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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담홍 Jun 28. 2024

부모에게 받은 다정함과 아이에게 물려줄 다정함에 대하여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 에세이쓰기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소설을 읽으며...

애정 없는 가족으로부터 먼 친척 부부에게 떠맡겨진 소녀가 인생 처음으로 마주하는 짧고 찬란한 여름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책 표지 中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는 1981년 아일랜드 시골 지역을 배경으로 어머니의 출산을 앞두고 여름 몇 달 동안 친척 집에 맡겨지는 어린 소녀의 이야기(P.101)를 다뤄요. 가정형편이 어려운 소녀는 친천집(킨셀라 부부)에게 맡겨집니다. 그곳에 도착한 맡겨진 소녀는 '나는 정당한 말을 찾을 수 없지만 여기는 새로운 곳이라서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P.25)'라고 말해요. 소녀의 심리 변화와 킨셀라 부부의 시선을 잘 따라가 보세요. 그리고 친적집에 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었던 맡겨진 소녀 부모님의 마음도 살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맡겨진 소녀>를 읽는 동안 어린 시절의 나를 많이 만났어요. 초등학교 5학년 여름 방학 때 태백에 사는 작은 아빠네에 가서 잠시 머물면서 우리 집과 다른 정서에 낯선 느낌을 받았던 기억, 일곱 살 때 할머니 집에서 자다가 깨서 엉엉 울던 기억, 할아버지 생일과 내 생일이 가까워서 헌 미역국을 먹었던 기억, 엄마에게 흠씬 두들려 맞고 울던 나에게 와서 용돈을 주던 아빠, 내 생일에 케이크를 사다 준 아빠, 동네 사람들과 의림지로 소풍 갔던 기억, 할아버지의 긴 병환에 온 가족이 힘들었던 기억, 고모들에게 받은 상처 등등이 떠올랐어요. 화해가 된 것도 화해가 되지 못한 채  머물러 있는 기억도 있고, 따뜻하게 남아있는 기억들도 있었어요. 그러면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고 보내고 싶은지 묻게 되기도 했습니다.


"부모님 이외에 킨셀라 부부처럼 나를 다정하게 대해 준 사람은?", "우리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답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어릴 때 다정함이 늘 그리웠다. 포근한 품이, 애정어린 눈빛이. 그러나 늘 사는 게 바쁜 부모님에게 바라서는 안 되는 일어었다. 오히려 바쁜 부모님을 위해 우린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아서 잘 해야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학교에 가서 맞는 날이 많았다. 준비물을 못 챙겨가서, 숙제를 안 해 가서. 그때는 그런 게 뭔지도 모르는 바보였나? 어떤 연유로 준비물을 안 챙겨가고, 숙제를 안 해갔는지도 몰랐던 무지한 어린이였다. 선생님에게 따귀를 맞으면서 수치심을 키워나갔다. 그게 독이었는지 덕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나는 점점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자라갔다. 


다정함을 갈망하는 만큼 나는 외로움이 컸다. 사랑이 많이도 고팠다. 누군가 곁에 있기를 바라면서 누군가 곁에 있는 게 두렵고 무서웠다. 그런 나에게 다가와 준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다. 남편을 만나 결혼해서 살기까지, 많은 헤어짐이 있었다. 조금만 불안한 기운이 감지되면 "우리 그만 헤어져."를 달고 살았던 나이다. 결혼하고 나서는 "우리 그만 이혼해." 또는 "나 엄마한테 보내줘."라는 아주 어리광스러운 말을 내뱉으며 지냈다. 기회만 보이면 도망가려는 나를 꼭 붙잡고 제자리에서 품어준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다. 남편 덕분에 나도 사랑받는 존재라는 걸 처음으로 제대로 알았다. 남편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깨달았다. 부모님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걸. 단지 내가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소홀히 여겼고, 너무나 익숙했기에 나보다 더 나은 사람과 비교하며 부족하다고 투정을 부렸다. 무엇을 주었든 받는 건 자신의 문제이니깐.


이런 이유로 나는 우리 딸들에게 나의 사랑이 제대로 전달 되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란다. 충분히 사랑받은 유년기를 아이들이 보내길 소원한다. 존재만으로도 자신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길 말이다.


존재 자체로 충분하고, 사랑스럽다는 걸 나는 노력해야 했다. 그 노력의 시간이, 애씀의 세월이 고맙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태초부터 존재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힘이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 자신감으로 단단한 마음으로 빛나길 바란다. 그럼에도 나약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럴 땐 잠시 쉬면서 사랑받은 날의 기억으로 기운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들과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함께 보내려고 한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개인의 시간이 늘어나고, 같이 밥 먹는 빈도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하루에 5분, 10분이라도 충분히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기록을 도구로 삼는다. 우리 딸들과 하루 중 나눈 이야기 한마디를 기록하고, 감사 일기를 쓰고, 사진으로 아이들을 담으며 매일 사랑하고자 한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아닌 민이와 윤이만을 위한 책 한 권을 만들고 싶다. 사랑받은 흔적을 고이고이 전해주고 싶다.


가끔 나에게 "엄마 나 싫어해?" 또는 "엄마 나 좋아해?"하고 사랑을 확인하는 너희들에게 엄마는 너희가 엄마에게 오는 순간부터 너희를 사랑하고 있었노라고 말해주고 싶다. 찐한 내 마음의 절반이라도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가닿길 바란다.


민아, 윤아! 엄마 곁에 와줘서 고마워. 그리고 아주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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