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연못 속으로

예각과 둔각사이

by 완자

무릇 어른이란 크고 풍성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 터인데 나이만 한 살 한 살 먹어갈 뿐. 나의 마음의 각도는 예각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취향의 범위도 매우 좁아서 좋아하는 작가가 있어도 그 작가의 소설은 좋아하지만 에세이는 싫어한다던지 반대로 에세이는 좋은데 소설은 싫다던지, 작가의 초기 소설은 좋아하지만 후기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던지 설명하기도 모호한 기준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아주 순화하고 한 껏 덧칠한 표현으로는 '예민하다.'가 있다.


말하자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좋아하지 않지만 에세이는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의 '챌린지(번역본 : 히가시노 게이고의 무한도전)'라는 에세이를 보면 그가 마흔이 넘어서 스노보드에 빠져 이를 마스터해 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저씨가 되고 나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배우고, 그리고 잘하게 되는 기회가 극단적으로 줄어든다. 오히려 예전에는 할 수 있었던 것을 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해도 '어제는 할 수 없었던 것을 오늘은 할 수 있었다'라는 것이 너무나도 기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50을 앞두고 피아노를 배우기로 했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우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나의 친구들이 모두 빠짐없이 피아노를 배운다는 사실이 매우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째서 모두 피아노를 배우는가? 피아노로 자유곡을 한 곡씩 쳐야만 천국의 문이라도 통과하는 것인걸가?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엄마가 학원이 싫다면 이웃집에 가서 배우라면서 지정한 곳이 내가 좋아하지 않은 아주머니의 집이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이유 모두 내 아이가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면 뒷목을 잡고 이미 바닥에 쓰러졌을 이유들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한창이던 스키 시즌이 끝나고 폐장날짜가 가까워오자 스키장별 폐장하는 날짜를 알아보며 아직 닫지 않은 스키장을 열심히 찾아다닌다. 겨울을 끝자락을 끝까지 붙잡으며 연습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며 나이에 관계없이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는 열정이란 참으로 귀한 감정이라며 감탄했었다. 그런 열정의 300분의 1을 끌어와 피아노 학원을 알아보았다. 나를 위한 학원에 등록한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그런 연유로 요즘의 나는 '얼음연못'이라는 곡을 연습하고 있다. 요즘이라고 썼지만 고작 2번 레슨을 받았다. 2번의 레슨으로 퍽이나 장황한 글을 쓰는 이유는 오늘은 양손 치기를 처음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즉, 깨달은 바가 두 배 있었다는 이야기. 수업 내내 눈이 악보를 보는 속도, 뇌가 실행되는 속도, 손이 이를 받아들여 치는 속도가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심지어 세 가지 속도가 모두 느린데 이 셋의 느린 속도의 정도가 각기 다르다 보니 미칠 노릇이었다. 눈으로 악보는 보고 있으나 머릿속에 계이름은 떠오르지 않고 손가락 숫자가 쓰여있으나 그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다.


무엇이든 어려서 배우는 것이 습득이 빠르다는 점과 늦으면 늦는 대로 무엇이든 배우려는 마음이란 역시 소중하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연주희망곡은 2개를 써냈다. 사실 종이에 쓰면서도 이 곡을 도대체 언제 마스터할 수 있는 것인가 고개가 저절로 갸우뚱해졌다. 얼음연못의 가장자리에서 이토록 허우적대고 있으니 말이다. 연습실을 문이 닳도록 다니면 그리고 집에서 빵을 먹을 시간을 대신해 연습한다면 언젠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할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상상해 보았다. 그땐 좀 더 각도를 넓힌 어진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길 바라면서 다시 꽝꽝 얼어붙은 얼음연못가로 떠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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