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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득 May 09. 2021

세 번째는 다른 것을

반전의 기술

제가 네 번째 냈던 책 제목은 <슈슈>입니다. 슈슈는 눈웃음(^^)과 눈물(ㅠㅠ)이 동시에 나오는 상황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글자로, 말하자면 ‘웃프다’의 이모티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제가 만들었고 널리 쓰이길 바랐지만 아무도, 심지어 저조차도 거의 쓰지 않는 사라진 이모티콘이 되고 말았지요. 이럴 때 사용하면 된답니다. 슈슈.


<슈슈> 표지에는 ‘김상득의 반전 에세이’라는 소개가 붙어 있습니다. ‘전쟁에 반대한다’는 반전이 아니라 ‘끝에 반전이 있다’고 할 때의 반전이라는 뜻으로 말이죠. 제 에세이를 읽고 몇몇 분들이 “반전이 재미있다”라고 말해주었거든요. 심지어 어떤 독자 분은 “어떻게 하면 그런 절묘한 반전을 쓸 수 있느냐?”라고 묻기까지 했습니다. 아마 격려 차원에서 하신 말씀이었겠지만 저는 바보같이 그 말씀을 그대로 믿었답니다.

반전 에세이 <슈슈>의 표지


요네하라 마리의 <유머의 공식>에는 '신은 3을 좋아해'라는 글이 나오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세 번째는 다른 것을 줘라" 정도가 될 것입니다. 어떤 웃음은 의외성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의외성이나 반전은 소재의 내용보다는 소재의 배치에서 발생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니까 평범한 소재 A와 B로 글을 쓸 때 A, B로 쓰는 게 아니라 A, A', B를 쓰면 독자는 세 번째에서 A"를 기대하다가 B를 만나기 때문에 허를 찔린 듯한 반전의 재미를 느낀다는 겁니다. 그 공식에 맞춰 한 번 써본 글인데 아래에 붙입니다.  




누구세요?


나는 어둡다. 표정도 어둡고 옷 색깔도 어둡고 말과 행동도 어둡다. 숫자에도 어둡고 공부에도 어둡고 돈 버는 일에도 어둡다. 요즘은 눈도 어둡고 귀도 어둡다. 한마디로 어두운 저녁 같은 사람이다. 이처럼 총체적으로 어두운 사람에게도 밝은 것이 하나 있으니, 인사성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학부모 면담을 하던 고3 때 담임선생님이 내 부모에게 인사말로라도 뭔가 하나는 내 칭찬을 해야겠는데 도무지 칭찬할 거리를 찾지 못해 한참을 쩔쩔매다가 외친 ‘유레카’가 바로 인사성이었다. “어머님, 그래도 상득이가 인사성 하나는 참 밝죠. 다만….” 다만 입시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던 인사성이었지만 그때도 밝았고 지금도 제법 밝은 편이다.


둘째는 화성에 있는 수원 예비군교장에서 일병으로 군생활을 하고 있다. 입대하기 전 몇 개월 동안 둘째는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덕분에 한동안 녀석과 나는 출근을 함께한 적이 많았다. 그렇게 함께 출근하다 보면 아무리 대화가 없는 부자지간이라도 꽤 이야기를 나눌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둘째는 집을 나서면서부터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섬이 있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이어폰이 있다. 이어폰을 사이에 두고 아들 쪽으로는 음악이 흐르고 아버지 쪽으로는 침묵이 흐른다. 강남대로의 중앙차로에 있는 신논현역 버스정류소에서 내려 사무실이 있는 강남역 11번 출구까지 걸을 때도 두 사람은 말이 없다.


나는 마주 오는 청년과 아는 체하며 인사를 나눈다. 내 조금 뒤에서 비둘기처럼 고개를 쭉쭉 빼며 리듬에 맞춰 걸어오던 둘째가 이어폰을 빼고 내게 묻는다. “누구세요?” 자주 가는 커피가게의 아르바이트생이라고 알려준다. 둘째는 신기한 모양이다. 몇 발짝 못 가서 또 나는 마주 오는 젊은 여성과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그는 몇 마디 안부를 묻고 지나간다. 둘째는 이번에도 신기한 모양이다. “누구세요?” 나는 살짝 자랑처럼 말한다. “여기 앞에 있는 병원의 간호사인데 아빠가 가끔 가니까.”


이번에는 노신사 한 분을 만난다. 인사성 밝은 나는 당연히 인사를 나눈다. 둘째는 또 궁금하다. “누구세요?” “아빠 다니는 회사 건물 경비하는 분. 야근 마치고 퇴근하시는 건가 봐. 저분은 반장님인데 대학 교무처에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하고 경비 일을 하시는 거지. 참, 저분 아티스트시다. 우리 가요 작사도 많이 하셨대.” 둘째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거의 회사 건물 앞에 다 와 나는 마이클을 만난다. 마이클은 와인바 ‘사이드웨이’에서 알게 된 외국인이다. 우연히 옆자리에 앉았다가 알게 된 사이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중이었다. 마이클은 자전거를 멈추고 잠시 나와 인사를 나눈다. 나도 인사한다. 짧은 영어지만 인사성 하나는 밝으니까. 국제적인 아빠의 아침 인사 퍼레이드에 아들은 놀란 것 같다. “누구세요?”


글쎄, 마이클을 어떻게 소개해야 좋을까? 와인바에서 알게 된 사이라고 하면 실망하겠지? 그렇다고 업무상 아는 사이라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한 내가 “이름은 마이클인데…”라며 우물쭈물하는데 둘째가 하는 말이 이랬다. “그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아빠 말이에요. 누구세요, 아빠는?”




위의 글은 <슈슈>가 출간된 후에 썼기 때문에 책에는 실리지 않았습니다만 역시 반전 에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반전은 내용보다는 배치에서 나옵니다. 세 번째에 다른 것을 주기 위해서는 앞의 첫 번째, 두 번째는 같은 것을 혹은 비슷한 것을 배치해야 합니다. 여기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빌려 살짝 바꾸면, 그것을 “얼마나 유효하고 올바르게 가려내어, 얼마나 자연스럽고 솜씨 좋게 쌓을 수 있는가, 그것이 바로 작가의 역량이 된다"라고 하겠습니다.  


반전이 있다고 해서 좋은 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재미있는 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반전은 반전일 뿐이죠. 차갑게 말하면 반전은 그저 문장부호인 느낌표 같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느낌표와 좋은 , 재미있는 글은 아무 상관이 없지요. 남발하면 글을 망치게 되니까 오히려 조심해서 써야 합니다. 그렇지만  쓰면, 하루키의 말처럼 자연스럽고 솜씨 좋게 쓰면 읽는 이의 마음에 느낌표를 남길 수도 있지요. 웃음과 놀람과 여운의 느낌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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