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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진기행 Jun 24. 2021

6.5인치 감옥

하루 동안 어떤 일이 있었나요?

당신은 지금 무얼 하고 있나요?

차가 얼마나 막히나요?

몇 시부터 비가 오나요?

어제는 누가 어떤 행복을 누렸나요?


매일 침대에서 일어나

다시 침대로 돌아갈 때까지

항상 눈은 액정에 머물고 있고

양쪽 엄지는 빠르게 묻고 답한다

습관적으로 하트를 누르고

경우에 따라서는 빛의 속도로 분노한다


액정이 무엇을 보여주든

깊게 공감하기보다는

공감하는 척에 익숙하고

상대의 이야기 역시

듣기보다는 주로 들어주는 척을 하며

기쁨 슬픔 분노 즐거움의 감정 중

적절한 것을 골라 액정에 드러내기 바쁘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잠시 현타가 오다가도

손가락만 까딱하면

더 재미있고 더 자극적인 것들이

무한대로 쏟아져 나오니

도저히 끊을 수가 없다

단언컨대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큰 쾌락을 한꺼번에 주는 물건은 없다

사람들이 빠르게 TV를 떠나는 이유기도 하다


우리는 어느새

기다리는 법을 잊어가고 있다

강남역 타워레코드에서

오지 않는 친구를 하염없이 기다리지 않고

궁금하면 9시까지 기다려 TV를 켜는 대신

바로 뉴스를 클릭한다

세상 속 이야기들을 다 읽고 듣고 이해하기 전에

손가락으로 죽 내려

댓글을 살핀 뒤 평가를 마친다

기다릴 수 없다 다른 것들이 너무 궁금하다


핑계 대며 늦는 친구 기다리는 맛이 있었다

약속 장소가 타워레코드면 들어가

새로 나온 CD를 들었고

지오다노면 느닷없는 쇼핑으로

의외의 득템을 하기도.

15분 가까이 되는 광고를 강제 시청하며

주말의 명화 기다리던 설렘을 기억한다

마지막 광고 때는 화장실에서도 뛰쳐나와

거실에 자리를 잡았었다


빠르고 가볍게 많은 걸 누릴 수 있는 요즘

참 묘하게도 종종 그날들을 추억한다

세상 불편하고 마냥 기다려야 했었지만

그때 그날들은 추억으로 기억되고


오늘 어제 일주일 전 한 달 전의 나날들은

이상하게도

참 아이러니하게도

30분 전 sns 피드처럼

10초 전에 넘겨버린 숏폼 영상처럼

알고리즘에 얽혀 들어온 정체불명의 이미지처럼


기억은 있지만

결코 추억은 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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