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쓰기의 기술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아마 다양하겠지요. 나이도, 직업도, 경험도, 취향도 서로 다른 분들이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두 가지 공통점이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글을 잘 쓰고 싶다’라는 욕망. 또 하나는 ‘글이 잘 쓰이지 않는다’라는 절망. “글을 잘 쓰고 싶다. 그런데 잘 쓸 수 없다.”
문제는 답을 품고 있어요. “언제나 우리는 자신이 풀 수 있는 문제만을 제기한다”고 하지요. 욕망과 절망의 두 문장 사이에 글쓰기의 중요한 비밀 하나가 들어있어요. 글을 잘 쓰고 싶다. 그런데 못 쓴다. 여기서 접속사 하나를 바꾸겠습니다. ‘그런데’ 대신 ‘그래서’를 넣는 거죠. “글을 잘 쓰고 싶다. 그래서 잘 쓸 수 없다.” 잘 쓰려고 하니까 못 쓰는 것입니다.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프로이트가 10대 때부터 애독했던 작가에 루트비히 뵈르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수필에 <사흘 만에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요컨대 사흘간 방에 틀어박혀 생각한 것을 뭐든지 종이에 적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얼핏 보는 것보다 꽤 어려운 일입니다. 뭐든지, 라는 것은 아무리 부끄럽고 보기 흉한 일이라도, 불쾌한 일이라도,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일이라도, 쓰기에 괴로운 일이라도 써야 하는 일이니까요. 무의식의 검열과 억압을 떨쳐내어 쓰고, 또 쓰고, 마구 써대고 있으면 뭔가가 보이게 됩니다. 마치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반대입니다. 자동기술이 정신분석의 영향 하에 있고 그 정신분석이 뵈르네의 방법에 기반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잘 쓰려는 욕망이 따라붙기 전에 무조건, 마구, 막 쓰는 것, 이게 필요한 거죠.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 글을 잘 쓰고 싶다. 글을 쓰고 싶다. 그러면 쓰면 됩니다. 그런데 못 씁니다. 어떻게 쓰면 좋을지 몰라서? 아닙니다. 잘 쓰고 싶기 때문이죠. ‘잘’을 버립시다. 대신 그냥, 무조건, 어쨌든, 일단, 마구, 막을 넣어 그냥 쓰는 것입니다. 잘 썼는지 못 썼는지는 일단 써놓고 나중에 보자는 것입니다.
초고는 기세
쓴다는 것은 써버린다는 것입니다. 초고는 기세입니다. 기세가 필요합니다. 초고를 쓸 때는 그야말로 단숨에, 파죽지세로, 기세등등하게 써버려야 하는 것이죠. 어떤 법도 규칙도 검열도 자의식도 따라붙지 못할 정도의 무시무시한 기세로 말이죠. 물론 저도 압니다. 그렇게 써버린 초고가 얼마나 엉망이고 형편없는 수준의 글인지. 그 초고를 대할 때의 기분이 얼마나 끔찍하고 고통스러운지.
부끄럽지만 제가 쓴 초고를 아래에 붙입니다. 비문은 물론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틀린 표기, 오타까지 그대로 옮긴 것이므로 심장이 약한 분이나 임산부 등은 읽으실 때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게 이야기 때문이야. 이야기하기를 듣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지. 이야기가 되려면 호랑이가 있어야 해서. 선비와 기녀. 체호프의 내기. 호랑이의 입으로.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옛날이야기
그때부터 담배를 피웠지. 담배가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는지 그런 말 하지 마. 몸에도 안 좋은 담배를 내가 왜 피우게 되었는지
호랑이 공동체 사회로부터 왕따를 당해 왜 인간이 되려고 했거든 그러니 나는 호랑이 사회로 돌아가지도 못해 호랑이를 벗어나려고 했다가 인간이 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지 실패자의 낙인이
나는 왜 실패했는가 그 이야기를 해줄 게 이야기 때문이야 모든 게 이야기 때문이지 그 이야기를 해줄 게
오해
쑥과 마늘을 못 견뎌하고 성질이 급하고 참을성이 없었다고
난 쑥 마니아야 마늘 성애자라고.
견과류 가져가니면서 먹지 일일섭취 어쩌고 나는 생마늘을 갖고 다니면서 먹는 사람이야, 아니 호랑이야 으르렁으르렁 가사를 참조해보면 좋겠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 곰도 잘 굔뎌 곰과 사랑에 빠졌어? 동병상련. 영화 아가씨 구도. 백일을 한동굴 안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지내다보면 정이 들고 신체접촉도 많아지고 그리고 우린 둘다 성숙한
마늘의 자양강장 성분
브로큰백마운틴의 목동을 생각해봐
아가씨의 히데코와 숙희를 떠올려봐
곰의 적응력 인내력 일부이처제가 될 거 샅았어 그건 그래도 괜찮을지 몰라 이야기 때문이야 으르렁으르렁
바르트의 체호프의 이야기를 떠올려봐
이상입니다. 이런 초고를 읽게 해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초고의 기분이란 정말 한심하고 ‘드럽죠’. 그렇지만 이처럼 엉망인 초고라도 쓴 것과 쓰지 않은 것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조금 전까지 세상에 없던 것이 방금 생겨난 것이니까요. 지금은 있는 것이니까요. ‘글쓰기의 동사 둘’에서 쓴 것처럼 이제 고치면 됩니다. 시간은 우리의 편이니까요. 천재가 아닌 우리는 요절하지 않을 테니 시간을 두고 고치고 또 고치면 되니까요.
저는 다음과 같이 고쳤습니다.
이제는 겨우 입술을 적시는 정도로 마시지만 나도 한때는 제법 술을 마셨어. 그 무렵 자주 가던 선술집에 고양이가 있었는데 이름이 ‘약이’였어. 대개 고양이는 몸무게가 2킬로그램이 넘는데 그 녀석은 1.8킬로그램이라서 ‘약 2’라고 부른다는 거야. 나는 천식이 있으니까 개든 고양이든 길러본 적이 없어. 그래도 동물들이 내게 잘 다가와. 약이도 나를 잘 따랐어. 고양이답지 않게 말이지. 내 무릎이며 어깨며 심지어 머리 위에도 올라오고는 했거든. 그러면 친구들이 그랬지. 약이 올랐네.
그때도 장마철이었어. 비가 억수 같이 오는 날이었는데 친구와 약속이 있어 그 술집에 갔지. 그날은 폭우 때문인지 손님이 없었어.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여자분만 빼고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어. 거기는 대개 단골이 오는 곳이라 웬만하면 낯이 익은데 말이야.
그날 나는 그 여자와 술을 마셨어. 약속한 친구가 비를 핑계로 결국 오지 않았거든. 여자는 이야기를 잘했어. 어쩌면 사람은 하나의 이야기 아닐까. 세상도, 세계도, 광대무변의 우주도 한 편의 이야기 아닐까. 그는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 나오는 선비와 기녀 이야기를 했어.
옛날 한 선비가 기녀를 사랑했다. 선비의 사랑을 기녀는 믿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내 사랑을 믿어 주겠느냐는 선비에게 기녀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그대가 내 집 정원 창문 아래에 앉아 백일 밤을 기다린다면 비로소 나는 그대 사랑을 믿겠어요.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선비는 기녀의 집 정원 창문 아래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열흘이 갔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지났다. 선비는 그곳에 앉아서 날이 저물고 밤이 되는 것과 다시 아침이 오는 것을 보았다. 한 계절이 지났다. 기약한 백일을 하루 앞둔 아흔아홉 번째 되던 날 밤 선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팔에 끼고 그곳을 떠났다.
여자는 맵시 있게 한 잔 마신 후 술잔을 내려놓았어. 선비는 왜 기약한 백일을 하루 앞둔 날 밤에 떠났을까? 기녀의 사랑을 얻을 수 있었는데 말이죠.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여자가 선비처럼 웃었어. 여자는 이 이야기와 비슷한 다른 이야기가 있다며 체호프의 단편 ‘내기’ 이야기를 했어. 그 단편은 나도 읽었지.
한 모임에서 사형제도에 대한 토론이 있었는데 그 모임을 연 은행가는 종신형보다 사형이 인간적이라고 주장한다. 순식간에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수십 년에 걸쳐 한 사람의 인생을 빼앗는 쪽이 더 나쁘다고 말이다. 젊은 변호사는 죽는 것보다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는 게 낫다며 만일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자신은 종신형을 택하겠다고 한다. 은행가는 내기를 제안한다. 만일 당신이 5년 동안 독방에서 버틴다면 200만 루블을 걸겠다고. 변호사는 내기를 받아들인다. 15년이라도 감옥에서 지낼 수 있다면서. 젊은 변호사는 호언한 기간까지 독방 안에서 지낸다. 수많은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마침내 약속한 기한을 다섯 시간 남기고 그는 그곳을 나간다.
여자는 한 잔 마신 후 맵시 있게 잔을 내려놓으며 내게 물었어. 그 젊은 변호사는 왜 그랬을까? 200만 루블을 얻을 수 있는데 말이죠. 이번에도 내가 바로 대답을 못하자 여자는 변호사처럼 웃었어. 앞에 이야기한 두 이야기와 다르면서 비슷한 이야기가 또 하나 있는데 그게 단군신화라는 거야. 동굴 안에서 햇빛을 보지 않고 쑥과 마늘만을 먹으며 100일 동안 참고 견딘 곰이 마침내 사람이 되는 이야기.
여자는 내게 물었어. 호랑이는 왜 도중에 동굴을 뛰쳐나갔을까요? 이번에는 나도 바로 대답했지. 그거야 호랑이는 성미가 급하고 참을성이 없으니까요. 여자는 호랑이처럼 웃었어. 파안대소. 어찌나 호탕하게 웃는지 그만 얼굴이 다 부서지는 거야. 그 순간 나는 보았어. 부서진 여자의 얼굴이 정말 호랑이로, 러시아의 젊은 변호사로, 중국의 선비로 변하는 광경을. 곧 자신의 얼굴로 다시 돌아온 여자가 말했어. 그게 아니죠. 다 이야기 때문이지. 그래야 이야기가 되거든요.
여자는 자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양이, 그러니까 약이로 변하더니 탁자 위로 올라서서 잠시 가게 안을 둘러본 다음 도도하고 우아하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몇 번이나 수정했기 때문에 최종 원고는 초고와 많이 달라졌어요. 어떤 아이디어는 아예 빠지고 새로운 발상과 기억이 더해지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이렇게라도 원고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초고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한심하고 끔찍한 초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