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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Aug 17. 2024

호주에서 만난 작은 한국의 실체

시드니, 멜버른, 퍼스에서 만난 상상 초월 한식당의 맛과 멋

20대 초반에 떠난 첫 해외여행 때부터 나는 음식을 나누는 것이 문화 교류의 최적의 방법이라고 믿어왔다. 카우치서핑을 할 때도 자신의 보금자리를 내준 호스트에게 감사의 의미로 직접 한식을 요리해 대접했다. 리투아니아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나 스웨덴에서 유학할 때도 기회가 될 때마다 적게는 10명 많게는 100명을 대상으로 한 한식 축제를 열었다. 음식을 나누며 서로의 인생 이야기와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나누는 시간들은 내 삶의 관점을 넓혀주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러한 경험들로 인해 한식당이 외국인들이 우리 문화를 체험하고, 나아가 한국을 방문하게 만드는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실제로 스웨덴에서 관광학 석사 과정 중에 '스웨덴 내 한식당 경험이 한국 방문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논문을 썼는데, 한식 경험이 여행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상관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피자를 먹고 나면 본토 이탈리아에 가서 진짜 피자를 맛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에 소개할 프로젝트는 '한국인의 눈으로 본 호주'의 소 프로젝트인 '호주 속 작은 한국'이다. 전 세계적으로 케이팝, 한국 드라마, 영화 등의 인기로 한국 음식도 널리 알려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한인 교민들이 한식당을 운영하곤 있지만, 최근 들어 더욱 다양한 한식당이 시드니, 멜버른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생겨났다. 시드니, 멜버른, 퍼스를 여행하는 동안 내가 만난 한식을 소개한다. 한국에서보다 더 맛있고 양이 많은 한식을 발견한 기쁨도 함께 전하며.



인테리어부터 맛까지
한국보다 더 한국적인 한식당

한국인은 해외여행 중에도 한식을 꼭 한 번쯤은 먹게 되는 것 같다. 3~4일째 되면 매운 음식과 따끈한 국물이 절로 떠오르기 마련이다. 이번 호주 여행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시드니와 멜버른에서는 한국보다 더 한국적인 식당들이 많아서 정말 놀랐다. 특히, 시드니에는 12만 명의 한인이 모여 사는 만큼 한식당이 정말 즐비했다. 한인들이 주로 모여 사는 시드니 교외의 스트라스필드에는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 근처에서 볼 법한 작은 한식당들이 즐비했고, 시드니 중심부에는 종로나 시청역 근처에서 볼 수 있는 꽤나 규모 있는 한식당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스트라스필드의 한식당(좌), 시드니 본가(우)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정말 한국식 인테리어와 메뉴로 현지인과 관광객들을 사로잡고 있다는 점이었다. 호주는 다인종 다문화 국가인 만큼 다양한 외국 음식이 현지화되지 않은 채로 그 나라의 본연의 맛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식도 마찬가지로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음식이지만, 시드니에서 만난 한식당들은 통유리를 통해 설렁탕 국물을 우려내는 큰 가마솥, 셀프 반찬대, 물컵, 숯불까지 한국식 고깃집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세련된 전통 인테리어를 통해 마치 한국에 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대형 프랜차이즈도 있었다. 순간 여기가 서울인지, 호주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본가 마케팅 잘한다!

이런 식당들은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는 그리운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었고, 한식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진짜 한국의 맛뿐만 아니라 한국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알려주는 일종의 사설 문화원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는 시드니에서 요리계 대부 백종원이 운영하는 <본가> 식당을 방문했는데, 궁궐을 재현한 듯한 인테리어도 인상적이었지만, 영어로 각 음식의 메뉴와 그 의미를 설명하고, 한국식 바비큐를 맛있게 즐기는 방법을 적어놓은 음식 받침대가 특히 기억에 남았다. 99% 한국식에 가까운 맛있는 한식은 덤이었다.



한식의 파인 다이닝화

멜버른에서 방문한 수직 그릴 바비큐 집

호주 멜버른에서 인상 깊게 방문한 고깃집이 있다. 호주인 친구 부부가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식당이라며 초대했는데, 특별한 한국식 바비큐를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얼마나 특별하기에?'라는 궁금증을 품고 갔더니, 고기를 굽는 그릴이 수직이 아닌가! 불판이 테이블 안에 수직으로 들어가 고기를 구우니, 고기를 굽는 연기도 안 나고 고기 냄새가 옷에 베이지도 않아 참 쾌적했다. 흔히 고깃집이라 하면 시끌벅적하고, 손님이 직접 구워 먹으며 먹는 분위기에 익숙한데, 이 식당은 직원들이 직접 와서 매번 구워줘서 한국식 바비큐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도 쉽게 맛있는 한국식 바비큐를 접할 수 있었고 대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돼지고기, 소고기, 양념 갈비 등을 세트로 주문해 먹을 수 있다 보니 다양한 고기맛을 즐길 수 있는 건 덤이다.


치킨과 김치전 그리고 콘치즈

특히 호주 여러 고깃집에서는 치킨과 김치전, 파전, 만두 등 다양한 한국 요리를 맛볼 수 있었는데,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한식 메뉴를 모아 판매하다 보니, 내 입장에서는 맛있는 한식을 한 군데서 편하게 맛볼 수 있어서 천국이었고, 외국인 손님은 한 번에 다양한 한국의 맛을 느낄 수 있어서 금상첨화였다.


식사 후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내가 이 그릴을 한국에서도 본 적이 없다며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냈냐고 했더니, 사실 이 그릴은 한국에서 본인이 찾아서 공수해 온 거란다. 사장님은 아기 때 한국에서 호주로 이민 온 한국계 호주인 청년이었는데, 본인의 문화적 유산을 또 다른 고향인 호주에 도입함으로써 비즈니스적으로도 성공할 뿐만 아니라 두 나라를 잇는 민간 외교관의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외곽에 있는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던 건 기우였다. 평일 저녁임에도 식당은 꽉 찼고, 생일 등 특별한 날을 축하하는 현지인들도 보였다. 서툴게 젓가락질을 하며, 고기에 쌈을 싸 먹으며 다양한 한식을 즐기는 현지인들의 모습에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한식당이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소개하는 플랫폼이라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한 순간이었다.


식사 후 친구는 멜버른에서 6개월을 기다려도 먹기 어려운 한식당도 있다고 소개해줬다. 해당 식당은 한국 가정집을 콘셉트로 한국인 셰프가 된장, 고추장 등 소스류부터 직접 발효시켜 한식을 만드는 곳이란다. 한 식사 당 6명의 게스트만 모시며, 셰프와 음식과 더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온전히 식사 경험을 즐길 수 있다.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 다양한 방식으로 낯선 호주에 한국음식을 소개하고 있는 분들, 민간 외교관이 아닐까?


서호주에서 만난 반가운 한식집

서호주 퍼스에서도 퍼스 시내 중심으로 한식당을 3~4군데 찾을 수 있었는데, 그중 반찬을 별도로 판매하는 한식당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멸치볶음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1인당 한 팩만 사갈 수 있다고 명시해 놓았다. 


호주 속 작은 한국을 만나며

호주 곳곳에서 만난 다양한 한식당들은 단순히 음식을 제공하는 공간을 넘어, 한국 문화를 현지에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한식당들은 한인의 자부심과 정성을 담아 한국의 맛과 멋을 그대로 전하며, 낯선 땅에서도 한국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작은 '한국'을 만들어냈다.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는 그리운 고향의 맛을 선사하고, 현지인들에게는 한식의 매력과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가 되고 있었다.

여기는 멜버른인가? 서울인가?

특히, 현지인들이 한식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한식의 발효 과정과 나눠먹는 문화를 이해하고, 매콤하면서도 달콤하거나,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한식의 풍미를 경험한 사람들은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한식당들은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한국의 문화적 유산을 세계에 알리는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한식을 통해 한국의 다양하고 깊이 있는 문화를 접하고, 이를 계기로 한국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길 바란다. 음식은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집약한 총체적인 산물이다. 호주의 작은 한식당들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며, 한식의 글로벌화와 함께 한국 문화의 세계적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 호주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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