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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로 Jun 19. 2024

숙취

으ㅡ으으으

가슴 아래쪽을 부여잡으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울컥하며 무언가 넘어올 듯한 숨을 겨우 참으며 다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숨이, 속이 다시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앉아서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짧게 더듬은 기억에도 머리는 무겁고 과부하가 걸리는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바닥이 울렁거리는가 싶더니 다시 울컥하며 무언가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올 것 같은 구역감이 밀려왔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화장실로 내달렸다. 


주룩주룩 시원하게 쏟아져 나온 어제의 기억들이 콸콸콸하며 변기물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정확히는 어제 먹은 것들에 대한 기억 같다. 모자이크처럼 뭉개져서 쉽게 알아보긴 힘들지만 아무래도 매운 것을 먹은 모양이었다. 입주위를 닦고 입속을 헹구고 난 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았다. 눌린 머리카락과 퀭하게 내려앉은 눈, 푸석푸석해진 피부가 어제 마신 술의 양을 가늠케 해 주었다. 어지러움이 조금 사그라든 듯 해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틀고 시원한 물로 세수를 했다. 차가운 물을 얼굴에 가져다 댄 뒤 어푸어푸 소리를 내며 요란스럽게도 씻었다. 몸에 묻어 있는 알코올 냄새를 그렇게 해서라도 떼어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겨우 세수를 마친 뒤 다시 침대에 몸을 뉘었다. 오늘이 토요일임이 내일 출근을 하지 않음이 여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손과 다리를 들 힘도 없으며, 걸을 힘조차 없는 상황에 출근해서 일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천장을 바라보며 어제의 기억을 더듬는다. 또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기억은 2차 때 마신 하이볼에서 멈춰 있다. 하몽과 작은 과일들이 올려져 있는 쟁반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연거푸 하이볼을 들이켰다. 간이라는 친구가 위라는 친구가 그것들을 다 소화하고 분해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일절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속이 불쾌하고 쓰라리기 시작했다. 보통은 이쯤 무언가 해장이 될만한 것을 먹거나 꿀물 같은 것을 마시거나 하는데 오늘은 도저히 그럴 힘도 없었다. 지금의 쓰라림과 어지러움, 허기를 달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바로 다시 잠드는 것이다. 어제의 기억에 대한 불안함과 궁금증이 있지만 현재로선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놓쳐버린 기억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바로 저 작은 핸드폰, 저기에는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어제의 기억이. 사진으로든 혹은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건 발신 목록이든, 아니면 육두문자가 남겨진 친구의 문자메시지이건 어제의 기억은 저 작은 기기 안에 분명 있을 테지만 지금은 알고 싶지 않다.


그렇게 기억해내는 것을 회피하고 다시 잠을 청한다. 그리고 잠에서 깬 뒤 어제의 기억을 다시 모아내고 나면 아마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제 다시는 술 안 마신다." 혹은 "내가 또 술 마시면 개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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