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 홍대 앞
택시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예전 같지 않은 한산한 거리
백발에 검게 그을린 얼굴
고단에 찌든 고령의 택시기사는
기약 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차한 택시 뒤에
외제차 한 대가 급정거를 한다
요령껏 방향을 틀어 앞서갈 수 있음에도
경적을 길게 요란히 울린다
물론 택시 정차구역은 아니었으나
저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을 때쯤
그 차는 신경질적으로 택시를 추월하며
택시기사에게 귀를 의심케 하는 욕설을 내뱉고는
쌩하니 앞서간다
얼핏 보아도 20대
많아도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아들뻘이다
나이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너는 안 늙냐?' '어르신을 공경해야지' 등의
맹목적이고 고리타분한 가르침을
개인적으로 그닥 좋아하지도 않는다
나이를 무기로 무작정 관용을 요구하는 것은
무례를 넘어 그냥 폭력일 뿐이다
그냥 다 떠나서
막말과 욕설을 쏟아내기 전에
눈 한 번 질끈 감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몇 초만 화를 억누르고 앞질러가면
분노는 3분도 채 못 가서
잊혀버리고 마는 놀라운 매직을 경험하게 될 텐데...
요즘 세상이 워낙 손가락 하나에 움직이다 보니
너무도 쉽고 빠르게 감정을 드러내는 문화가
우리 몸에 배어버렸나 보다
습관적 신경질 시비
우발적 살인 폭행
댓글
별점 테러
알고리즘이 이끄는 확증편향
조금만 더 생각해보고 살짝만 더 참아봤다면
아예 존재하지도 않거나
다른 결과를 만나게 됐을 일들이다
힘들지만 눈 한번 질끈 감아본다
노력이 쌓이면
소중한 하루하루는
그저 감정을 쏟아내는 막장드라마가 아닌,
찬찬히 감정을 들여다보는 걸작이 되어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