜻한 날씨를 자랑하는 나라. 전 세계의 멜팅팟인 미국에 비견할 정도로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
그렇게 호주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점점 커졌고, 호주에 갔던 친구들과 서울에서 만난 호주인 친구 때문에 더더욱 호주는 내 삶에 가까이 다가왔다. 놀랍게도 호주에 여행을 갔든 살고 있든, 살아 봤든, 호주에 대해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하자 직접 가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내가 직접 보고 느끼는 것만큼 소중한 경험은 없으니까.
"도대체 이 나라의 매력이 뭘까? 직접 가서 두 눈으로 호주를 보고, 온 감각을 통해 경험하고 돌아와야겠다."
그런데 물가 비싸기로 소문난 호주, 돈도 없는데 어떻게 가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으리라.
그렇게 나의 호주 탐방 프로젝트, Australia Through Korean Eyes (한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호주)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