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점(美點), 장소(長所), 장처(長處)

용돈과 게임사이

by 완자

베이글집에 심부름을 다녀온 아이는 우다다다 뛰어 들어와 땀이 송골송골 맺힌 얼굴로 가뿐 숨을 내몰며 이야기한다.

"엄마, ㅎㅍㅅ에 새로운 빵이 나왔어요!"

숨넘어갈만한 소재인지는 모르겠지만 궁금해서 나도 묻는다.

"뭐가 나왔는데?"

"올리브 치아바타!"

"오호! 다음에는 새로 나온 것 있으면 전화해. 같이 하나 사서 먹어보게."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씨익 웃더니

"그럴 줄 알고 하나 사 왔지. 이건 내 돈으로 샀어. 엄마 드릴게."


"네가 말하는 '내 돈'이라는 건 어디서 났니?"라고 묻는 것도 잊고 환호했다. 생각할수록 참으로 기특하다. 때때로 아니, 불과 오늘 아침에도 투닥거린 사이지만 가끔씩 이렇게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신비로운 재주를 가지고 있다. 결코 내가 빵을 좋아해서는 아니다. 아마도.


아이의 용돈은 철저히 능력제에 기반한다. 가장 높은 금액을 뽐내는 항목은 '음식물쓰레기 버리기'이다. 무려 1회에 1천 원이지만 이 제도가 도입된 이래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해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항목이다. 아이가 주로 하는 집안일 항목은 아래 3가지 정도이다.


- 화장실 휴지 갈기 : 500원

- 일반쓰레기 버리기 : 300원

- 각종 심부름 (거리와 심부름 내용에 따라 차등지급) : 700원~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용돈기록장에 내용을 기록하고 엄마의 사인을 받지 않는 경우에는 용돈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이렇게 철저하게 할 생각은 없었지만 주말이 되면 서로 휴지 갈기를 했다, 안 했다로 입씨름을 하다 보니 나온 궁여지책이랄까. 이런 룰이 존재함에도 아이는 용돈기입장에 내용을 기록을 하지 않아 3주간 용돈을 한 푼도 못 받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주말마다 외할아버지가 주는 용돈으로 충분히 간식을 사 먹을 수 있어서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행여 정산을 못 받을 수 있는 심부름이지만 슬쩍 부탁하면 큰 저항 없이 다녀온다. 빵집에 가서 빵을 사 오는 것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는 것도, 주문한 음식을 픽업하는 것도. 바람과 햇빛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 마치 퀘스트를 달성하는 게임처럼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한 번은 심부름을 다녀오다가 외국인 4명이 길모퉁이에서 어딘가를 찾는 듯 서있었다고 한다. 지금 사는 곳은 관광지나 K-컬처가 연관된 장소는 주변에 전혀 없다. 아이는 이 사람들이 왜 이 동네에 있는지 궁금했지만 그들의 대화 중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KFC'하나였다. 그들이 있던 곳과 KFC는 크게 멀지 않은 곳이었다. 아이는 그들에게 다가가 잘 못하는 영어지만 나름의 조합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KFC? 퐐로미!"


나라면 절대로 그냥 지나쳤을 상황이다. 나에겐 영어도 낯선 사람도 모두 경계대상이다. 누군가 외국어는 기세라고 했지만 정말 기세만으로 영어를 하는 아이가 신기하기도 이상하기도 기특하기도 하다. (가끔 창피할 때도 있지만)


나랑 달라서 많이 싸우고 나랑 달라서 많이 웃게 되는 아이.

앞으로도 내 빵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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