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버스 러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티 Jun 17. 2020

버스 공공 와이파이

옛날 옛적에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지금 주위를 둘러보면 귓가에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길거리를 걸어도 열에 두셋은 하얀 귀마개 같은 것을 끼고 있다.
어릴 적 코피가 나면 어른들이 돌돌 말아 코에 끼워주던 하얀 휴지뭉치 같기도 한 그것 말이다.


버스에서도 에어팟이나 이어폰을 끼고 드라마나 게임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래도 버스에서는 ‘책 읽는 사람’을 상상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덜컹거리며 움직이는 공간에 앉은 채로 작은 활자들을 읽어 내려가려면 멀미를 할 테니 말이다.
대중교통 이용자의 컨디션 유지를 위해서는 스마트폰 화면을 보는 것이 훨씬 매력적인 방법이다.
 


나는 출근길의 경우, 화창한 바깥 풍경을 보며 하루를 그려내 보는 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의 30분이 그날 하루 기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 있다.
버스 창가로 새어드는 밝은 햇살은 어김없이 오늘도 또다시 시작된 하루에 대한 설렘을 준다.
가만히 앉아서, 또는 손잡이를 잡고 선 채로 나는 오늘은 어떤 일들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저녁밥으론 무엇을 먹을지 등을 비눗방울 불 듯이 생각해낸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하루 브리핑을 간략히 마치면 주변을 살펴보는데,

무표정의 사람들을 보며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해 보는 것이다.
나도 역시나 저들에게 무표정으로 보이겠지 하며.

퇴근길에는 생각대로 흘러갔거나, 생각만큼은 즐겁지 않았던 하루들을 되새기며 정류장을 향해 걷는다.

대개 퇴근버스에서는 스마트폰으로 동종업계 사람들의 커뮤니티 글을 보며 다른 이들은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훑어본다.

같은 생각에 공감과 위로를 받기도 하고, 새로운 소식에 눈을 번쩍 뜨기도 한다. 전날 버스에서 봤던 글까지 역주행을 하다 보면 어느새 집 앞 정류장에 도착이다.

이러한 출근길과 퇴근길 일상을 보내는 내 모습에는 사실 스마트폰 데이터 용량의 문제도 있을 수 있다.

직장에 와이파이가 없기에 늘 데이터를 켜놓아야 해서 평상시에는 절약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는 사람들을 남몰래 부러워한 순간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 창문에서 ‘서울시 버스에 공공 와이파이가 설치되었습니다’하는 포스터를 보았다.
아니, 언제부터?
2019년 11월부터 2020년 상반기을 목표로, 순차적으로 시내버스에 공공 와이파이를 설치하고 있다고 한다.

이 사실을 몇 달이 지나서야 알게 된 나는 아쉽고도 기뻤다.
여태껏 이를 모르고 끙끙대던 건 아쉽지만, 앞으로 그러지 않아도 된다니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버스 출퇴근을 해야 하는 앞으로의 무수한 날들에 있어서 말이다.
세상에 재미있고 흥미로운 영상들이 얼마나 많은지!

귀여운 동물들의 영상은 우리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하고, 드라마 영상은 하나의 서사로 우리의 일상에 덧씌워진다.

그러나 여기서 작은 선택지가 발생한다.

버스에서 소리나 글자, 그림을 별개로 보는 것은 우리가 인식하는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영상을 본다는 것은 우리가 인식하는 공간의 이동을 수반하는 일이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영상 속 공간으로 몰입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출근 버스의 공간이 주는 분위기를 포기할 수 없으니, 퇴근 버스에서 필요할 때만 영상을 보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8차선 도로 위의 서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