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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리 May 27. 2023

민들레처럼

홀씨가 되어

‘나의 아름다운 이십 대’.

아들의 휴대폰 카톡 상태 메시지다.

꽤 오랫동안 바뀌지 않는 그 문장을 보며

엄마로서 흐뭇한 마음이었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어디 아름다운 시절인가!

직면한 현실의 삶이 결코 만만치 않을텐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십대를 ‘아름다운’이라 표현해주는 아이가 그저 고맙고 대견하기만 했다. 


 아들은 학교에 있을때부터 코로나 상황이

완화되면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겠다는

뜻을 비쳤었다. 차츰 코로나로 제한 되었던 상황들이 풀리게 되면서 틈틈이 준비하더니 비자를 발급받고 서류와 면접이 통과되었다고 한다.


 “엄마, 내가 일본에 가면 혼자 잘 지낼 수 있어?”  


2년 전 아빠를 먼저 보낸 후, 부쩍 엄마에 대해

걱정이 많은 아들의 말이다. 누나도 서울에서 지내며 직장을 다니니까 혼자 남게 되는 엄마에게 마음이 쓰이는가보다.


엄마는 잘 살고 있을테니 아무 염려말고

하고 싶은 일, 또 가고 싶은 계획들을 마음껏 진행하라고 했다. 본격적인 워홀준비에 들어가며 부족한 비용을 마련하려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을 구하는 문제 및 그쪽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차곡차곡 준비해 나갔다.


일 년 동안 일본에서 살 집을 서울에서

구한다는것도 내게는 희안하게 보였다. 세상이 참 좋아졌구나 감탄하며 혼자 차근차근 준비해 

가는 과정을 지켜 보았다. 


 아들의 출국을 앞두고 딸내미는 인천공항

근처에 호텔을 예약했다. 하룻 밤 가족이 느긋한 시간을 지내며 좋은 대화도 하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자는 것이었다.


큰 비용을 들여 그렇게까지 해야할까?하는 마음도 살짝 있었지만 딸의 생각이 기특하고 고맙기만했다. 우리는 다섯 가족(뽀삐포함)이 긴 시간 함께 하다가 지난 2~3년 동안 둘을 먼저 보냈다.


아빠가 투병하는 동안 우리는 똘똘 뭉쳐서,

환자가 있는 가족에게 고통만 있는게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도 있음을 경험하였다.


가족에게서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강아지 뽀삐가

수술 후유증으로 우리곁을 먼저 떠났고 그 다음 해, 남편은 그가 즐겨 외웠던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처럼 훌훌 우리곁을 떠났다. 


가족을 조금 일찍 보내는 과정을 겪으며

우리 아이들은 더 성숙해졌다. 서로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고 살아있다는 것,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귀하고 의미있음을 깊이 인식하게 된 것이다.

딸의 마음을 알기에 나는 흔쾌히 그 계획을 수락하고 아들의 출국 하루 전날,우리는 호텔로 향했다. 


파라다이스시티 맛집에서 순서대로 나오는

음식을 즐겁게 먹으며 아들의 워홀가는 느낌을 들었고 어떻게 그 일년을 지내고 싶은지,등등 이야기꽃을 피웠다.


찬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호텔 주변 거리를 걷기도 하고 호텔안에서 예약한 곳을 못찾아 깔깔대며 헤매기도 했던일은 우리들 추억의 페이지에 곱게 담길 것이다.      


아침 비행기로 출국할 예정이어서 서둘러

호텔에서 공항으로 이동했다. 수하물도 다 보내고 아들을 안아주며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마치자, 대뜸 “엄마 나두 가요” 딸내미가 말한다.


장난하지 말라는 내 말에 진짜 본인도 비행기표를 끊었다는 것이다. 출국 며칠 전 동생과 대화하다가 막상 떠나려니 조금 두렵고 걱정된다는 말이 떠올라 자기도 예매했다는 것이다.


마침 다음날이 임시 공휴일이어서 출근을 안하니까 같이 동행해서 필요한것 챙겨주고 다음날 돌아온다는 것. 세상에..정말 서프라이즈였다. 아들도 너무 놀랐고 그리 마음써주는 누나에게 감동했다고 한다.  

그렇게 딸과 아들을 보내고 혼자 돌아오며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누나와 8년차이 늦둥이로 태어났지만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려

과도하게 의젓한 아들,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엄마를 챙기랴, 늦둥이 동생까지 꼼꼼히 돌보느라 애쓰는 우리 딸내미가 참 고마워서. 


 우리가족의 삶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그 고난의 시간이 우리를 더 성장시키고 단단하게 했으며 서로 결속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함께있을 때 서로 힘이 되고 위로가 되면서 어려움을 잘 극복했다면, 지금은 흩어져서 각자의 시간을 알차게 채우고 영글어가는 시기인 것이다.


예쁜 딸내미는 직장에서 맡은일을 잘 감당하고 있다. 엄마가 늘 가르쳤던대로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삶의 지향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아 흐뭇하다.

우리아들 역시 세상과 따뜻한 연결을 꿈꾸는 삶의 태도를 지닌것같아 뿌듯하기만 하다.  


척박한 곳에서 자라지만 빛깔고운 꽃을 피우는 민들레처럼 우리 아이들도 어디에서든 삶의 고운꽃 피우는 홀씨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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