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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모지원 제발 탈락하게 해주세요.

가난했던 미혼모가 절실하게 빌었던 소원


저는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습니다. 한부모가족 중에서도 미혼모이죠. 저는 아이가 어려 일을 할 수 없었을 때, 생계 문제에 시달리게 되면서 한부모 지원을 굉장히 많이 찾아다녔어요. 동사무소에서도 모르는 지원들을 찾아다니면서 정말 알뜰살뜰(?)하게 연명해왔죠. 지금 돌이켜보면 '나라가 나를 살렸다!' 라고 이야기 하고 다닐 정도니까요. 그렇게 또 다른 지원이 없는지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문득 들더라구요. 




아이를 혼자 키우면 무조건 지원받고 살아야해?




정말 이대로 살고싶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사지멀쩡하고 충분히 젊고 건강했거든요. 그 때부터 저의 목표는 어느 곳의 지원도 받지 않는 것 이었습니다. 지원을 벗어나 온전한 자립을 이루겠다! 라는 마음으로 악착같이 달려온게 벌써 이렇게 시간이 8년이나 흘렀습니다. 








이 글을 마저 읽기 전에 잠깐, 

혹여라도 평생 한부모지원만 받고 살고싶은 분이시라면 이 글을 더 이상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글이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는 한부모가장으로 살면서 양육자와 가장의 두 역할을 해내려고 애썼고, 임신했을 때 부터 소위 말해 “돈 되는 일” 이라면 닥치는대로 다했습니다. 제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말이죠. 제 목표는 단지 “아이를 지키는 것” 이었습니다. 택배알바부터 시작해서 식품공장에서 샌드위치 식빵을 깔아보기도 하고, 집에 와서는 밤새 구부정히 앉아서 악세사리를 붙이는 부업을 했습니다. 한달에 15만원을 받고 기뻐했습니다. 아이의 돌잔치를 치뤄주겠다며 코피 뚝뚝 흘려가며 쇼핑백을 접었던 기억이 납니다. 시설에 입소해서 자격증 공부를 미친 것 처럼 하고, 고작 몇푼나오는 수급비로 적금을 들었습니다. 시설에서 수급비를 모으고, 부업을 해서 돌잔치를 하고서도 퇴소 할때에는 자립수당까지 포함해 천만원 가까이 모아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돈이란 제 생명의 동아줄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무너지면 제가 꾸려놓은 이 가정이 무너지는 것이니까요.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번의 고비는 찾아옵니다. 그렇게 열심히 돈을 모았지만 시설에서 퇴소하고나서 아무리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녀도 저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무책임하다며 핀잔을 받고 나오기까지 했었죠. 결국 취업은 못하는데 월세는 나가고 돈은 다 떨어져가고.. 몇날며칠 돈이 없어 굶어가며 살이 5kg가 빠졌습니다. 아이 먹일 저녁밥이 없어 어린이집에서 저녁먹고 오라고 늦게 데리러 갔습니다.








그 때는 몰랐습니다. 한부모가정은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삶인 줄만 알았습니다. 한부모지원만 받으면서 살아야하는 줄 알았습니다. 정말 그렇게 살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그렇게 흘러가듯 살았죠. 결국 다시 시설의 도움을 받게 되었고, 또 악착같이 돈만 모았습니다. 한부모지원금액인 수급비와 얼마 안되는 월급까지 160만원을 받으면 100만원을 저축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또 다시 아이를 굶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년 뒤, 다시 자립을 했을 때에는 LH전세임대 대출로 낡은 아파트 전세로 드디어 첫 보금자리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 한 숨 놓으려던 찰나, 저녁 7시에 퇴근하고 밤늦게 혼자남은 6살 아이를 데리러 가면 “엄마 일 안하면 안돼요?” 라고 이야기합니다. 제 가슴이 잔뜩 미어집니다. 그래도 저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정부에서 나오는 한부모지원도 받아야만 했죠. 일과 육아 사이의 갈등을 하던 도중,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쌓이고 쌓이다 격하게 올라왔습니다. ‘아.. 나는 왜 삶이 이렇게 고단할까.. 난 평생 하고싶은 걸 하지 못하는 인생일까.. ’ 고민을 한참 하는데 누가 그랬습니다. 


하고싶은거 해 봐.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너무 듣고 싶었던 말이었지만, 저는 결국 펑펑 울었습니다. 내 주제에 어떻게 하고싶은 걸 다하냐고요. 그 말을 듣고난 뒤, 저는 몇달동안 혼란스러웠습니다.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또 우리가족은 힘들텐데.. 내 욕심이 아닐까.. 그럼 난 언제 하고싶은 걸 하면서 살지?.. 우리 아이는 언제보지?.. 끊임없이 고민하다가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저 퇴사하겠습니다.



어떡하려고? 애는 어떻게 키우려고? 돈은 어떻게 벌려고? 온갖 걱정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전 지금 당장이 더 중요했고, 정말 인생에 있어 큰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다니던 직장에서 퇴사를 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야기의 결론 : 생각보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우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저녁 늦게까지 맡기지 않아도 되고, 아침에 유치원을 데려다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먹고싶다고 이야기 한 음식을 사줄 수 있었고, 절대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서울로 이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우려하던 일은 커녕 반대로 제 목표를 이루었습니다. 더 이상 지원을 받지 않게 된 거죠. 기뻐 날뛰었습니다. 더 이상 한부모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통보하는 담당자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제 목표였다고, 연신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시죠? 시설에서 지낼 때, 저의 꿈이 있었습니다. 



한부모를 위한 회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로라 하는 만큼 큰 회사는 아니지만, 한부모가장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 소신을 담은 작은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 소망을 담은 유튜브 채널은 소박하지만 구독자가 2천명이 넘었습니다. 저는 이제 후원을 받는 사람이 아닌 후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전의 저는 단지 겁에 질려 도전하지 못했을 뿐, 한부모가정이 가난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충분히 벗어날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직접 맞서보고나서 알았습니다. 한부모가장으로 살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많지만 방법을 몰랐다는 것. 더 이상 나와 같은 분들이 나처럼 멀리 돌아가지 않고 서둘러서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나보다 덜 힘들고 더 빨리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램을 항상 품고 있습니다. 덕분에 제 모든 삶은 매일매일 이런 고민을 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부모가장으로 살아가면서 경제적, 사회적으로 온전한 자립을 이룰 수 있도록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한부모가정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 저는 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한부모지원을 받으려면 약 150만원을 넘으면 안됩니다.연령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한계치 때문에 일을 더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저처럼 한없이 작았던 사람이 자신의 꿈을 이룬다면, 다른 한부모가장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더 알려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저를 보고 힘내라고요. 희망을 가지라고요.


제 강의를 들으셨던 한 분께서는 그런 말을 하셨습니다.

"더 유명해지셔야해요. 꼭 이 이야기들 모두가 알게 해주세요." 


상처의 크기는 사명의 크기라고 합니다. 저는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도 우리 한부모가족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퇴사를 결심하고 더 잘 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면서 절대 무작정 퇴사를 선택하지는 마세요. 제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현재 상황에서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나누자는 것입니다. 


인생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세요.



https://bit.ly/single_parents_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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