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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딱한 변호사 Jun 10. 2020

폭력이 난무하는 곳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이 글은 2020. 6. 1. 작성된 글입니다.


당신은 최근 가정폭력과 관련하여 특별한 이슈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으니까. 최근 특별한 이슈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평소에 알아보고 싶었던 주제인 가정폭력처벌법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 마음 먹고, 서두에 어떤  화제로 글을 시작해야할지 고민하다가 "가정폭력"이라는 키워드로 뉴스를 검색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게시된 기사에는, 가정폭력을 피해 별거 중인 아내를 찾아가 아내와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른 50대 남자가 경찰에 붙잡혔다는 내용이 보도되어 있었다. 가정폭력은 지나치게 일상적으로 발생하여 웬만해서는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는다. 참고로, 2017년 한 해 발생한 301건의 살인사건(살인 기수사건을 의미함) 중 18%인 55건은 현 남편이 아내를 살인한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가정폭력에 대해 우리 법은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우리나라에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가정폭력처벌법")이 있고, 가정폭력처벌법 제3조는 가정폭력범죄에 대하여는 형법보다도 이 법을 우선하여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가정폭력범죄가 일반 범죄와는 다른 특수성이 있음을 고려한 것이다. (참고로 아동학대범죄에는 가정폭력처벌법이 아니라 다른 특례법이 적용되고 있다.)


다른 범죄와 피교되는 가정폭력범죄의 특징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다는 것, 그래서 폭력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신고가 어렵다는 것, 가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제3자에 의한 신고가 어렵다는 것 정도가 떠오른다. 


그러나 가정폭력처벌법을 들여다보면,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폭력범죄의 이러한 특징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우선 가정폭력처벌법 제1조는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을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1조(목적) 이 법은 가정폭력범죄의 형사처벌 절차에 관한 특례를 정하고 가정폭력범죄를 범한 사람에 대하여 환경의 조정과 성행(性行)의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을 함으로써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


어딘가 이상하다. 위 목적조항은 다른 폭력범죄 특례법의 목적조항과 비교할 때 그 이상함이 더욱 잘 드러난다. 예를 들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1조는 "이 법은 집단적 또는 상습적으로 폭력행위 등을 범하거나 흉기 또는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폭력행위 등을 범한 사람 등을 처벌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심플하다.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법이다. 


그러나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폭력범죄를 범한 사람에 대하여 성행의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처벌도 아니다)을 함으로써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기 위한 법이다. 그러니까, 잠깐 한 순간의 실수로 몹쓸 짓을 저지른 가정폭력행위자의 성행을 교정시켜 다시 가정으로 되돌려보내 다같이 하하호호 하자는 이야기다.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는 제1조 제일 끄트머리에서야 등장할 뿐이다. ("가정폭력행위자"라는 단어에 대하여 논란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실제로, "가정폭력행위자"라는 단어가 아닌 "가해자"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가정폭력처벌법에서 "가정폭력행위자"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가정폭력행위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별 거 아닌 목적조항가지고 뭐 그렇게 심각하게 구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법에서 목적조항은 입법자의 제정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가장 첫 번재 지표가 된다. 입법자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 피해자의 보호보다는 가정의 유지와 회복을 최우선 과제를 두고 가정폭력처벌법을 제정했고, 이러한 제정의도는 가정폭력처벌법 곳곳에서 드러난다. 


우선, 가정폭력처벌법 제5조는 가정폭력범죄에 대한 신고를 받은 사법경찰관리가 아래와 같은 응급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5조(가정폭력범죄에 대한 응급조치) 진행 중인 가정폭력범죄에 대하여 신고를 받은 사법경찰관리는 즉시 현장에 나가서 다음 각 호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
1. 폭력행위의 제지, 가정폭력행위자ㆍ피해자의 분리 및 범죄수사
2. 피해자를 가정폭력 관련 상담소 또는 보호시설로 인도(피해자가 동의한 경우만 해당한다)
3. 긴급치료가 필요한 피해자를 의료기관으로 인도
4. 폭력행위 재발 시 제8조에 따라 임시조치를 신청할 수 있음을 통보    


가정폭력범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대응방법은 폭력범죄 발생 즉시 피해자와 가정폭력행위자를 분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 규정 각 호 중에서 피해자와 가정폭력행위자를 분리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은 단 하나도 없다. 제1호의 경우 누가 분리되어 격리되어야 하는지는 규정되어 있지 않아, 대부분의 경우 가정폭력행위자는 집에 머물고 피해자를 쉼터 등에 보내는 방법으로 분리를 한다. 아무런 준비 없이 쉼터로 보내진 피해자는 다시 가정폭력행위자가 있는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사실 가해자를 체포하지 않는 한 가해자를 어디로, 얼마나 분리시켜야 하는지도 애매하다.)


한편 가정폭력처벌법 제8조에 의하여 가정폭력행위자에 대한 퇴거, 접근금지 조치를 취할 수도 있으나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제66조 제2호) 외에는 이러한 조치를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실효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 담당 경찰관들의 의견이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 경찰의 가정폭력 사건 대응 실태와 개선방안, 2019, p.90).


결국 가정폭력이 발생하는 즉시 피해자와 가정폭력행위자를 분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가정폭력행위자를 체포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 형법은 체포를 할 수 있는 경우에 대하여 몇 가지 정하고 있고, 그 중 하나는 현행범 체포이다. 형사소송법 제211조에 의하면 현행범이란 범죄의 실행 중이거나 실행의 즉후인 자를 의미하는데, 현행범일 경우 영장없이 체포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해자와 가해자를 즉시 분리해야 할 필요가 있는 가정폭력범죄에 있어 주로 적용되는 체포 규정이다. 


그러나 경찰관들은 가정폭력행위자에 대한 현행범 체포에 소극적이다. 경찰관들에게 아래와 같은 사례를 제시했을 때, 현행범 체포를 하겠다는 비율은 31.8%에 불과했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 경찰의 가정폭력 사건 대응 실태와 개선방안, 2019, p.59).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이웃의 신고로 출동했다. 부부 둘다 옷메무새가 흐트러져 있다. 아내의 목에 손자국이 있고 손목에 멍든 흔적이 보인다. 남편은 손톱에 긁힌 상처를 보여주면서 자신도 피해자라고 한다. 아내는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여 저항한 것일 뿐이라고 한다. 


경찰관의 적극적인 초동 대응을 위해 가정폭력범죄에 대한 응급조치 중 하나로 현행범 체포를 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하여 제시되었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수차례 발의된 바 있으나 아직까지도 개정은 묘연한 상태이다. 폭력행위처벌법이, 범인을 알면서 체포하지 아니한 경찰관을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폭력행위처벌법 제9조 제1항). 






위 사례에서, 현행범 체포를 하지 않고 현장종결을 하겠다는 경찰관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현장종결을 하겠다는 경찰관들의 36.9%는 "적극 개입했다가 가족관계가 오히려 악화될까봐"라고 답했고, 16.3%는 "경찰개입 없이도 관계 개선이 가능해 보여서", 13.8%는 "가정폭력으로 보기는 어려운 부부싸움이어서", 9.4%는 "부부 문제는 가정에서 우선 해결하는 것이 적절해서"라고 답했다(복수응답). 


그러나 가정폭력범죄가 발생한 가정에서 더 이상 가족관계란 것이 있을까. 가정폭력범죄가 발생한 가정에서 개선하고, 해결하고,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정폭력행위자를 배제한 나머지 가족구성원들의 안전이 아닐까. 가정폭력범죄가 발생한 이상, 그 곳은 더 이상 사적 영역이 아니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공적 영역이 된다. 


김주영 판사가 말한 것처럼, "폭력이 난무하는 곳보다 더한 공적 영역은 없다." (김주영, <어떤 양형이유> 중 )




참고문헌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경찰의 가정폭력 사건 대응 실태와 개선방안, 2019

김주영, <어떤 양형이유>, 김영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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