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단어는 다르겠지만 유치하게도 버스에서 “기사님!”하고 부를 때면 동화책 속 기사님이 떠오른다.
어릴 적 어린이 동화전집에서 등장하는 그이는 백마 탄 기사님, 현실 속 그분들은 버스 탄 기사님.
사실 둘 다 얼마나 로맨틱한 존재인지.
누군가를 위해 온갖 고초를 뚫고 달려오는 그 기지와 돌파력과 신실함에서 빛이 난다.
동화 속 기사가 가시덤불을 베어 가고 괴물을 물리치거나 지혜를 사용하며 난관을 돌파하듯이, 버스 기사님은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빗길 운전을 하고, 차선을 양보하기는커녕 끼어들기를 일삼는 비매너 운전자들을 인내하며 정류장에 오시기 때문이다.
동화 속 기사는 그의 공주 하나만을 생각하며 성에 도착하지만, 버스 기사님은 많은 정류장에서 그를 기다리는 수많은 공주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에서 조금 차이가 있겠다.
동화 속 기사들은 사실은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공주님에 비해 부족한 느낌이다. 동화 속 공주들은 각자의 이름이 곧 책의 제목이 되어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적으로 받게 되는 존재인데 말이다.
미지의 존재인 동화 속 기사들에 비해, 버스 기사님들은 각자의 분위기를 망토처럼 두르고 계신다.
저마다 개성 있게 멋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버스 기사님의 망토는 7080가요 망토다.
여린 맘으로 버티고 선 출근길이나 시들시들해져 돌아오는 퇴근길에 ‘걱정 말아요 그대’를 선곡하는 기사님이라도 만나면 마음이 애잔하게 녹아내린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노래이기에 알게 되었고, 어머니가 알고 있을까 봐 찾아보게 된 7080가요들이 버스 안에 울려 퍼지면 그 특유의 멜로디와 가사들은 나의 빈 마음속으로 들어와 한 조각 위로가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가 7080가요 망토를 두른 기사님을 만나본 것은 손가락에 꼽는다.
또는 버스 앞문으로 들어오는 손님마다 “안녕하세요.”하고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기사님도 계셨다. 그런 기사님을 만나면 버스에 탄 사람들과 안면이 있는 동네 이웃이 되는 기분이다.
최근에는 대부분 버스 기사님들의 취향보다 눈에 띄기 쉬운 것이 버스 왼쪽 상단에 달려 있는 자그마한 LCD 화면이다. 유튜브나 웹에서 유행하는 영상이나 시책 홍보 영상들이 나오곤 하는데, 아무래도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 매력은 없다. 보다 보면 시각적 자극 위주의 짧은 영상들이 반복해서 송출되기 때문이다.
몇 시간 동안 운전석에 앉아서 도로를 주시하고 승객들을 살펴보는 일상을 보내는 버스 기사님.
그는 우리의 일상을 지속 가능하게 도와주시는 분들 중 하나다.
우리는 서로의 일상을 조금쯤 나눠지고 있으니, 서로의 소중함과 개성 또한 조금쯤 나눠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버스 기사님을 현실의 직업인이 아니라 동화 속 위기의 상황에서 마주한 기사님처럼 여기고 대한다면, 우리 또한 공주나 왕자와 같은 분위기를 두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