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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 Mar 17. 2022

1화 [쁘띠 마망]

쓰네필, 영화와 글쓰기와 사랑

*쓰네필이란 ‘시네필(Cinephile)’ + ‘쓰다’로서, 영화와 글쓰기에 대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쓰네필 모임에서는 함께 영화를 보고 글을 써보는 활동을 합니다. 모임 내용을 담은 이 글뭉치는 (1)쓰다듬는 영화, (2)네 생각이 궁금해, (3)필을 담은 한문장 순서로 진행됩니다.




느티: 박한 씨와 쓰네필 모임을 함께하게 되어서 기뻐요. 사실 박한 씨를 만나고 예전보다 영화를 많이 보게 되어서 언젠가 영화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영화에 대해 깊이 있고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영화를 좋아해요. 내향적인 집순이에다가,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적고 한해의 업무가 반복되는 직업을 가져서인지 가끔 일상에 침잠되곤 하거든요. 그럴 때 저는 영화의 다양한 상황 속 각자의 선택에 주의하고, 그로 인해 발현되는 감정을 간접 경험하면서 스스로를 넓혀가요. 쓰네필을 통해서 함께 질문을 나누며 스스로를 넓혀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박한:  저도 기쁘네요. 제가 아싸 경향이 짙어서 모임이나 이런 걸 불편해하거든요. 그렇다고 해도 말하고 싶은 것도 있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이런 모임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저도 느티 씨와 이런 작업을 하게 되어 개인적으로는 의미가 깊어요. 같은 내향적인 방콕러끼리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좋겠습니다.


쓰: 다듬는 영화   

느티: 첫 영화는 셀린 시아마 감독의 [쁘띠 마망(2021)]으로 해볼까요. 이 영화는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엄마(마리옹)와 시골집으로 내려온 딸(넬리)의 이야기예요. 갑자기 엄마가 사라진 후, 넬리는 엄마와 이름이 같고, 동갑인 누군가를 만나게 돼요. 영화에서는 서로 다른 시간대가 공존하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외현적으로 구분되는 신호 없이 존재하고 있어요. 가을 숲의 서정적인 배경과 어우러져 신비하고 따뜻한 감성을 지닌 영화인데요. 이 영화를 함께 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우리는 어린아이로부터 시작되었잖아요. 지금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아도 우박 내리던 날 놀이터 미끄럼틀 안에서 과자를 아껴 먹으며 조난 놀이를 하던 어린아이와 지금의 제가 크게 다르다고 생각되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그 어린아이와 지금의 스물일곱인 저는 어떤 관계일까요? 영화의 제목인 ‘쁘띠 마망’의 ‘쁘띠(petit)’는 프랑스어로 ‘작은, 어린’이라는 뜻이니까, 엄마도 나와 다르지 않은 어린아이였을 것이고, 지금도 그 어린아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박한 씨는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박한: 저는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영화에  접근하는 데에 있어서 생각을 많이 해보지는 않은 것 같아요. 시아마 감독의 전작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인상 깊게 봤었던 터라, 이번에 감독의 신작이 나온다고 하니까 실망하지는 않겠다는 믿음이 있었고요. 한마디로 믿고 보는 감독이라서 보게 된 것 같네요. ‘쁘띠 마망’이라는 어감도 귀여운 느낌이 강했고 포스터만 봐도 굉장히 아기아기 하잖아요. 제가 또 아기아기한 부분이 있던 터라 저랑 맞겠는데 싶었죠. 이렇게 느티 씨랑 이야기하니까 제가 느낌으로만 이 영화를 본 것 같은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네요. 이런 순간에는 말로 정리되지 않은 부분들을 말의 수맥을 찾고 뚫는 느낌이 드는데, 좋은 느낌입니다. 사실 영화 자체보다 이렇게 스스로 곱씹는 부분이 제겐 소중한 것 같아요. 어찌 됐든 저로서는 첫인상이 좋았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호감을 가지고 보았던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약간 이상했던 부분도 온정적으로 봤던 것도 있었고요. 하지만 다 보고 나서 총평을 생각하자면 극장에서 봤던 제게 잘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네: 생각이 궁금해   

느티: [쁘띠 마망]에서는 넬리(딸)이 자신과 동일한 나이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지요. 저도 어릴 적 ‘엄마’는 원래 ‘엄마’인 줄 알고 있다가, 할머니 댁에서 엄마의 어릴 적 사진을 보고서 나와 같은 나이의 엄마를 상상해보기 시작한 것 같아요. 박한 씨는 본인의 어머니를 보며 어머니의 어릴 적 모습을 그려본 때가 있었나요? 저는 영화를 보는 동안 넬리가 되어 제 어머니가 떠올랐어요.


박한: 영화를 보며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코가 크지도 않고 불어를 못하시거든요. 농담이고,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어머니의 상실을 다루고 있는데, 저희 어머니의 부모님께서는 다행히도 건강하십니다. 앞으로 10년은 무리 없이 사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만약 어머니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그때의 어머니를 본다면 이 영화가 제게 찾아올 것 같아요. 그것이 영화가 주는 위로일 수도 있다고 보고요. 그렇게 보자면 영화는 비극을 경험한 제게 약이 되고 비극을 경험하게 될 제게 백신이 된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어머니의 어릴 적 모습이라... 사실 어머니는 지금 애 같은 부분이 있어서 지금 모습이랑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래도 저희 어머니의 말을 들어보면 상당히 곱게 자랐다는 인상을 받긴 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만약 영화처럼 어린 어머니를 만난다면 대화하다 보면 좀 피곤할 것 같은 인상을 받을 것 같네요. 농담이고,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는 상당한 내향적인 사람이라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많이 할 것 같네요. 지금의 어머니는 좀 신실하신 편인데, 그때의 어머니는 어땠는지도 궁금하기도 하고요. 말을 하다 보니 그려보는 것보다는 호기심이 더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박한: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쌍둥이와 모녀관계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무래도 가족에 대한 것은 혈연을 고려할 수밖에 없고 그 혈연을 가장 잘 드러나게 하는 설정이 쌍둥이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작품 외적으로 봐도 쌍둥이 자매는 귀여워서 매력을 영화에 더하게 되었지만, 영화 내적 논리로는 아쉽게도 귀여움을 캐치할 수는 힘드니까요. 느티 씨께서는 [쁘띠 마망]에서의 쌍둥이 소재와 설정에 대해 개인적으로 생각하신 바가 있으신가요?


느티: 영화에서는 넬리(딸) 역과 나이가 비슷한 어머니 역으로 쌍둥이 자매를 기용했지요. 외모가 일란성쌍둥이로 생각될 만큼 닮았는데, 자세히 살펴보거나 그들의 표정을 보면 다르더라고요. 쌍둥이 소재는 박한 씨 말처럼 혈연과 유전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피로 이어진 관계들을 보면 닮은 부분이 많잖아요. 저희 어머니와 남동생은 외모가 정말 닮았거든요. 영화의 쌍둥이 설정을 보며 영화에서 대표되는 모녀 관계를 포함하는 직계 관계는 선조로부터 그의 것을 물려받은 존재론적으로 유사한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속 모녀가 할머니의 다리 질환을 물려받은 것이나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지닌 것처럼 대물림되는 것들이 있지요. 할머니를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이, 엄마를 걱정하는 아이의 마음과 다르지 않고, 그곳에는 피를 타고 흘러오는 사랑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쌍둥이 배우를 통해서 ‘쁘띠(어린아이)’가 ‘마망(엄마)’이 될 수 있고, ‘마망(엄마)’이 ‘쁘띠(어린아이)’이기도 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아요.


: 을 담은 한문장   

느티:  [쁘띠 마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엄마의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있었다.”입니다. 영화관을 나와서도 내내 기억에 남은 대사가 있는데요. 숲에서 마리옹이 넬리에게 어떻게 이곳에 왔냐고 물었을 때, 넬리는 “네 뒤로 난 길을 따라서 왔어.”라고 대답해요. 이 대사가 영화의 중심을 지탱하는 문장처럼 느껴졌어요. 삶이 흐르며 ‘나’라는 사람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 같고, 내가 없어도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을 마주할 때, 저 문장을 떠올려 보고 싶어요. 가늠하기 어려운 환상 같은 엄마의  숲길에 나는 선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요.


박한:  제게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보다 제게 큰 인상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만약 어느 주말에 신이 나타나서 무조건 시아마 영화 중 하나를 다시 보라고 한다면, 저는 쁘띠 마망을 선택할 것 같아요. 영화에서 드러나는 정조라거나 어린아이가 겪을 만한 정서가 제게는 다시 겪고 싶은 따뜻한 것이라고 생각돼요. 저는 특별하게는 생각나는 대사는 없고, 마리옹과 어머니가 같이 보트를 타고 강가의 피라미드를 향해서 노를 젓던 장면이 떠오르네요. 이 장면에서 느껴지는 활력과 뭉실뭉실한 느낌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한 문장으로 끝내자면 “다시 걷고 싶은 숲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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