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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리 May 15. 2024

             꽃을 든 남자

-방문객

딩동~

초인종 소리에 현관문을 열었다.

약속 시간에 맞추어 정확하게 나타난 남자,  


그의 손에는 노란색 후리지아와

이름 모를 꽃들의 화사한 꽃다발이 들려 있다.  


“우아, 너무 예쁘다!”

그가 내미는 꽃다발을  받아 안으며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게 얼마 만에

받아보는 꽃다발인가!


더구나 말쑥한 젊은 남자에게서 말이다.  

꽃다발의 주인은 분명 나였지만,

이 사람은 우리 딸내미의 남자이다.  


몇 년 동안 토닥거리면서도 꾸준히

만나더니 정식으로 인사를 오고 싶다고 한다.  

주말에 초대를 하고 몇 가지 음식으로 엄마표 집밥을 준비했다.


아이들이 타지에  나가 있고

거의 혼자 지내다 보니 누군가를 위해

식탁을 준비한 지가 꽤 오래된 듯하다.  


막상 손님을 맞이하려니 무엇을 준비해야

될지 살짝 염려도 되었지만,  주부경력 수 십 년에 나름 자신 있고 시부모님께도 인정을 받았던 LA갈비구이로  메인 메뉴를 정했다.


드디어 오늘,

한아름 꽃다발과 함께  활짝 웃으며

찾아온 욱이, 나는 반갑게 안아 주며 맞이했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방문객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 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시인의 처럼 그의 과거와 현재,

그의 일생이 오는 방문객이라니  

실로 어마 어마한 일임에 틀림없다.


어느 시점부터일까 나는 우리 아이들이 만나는  

친구들이나 동료 등,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이 참 귀하게 느껴졌다.  


그들과 함께하는 순간들이 내 아이들

인생의 어떤 중요한 의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때론 가슴 아픈 만남으로 고통이 있기도 하겠지만 그로 인해 사람을 배우고 관계를  배울 것이다.


갈등을 겪으며 성장하고 조금씩 더

성숙해지면 그 모든 순간들이  결국 축복임을 알아갈 테니까. 이런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 곁에 있는 이들에게  잔잔한 애정을 갖고 있다.  


가끔 동료와 신경전으로 마음이

복잡한 딸내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들과 가까운 친구들의 안부도 물으며

그들과의 마음 연결을 살핀다.


행복은 좋은 사람들과 좋은 마음이 닿았을 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결코 쉽지 않은 이 사회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인 것이다.  


 친구도 너무 귀하고

동료도 이렇게 귀하기만 한데

하물며 한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라니...

우리 예쁜 딸내미와 그녀의 남자 욱이,


두 사람의 용기와 새로운 삶의 도전에

엄마로서, 또 먼저 살아 본 인생 선배로서 큰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마음이다.    


도착시간에 맞추어 맛있는 밥을 짓고,

하루 전에 재워 놓았던 갈비도 먹음직스럽게 구워 놓은 환영의 만찬 식탁이 준비되었다.


찬의 종류가 마음만큼 풍성하지는 못하지만

나름 정성을 담아 차린 식탁 앞에 앉으니 나 스스로 뿌듯하기까지 했다.


살림솜씨가 그리 능숙하지 못한 나로서는

누가 뭐래도 자족의 마음인 것이다.


함께 둘러앉은 식탁에서 나는 기도를 한다.


멋진 청년 욱이와,

내게 너무 소중한 우리 딸내미가

평범한 일상의 식탁에 둘러앉아서도

서로를 향해 깊은 감사를 배우기를,

그들의 만남이 한아름의 꽃다발보다 더 예쁘고 향기롭기를 축복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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