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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리 Oct 10. 2023

알로하, 나의 엄마들

-사진 신부, 고단한 삶-


언제부터일까.

사진을 찍는 것에 부담이 된다.

스스로 품은 마음의 나이가 젊어서인지 사진 속 실제의 내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그럼에도 마음에 드는 사진이 몇 장 있는데

모두 딸내미의 휴대폰으로 찍은 것이다.


분명히 내 얼굴인데 훨씬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나름? 미인의 모습이어서 내심 흡족한 마음으로 들여다보곤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카메라 어플 때문이라는 것, 사진만 보고 섣불리 상대의 인물을 판단했다가는 곤란한 일을 겪을 수 있는 요즘이다.   


백여 년 전, 달랑 사진 한 장으로

인생을 걸고 모험적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 있다. 20세기 초, 힘없는 나라의 가난한 백성으로 삶의 희망을 찾아 밀려간 하와이 노동 이민자들의 삶과 그들의 사진결혼 이야기이다.


그들의 삶을 읽으며 너무 슬프고

애잔하여 눈물이 흐르다가도 처절한 상황을 묵묵히 감내하며 헤쳐나가는 용기에는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경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금이 작가는 1984년 새벗 문학상에

단편동화로 등단했다. 50여 권의 책을 꾸준히 펴내며 2020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그녀는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통해

우리 민족의 시간을 100년 전으로 되돌려 하와이 노동 이민자들의 기쁨과 슬픔, 그들의 인고의 삶을 읽게 한다. 


매봉산 자락에서 함께 자란 버들과 홍주,

그리고 무당의 손녀 송화는 사진결혼을 하기 위해 하와이로 향한다. 열여덟 살, 같은 나이의 세 여자는 각기 다른 배경으로 살아왔고 또 사진결혼을 하는 이유도 다르다.  


버들은 몰락한 양반집안 출신이다. 양반출신이라는 자부심이 있지만 의병활동으로 아버지를 잃고 끔찍한 가난에 몸서리친다. 하와이에 가면 공부도 할 수 있고, 돈을 쓸어 모을 수 있다는 중매쟁이 말에 못다 한 공부도 하고 싶고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홍주는 상민출신으로 양반이 된 부잣집의 고명딸이고, 결혼 두 달 만에 남편이 죽고 친정으로 돌아온 청상과부이다.

골골거리며 병약했던 남편이 죽었는데

자신 탓으로 돌리는 조선사회가 억울하기만 하다. 자유로운 영혼의 홍주는 가장 멋진 신랑사진을 직접 고르면서 새로운 삶을 향해 하와이를 선택한다.  


송화는 무당의 손녀로 사람들과는

철저히 단절된 채 산속에서 살았다. 어린 시절, 실성한 어머니 손에 이끌려 다니며 사람들의 냉대와 아이들의 돌팔매질을 당한 상처를 안고 있다. 신분으로 평가받지 않는 다른 세상을 향해 그녀 역시 사진신부가 되었다. 


세 명의 고향 친구들은 각기 다른 삶의

상처를 안고 새로운 삶,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하와이로 떠난다.


배를 타고 몇 달을 걸려 도착한 하와이,

설렘과 부푼 마음을 안고 만난 남편들은 사진 속

그 젊은 남자가 아닌 머리가 허연 늙은 신랑들이었다.


첫 대면에서부터 눈물바다가 되지만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다. 그녀들은 퉁퉁 부운눈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혹독한 이민자의

삶을 시작한다.  


사진신부들을 울게 만든 늙은 신랑들과 달리 버들의 남편인 태완은 사진과 다름없이 젊었다. 

하지만 결혼식 날, 버들이 우연히 듣게 된 이야기는 그녀의 가슴을 무너지게 만든다.


남편 태완은 끝까지 사진결혼을 안 하려 했고, 중풍에 걸린 아버지가 울며 애원해서 결혼이 성사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의 마음속에는 첫정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버들은 충격을 받는다. 


-닭이 울었다. 버들은 벌떡 일어났다.

개성 아주머니 말처럼 다 지나간 일이고,

줄리 엄마 말처럼 세월 앞에선 장사가 없다.


어떤 상처도 세월을 이기지 못한다.

아버지와 오빠를 잃어 본 버들은 그 사실을 알았다. 태완의 첫정도 세월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버들은 바닥에 허물처럼 널브러져 있는

분홍색 치마저고리를 접어 가방에 넣고 무명옷을 꺼내 입었다. 잔치는 지난밤으로 막을 내렸다. 


‘내는 인자 농장 주인이다. 중풍 든 시아부지캉 첫정을 가슴에 품은 신랑을 거두고 마당을 얼라들 웃음소리로 채울 사람은 내뿐인기라.’ 129쪽.- 


결혼 첫날 알게 된 사실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지만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스스로 다짐한다. 단단히 동여맨 마음의 고삐를 잡고 험난한 하와이의 삶을 개척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열여덟 살에 직면한 막막한 현실과

거친 삶을 마주하는 그녀는 중풍에 걸린 시아버지와 마음이 완전히 닫혀버린 남편을

지키며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조국에서 들려온 독립만세운동 소식에

하와이 이민사회도 들썩 거린다. 그들은 적은 월급에서도 꼬박꼬박 독립성금을 보내며

하루속히 조국이 독립되기를 열망한다.


하지만 동족 사회에서도 서로 다른 정치적 성향으로 겪는 갈등은 그들의 녹록지 않은 삶에 어려움을 더 보탠다.  


조국 독립을 향한 각기 다른 열정으로

서로를 적대시하고 심지어 테러까지 서슴지 않는 모습은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정치원형을 느끼게 한다.


이민노동자로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뼈 빠지게 번 돈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보내는 그들이다. 그 간절한 마음을 정치 이념논쟁으로 싸우기 바쁜 위인들은 알기나 할까.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떠난

남편을 뒤로하고 홀로 억척스레 아이들을

키우는 버들,


남편이 아들만 데리고 본처가 있는 조선으로

떠난 후 하와이에 빈 가슴으로 홀로 남은 홍주,


늙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무병이 도져서 딸을 하와이 둔 채 조선으로 돌아간 송화.


세 여자의 파란만장한 삶은 독자들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아들 성길이를 조선으로 보내고 가슴을 치며 몸부림치는 홍주에게 개성아주머니는 다독인다.    


“애가 옆에 없어도 너는 어마이다. 애는 떨어져서도 어마이 기운으로 사는 거이야.  

성길이 생각해서 기운 차리라”303쪽 


 아이들은 ‘엄마의 기운’으로 사는 것이란

말이 엄마독자를 감동으로 몰아간다. 엄마라는 이름덕에 이 땅에 수많은 인생들이 꽃을 피웠다.


손톱이 자랄새 없이 억척스레 일했던 엄마의 손이 우리 집에도 있었다. 그리고 백여 년 전, 그 먼 나라 미국 하와이에서도 누군가의 엄마들이 사람을 키우며 살아 낸 그 숭고한 이야기,


<알로하, 나의 엄마들>에서 우리 엄마의 모습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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