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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 Nov 26. 2022

복잡한 세상 속의 너와 나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본 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12일,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너무 긴 제목 탓인지 한국에서는 속칭 ‘에에올’이라 불린다.)>가 개봉했다. ‘에에올’은 누적 관객 33만 명을 달성하며, 감독 인터뷰와 NG 장면이 추가된 확장판으로 <양자경의 더 모든 날 모든 순간>을 11월 23일에 재개봉했다. 나의 진중한 펜팔 친구는 이 영화를 올해의 영화로 지명하며 ‘상대성과 절대성의 의미와 무의미에 대한 영화’라고 소개했다. 영화가 사람들 사이에 소곤소곤 입소문을 타고 있는 이유를 궁금해하며 어느 토요일 오전에 확장판을 보게 되었다. 제목처럼 삶의 모든 것과 모든 곳을 한꺼번에 그려내기를 시도한 영화에 대해 짧은 리뷰를 적어보고자 한다.


 ‘에에올’은 대니얼 콴과 대니얼 샤이너트가 감독과 각본을 맡았다. ‘대니얼즈’라고 불리는 이들은 친구 사이로, 함께 콤비로 활동하는 감독 듀오다. 뮤직비디오 감독 시절부터 일명 ‘병맛’ 연출로 주목받았다고 한다. 그들이 특징적으로 활용하는 B급 소재들이 영화 곳곳에 웃음기를 안고 존재하는데, 이러한 B급 문화들이 스크린에 오르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듯하다. 함께한 배우들은 양자경, 스테파니 슈, 키 호이 콴 등인데, 일부러 중국계 배우를 채용하려 한 것은 아니나 자유로운 액션이 가능한 배우를 탐색하다 보니 모이게 된 출연진이라 한다. 그렇다, ‘에에올’의 장르는 액션의 비중이 높다. 그러나 다니엘 콴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는) 가족 드라마용, 사이언스 픽션용, 철학용 답이 각각 따로 있다.”라고 답했듯, ‘에에올’은 장르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한 영화이다.


 영화는 가압류 위기에 처한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국계 이주 가정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에블린(양자경)은 세탁소를 운영하고 아버지를 부양하느라 쉴 틈 없이 바쁘고 불안하다. 게다가 신년파티를 준비하고 세무 감사를 신경 쓰느라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콴)와 딸 조이(스테파니 슈)의 이야기를 들을 정신도 없다. 그러다가 ‘알파버스’에서 온 ‘알파 웨이먼드’에게서 그녀가 악으로부터 온 우주를 구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평행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나 자신으로부터 능력을 빌려오는 ‘버스 점프’를 통해 에블린은 다양한 능력을 활용하며 알파버스에서 온 자신의 딸인 조부 투파키와 대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평행우주에서의 에블린들의 서사가 유쾌하고 매력적인 연출로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쿵후 고수이자 유명 배우가 된 에블린’, ‘피자 광고판을 돌리는 기술이 화려한 에블린’, ‘손가락이 소시지가 된 에블린’들에 주목하다 보면, ‘어쩌면 나도 다른 세계에서는…’하는 상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멀티버스 세계에 숨어 있는 <화양연화>, <라따뚜이> 등 다양한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삶의 고민을 직시한 따뜻한 대사들

 ‘에에올’이 인생영화로 손꼽히는 이유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솔직한 선의가 담긴 대사들이다. ‘에에올 대사집’이 세간에 활발히 거래되는 모습을 보면 영화의 대사들이 얼마나 주옥같은지 추측할 수 있다. 일례로, 어느 정도 삶의 여러 주요 경험을 이룬 사람들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덧없음을 느끼거나 새로운 경험에도 크게 설레지 않는 무뎌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의 빌런인 조부 투파키는 어머니의 통제와 압박으로 기댈 곳을 찾지 못하고 능력을 폭주하고 모든 우주를 헤매다가 인생의 무상함에 빠지게 된다. 조부는 모든 것을 올려놓은 ‘베이글’을 만드는데, 이 베이글은 블랙홀처럼 주변의 것들을 빨아들이며 소멸로 이끈다. 베이글의 세계는 절대-객관이 지배하는 곳으로 나만의 삶이 지니는 무게가 한없이 가벼워진다. 조부는 에블린에게 행복한 이 순간은 한때일 뿐이라고 말하며 베이글의 세계로 유혹한다. 내가 가진 관계와 나만이 누리는 순간들에서 더 이상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나를 가두는 감옥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깊은 권태에 빠진 사람에게 뭐라고 위로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는 조부와 맞서야 하는 현실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에블린에게 다음과 같이 솔직한 격려를 전한다.

“지금의 너는 모든 우주 중에서 가장 최악의 에블린이야. 그렇지만 네가 실패의 길을 선택했기에 다른 에블린들이 성공한 거야.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무엇이든 너무 못하니까.”


선을 넘나드는 감독 본위의 연출

‘에에올’이 가진 두 번째 매력은 유쾌하고 자유로운 연출이다. 아마 대다수의 관람객이 꼽는 명장면은 생명이 살 수 없는 우주에서 두 주인공이 절벽 위의 돌멩이로 존재하는 장면이 아닐까. 절벽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관망하며 아무 걱정과 불안이 없는 평화의 세계에 머무르는 것 대신에 그들이 내린 선택은 걱정과 불안의 세계에 살고 있는 ‘작고 어리석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또한 영화에는 지금까지의 액션 격투 장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연출이 존재한다. 에블린에 비해 남편 웨이먼드는 순수하고 이타적인 인물이다. 손님들이 맡긴 세탁물에 눈알을 붙여 돌려주거나, 세무관을 위해 쿠키를 준비하거나, 상대를 배려하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등의 행동을 하곤 한다. 영화에서 조부가 만든 ‘베이글’과 대립하는 장치는 웨이먼드가 애용하는 ‘장난감 눈’이다. 웨이먼드가 여기저기 붙이곤 하는 장난감 눈은 그것이 붙는 물건에 유쾌한 의미를 덧입힌다. 남편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쓸데없는 행동으로 생각했으나, 웨이먼드의 다정함이 그 나름대로 세상을 상대하는 전략이었다는 것을 깨닫고서 에블린은 자신의 이마에 장난감 눈을 붙인다. 이로써 상대-주관의 세상이 시작되고, 장난감 눈이 붙은 돌멩이 에블린은 돌멩이 조이를 향해 다가가게 된다. 에블린은 베이글로 향하는 조부를 저지하고 구하기 위해 그녀를 막는 사람들과 전투를 시작한다. 그녀는 “Be Kind.”라고 외치는 남편의 바람에 부응하며 ‘다정한 전투’를 치르기 시작하는데, 다니엘 콴 감독은 인터뷰에서 해당 장면에 대해 “작가 다니엘 슈마흐텐베르거가 말하듯 사랑이란 대상을 완전히 아는 것이다. 에블린은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식으로 전투에서 이긴다. 사랑은 그런 거다. 모든 것을 초월한다.”라고 답했다. 이 전투 장면의 연출은 글로 표현하기 어렵도록 틀을 깨는 신선하고 유쾌하며 다정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삶의 수많은 이유 중 하나, ‘O를 위한 O 되기’

 나는 영화에서 펼쳐둔 많은 문제와 고민이 해결되는 지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영화 초반부에 에블린은 집을 떠나는 딸을 잡으려 머뭇거리다가 “건강히 챙겨 먹어. 너 살쪘어.”라고 말하는 것에 그친다. 온 우주, 온 세상을 기준으로 본다면 딸은 우주를 위협하는, 사라져야 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에블린 자신을 기준으로 조부는 그녀의 소중한 딸이다. “There’s no rule!”이라는 돌멩이 에블린의 대사처럼 세상에 정해져 있는 규칙은 없다. 세상의 잣대만을 기준으로 보면 개인의 존재는 작아지고, 자신의 잣대로만 판단하면 개인의 문제에 지나치게 얽매이게 된다. 이를 깨닫고서 영화 후반부에 에블린은 집을 떠나는 딸에게 “나는 너랑 지금 여기에 같이 있고 싶어.”라고 딸을 위한 자신의 마음을 전하며 포옹한다. 조이는 줄곧 에블린을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으로 불러왔으나, 서로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지며 비로소 에블린은 조이를 위하는 엄마가 된다. 이후 에블린은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기억하고, 자신이 남편에게 주었던 상처를 인정하며 그것들을 차근차근 바로잡아 나간다.


 ‘에에올’은 이 걱정 많고 불안한 세상에서 나를 지탱해주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였다. 지금 여기의 나에게는 어떤 것이 베이글이고, 장난감 눈알이 되는지 생각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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