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미국서 텐트 접고 완전히 한국에 돌아온지는 어언 18년(욕 아닙니다^^;;) 입니다.
중가운데 커리어를 완전히 다른쪽으로 바꾸는 바람에 싱가폴, 브루나이 호텔서 1년정도 인턴쉽도하고, 엄마뻐꾸기 소리가 절로나오는 러시아에서 1년가까이 단체급식회사 일도했는거(이거는 나중에 썰 한번 풀겠습니다ㅋ) 빼고 여행이외에는 this god for saken bloody peninsular를 나가서 살기회가 안생겼지요ᆢ계속 노력을 안한게 아닌데도 말이죠ᆢ
미국서 철없을 시절 대학을 다니고 졸업전부터 무시무시한 경력의 미국&영국 영감님들의 도움으로 인턴쉽후 어렵지않게 직장을 잡아서 영주권 쉽게 얻을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오사마 빈 라딘 이라는 희대의 돌아이가 그렇게까지 거하게 사고칠줄 아무도(몇몇CIA. FBI요원들 빼고) 몰랐었죠ᆢ
ET 08:30 Sept 11th 2001 저는 LGA에서 일을하고 있었죠, 비행기 옆에서 기장이 시키는대로 열심히 해야 영주권을 받을수있는 외노자 답게 일하다가 갑자기 래디오서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고요, 비행기 한대가 WTC에 충돌했다고ᆢ그때 해병대 전투조종사 출신 기장이 했던 얘기가 지금도 기억나네요.
What kinda dumb ass hit the tower like this visibility??? must be another drunken pleasur fly boy.....
이러면서 둘이 ㅉㅉㅉㅉ 그러고 체크리스트를 둘척거리는데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2번째 비행기가 충돌했다는 소식이랑, 모든 비행은 전면적으로 임시 취소고, until further notice 있을때까지 stand by하라고 그러더군요, 그때 기장이
Oh!!! sh** It's a f***i** attack!!!! 이러더라고요.
정신없이 밖으로 나왔더니 남쪽에서 연기 두줄 올라오고 사람들 전부 서로 붙들고 울고ᆢ
그상황에서 처음든 생각은 f**k ......회사짤리고 쫒겨나겠다ᆢ였었죠ᆢ뭐ᆢ몇명이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리고는 티비로 우루루 무너지는걸 보면서 화가 나더라고요.... 그안에 사람들이 있다는걸 그제서야 인지한거죠......
암튼 거의 일주일동안 회사에서 잡아준 호텔서 감금아닌 감금생횔처럼 있다가 집에돌아오니 여러가지로 착찹하더군요.
앞으로 어떻게 될것인가? 계속 일하고 살아갈수있을까 등등 근데 암튼 회사서는 H1을 더 연장해줄테니 있겠냐고 하더라고요, 물론 최저임금으로 부려먹을수있으니 당장 짜르기는 아까웠는지 4년을 그상태로 버티다가 애매모호한 시점에 회사에서 핑크슬립이 나오고 INS서 스폰해줄 회사없으면 6개월뒤 나가라 편지 오고ᆢ뭐 빤한 얘기죠ᆢ엎어진데 덮친다고 회사 잘리기3개월전 아버지 갑자기 돌아가시고 이런일까지 생기니까 진짜 멘붕 그자체........지금도 아버지 입관이랑 삼호제 까지 하고왔다는데 전혀 기억이 없네요......
5개월간 그동안 냈던 실업수당 타먹고 인터뷰도 3~4건 했지만 영주권 해주겠다는 곳은 없고......인터뷰본 회사마다 제 경력을 보고는 당연히 그린카드내지는 시민권자 인줄알고, 어떤회사는 그당시 제 CV에 military experience를 써넣었더니 US 아루미 제대자 인줄알고 지 군대 얘기 엄청 떠들어댄 회사 담당자도 있더랬죠ᆢ시간은 계속 가고ᆢ그때 뜻하지 않게 한국신문(미국서 발행된거 아닌 한국서 나온게!!) 몇주지난게 우연치 않게 제가 받은 소포속에서 나왔는지 그곳에 Le Cordon Bleu 얘기가 있었습니다.
워낙에 음식하는걸 즐기던 저로서는 뭔가에 홀린것처럼 그 기사를 읽고 다음날 샌프란 시내의 CCA 라는 동네서 젤 유명한 요리학교에 가서 커리큘럼, 학비등등을 알아보러 갔다와서 집에돌아온뒤 그곳시간에 맞춰서 LCB로 전화를 했지요, 아무생각없이 학비등등을 확인하고 그다음달로 서울에 다시들어왔습니다. 물론 학교끝낸후 나갈생각에ㅋㅋ 참 나이브했죠ᆢ
그렇게 2년 가까이 학교를다니고 퀴진디플로마를 따고 브루나이의 호텔서 인터쉽을하다가 싱가폴 호텔서 잠깐 일도하고 1년간 동남아서 헤메고 다니다 서울에 비자때문에 잠깐들어왔지만, 비자문제가 꼬이고, 졸업한 학교에서 날 가르쳤던 선생들의 꼬심에 넘어가 같이일을 하게되었죠, 프랑스인 쉐프들 4인이랑 같이요, 그중 2은 전부 와이프가 한국인들인 관계로 한국시스템과 한국문화에 저보다 더 호의적인 사람들이라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때때로는 저보다 더 한국적인ㅋㅋ
그뒤로 한국의 외국인 커뮤니티의 멤버들과 교류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계기가 계속 있으면서, 한국전쟁에 참가한 영국군인들의 관한책을 2권, 한국최초의 레스토랑 평가 및 가이드를 쓴 영국 저널리스트, 한식을 영어권에 알리는데 최고로 유명한 미국 남부출신의 한국음식 블로거와 아주가까운 친구가 되면서 파트너로 몇개의 레스토랑 컨설팅도 같이 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재미있는건 그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다른 경로로 알게된 주한외국인 친구들이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는게 웃기더군요ㅋ
제 사촌형보다 더 친하고 서로 끈끈하게 도와주는 주한 영국대사관 상무관출신의 웨일즈 형도 이들과 다알고, 제 팝업 레스토랑서 만났던 한국일간지에 자신의 한글칼럼을 쓰는 네덜란드출신의 호주인 친구도 서로서로 다알고 이런 묘한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서울시내 아는 사람만 아는 지하 비밀 술창고에 들락날락하는 일이 잦아졌지요, 멤버쉽으로 운영하는 이 술창고는 주한영국대사관 지하에 위치하는데 영국시민권자, 영주권자등 기존멤버의 추천으로 입장을 할수있는 곳이죠. 한국서 수입안하는 알콜 위주로 잔술을 판매하는 재미있는 곳입니다, 28년전 저 군생활시절 한참 공사중이라 제대 바로 직전 오프닝에 중대원 전원 초대받아서 갔던때와는 완전히 다른 현재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국왕립해군 함장 Captain William Robert Broughton
바 이름이 한반도를 처음 항해했던 영국해군함장의 이름을 따서 만든곳입니다.
영국인들이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등 영연방 회원들과 기존 멤버들과 연이있는미국인, 한국인들도 명예멤버들이 있습니다.
외국생활이 그리워질때 마다 가서 맥주,싱글몰트, 진등을 잔술로 기울이며 미국에서 가깝게 지냈던 친구들의 생각도 하면서 실업는 농담, 새로운 음식점 정보 등등 저같은 사람에게는 서울의 오아시스 같은곳이죠.
스핏파이어 엠버에일......How could it be more Brit than this......
한국서 저보다 더 고등교육을받은 외국인들이 득시글 거리는곳이라 술마시다 깜짝 놀라서 뿜을때가 종종 있습니다.
한번은 BCCK고위직 영국친구(서울대 국제관계학석사)가 불고기에 관한얘기를 하면서 불고기는 북한지방에서 내려온 음식이라 맵지않다, 그래서 서울의 오래된 냉면집들에서 하면서 더 유명해지고 대중적인 음식이 된거다 라고, 저도 모르던 얘기를해서 저는 그거 아닐걸? 조선때 궁중요리서 온거 아냐? 그랬다가 여기저기 뒤지면서 헉ᆢ했네요ㅋ 현대불고기의 역사는 생각보다 상당히 짧은 일제시대로 봐야한다고 하더군요.
이친구만 아니라 미국주립대서 한국사를 공부하다가 반해서 한국까지 흘러온 친구는 경복궁 옆의 재동, 팔판동의 유래에 대해서, 피마골의 의미 등등 영어로 조선사를 읽고 그 정확한 느낌과 의미가 더 정확한 한국어와 한문을배우고 싶어서 한국에 눌러앉은 경우도 있고, 서강대 국제관계학 석사를 받은 하와이 원주민출신 미육군대령 제대한 친구는 소름끼치는 한국말 실력으로 한국군 장교들에게 한국어로 강의하는 엄청난 인간들 까지, 한국에 주저 앉은지 오래되니 생각지 못했던 기묘한 커뮤니티의 한부분에 멤버로있는게 우스우면서 기분이 묘~합니다.
몇년전 고인이된 한옥지킴이로 유명한 피터 바톨로뮤가 했던말이 생각나네요.
미국인 공무원에게 영어로 한참설명하다가 영어단어가 생각이 안나는지 ******를 영어로 뭐라고 그러지?? 라고 한국말로 빠르게 물어봐서 ***** *****아닌가? 그랬더니 ㅍㅎㅎㅎ니가 한국인야? 내가 한국인야? 미치겠네ㅋㅋㅋ(한국말로) 이러더군요ㅋㅋ
미팅이 끝나고 제가 진짜 생각이 안난거야? 아님 일부러 그런거야? 그랬더니 1973년부터 한국에 살았지, 너같은 영어할수있는 친구들 아니면 영어쓸일도 없어~ 내 따뜻한 온돌 아랫목 보료(!!)에 누워서 70넘어 살다보면 주변에 너무 많은 외국인들(???)한테 둘러싸여있으면 때때로 불편해.....
이런 사람들과 가끔씩 막걸리잔을(꼭 비오는날 회기동 파전집 가서 막걸리 한잔을 시작으로 두꺼비2~3마리 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서양인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ㅡㅡ;;) 같이 비우고 있으면 내가 이상한건지 아니면 왜 그리 나가고 싶어하는건지에 관해 심각하게 자문할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결국 그것에 대한 대답은 거기에서 이곳이 그리워질까? 그건 분명히 이곳의 시스템과 교육환경은 아닐것이고, 이 매력적인 사람들과 내주변 사람들만이 그리운 거겠지 라고 머릿속에서 답을합니다.
아마도 이번 주말에도 아이 학원과 학교에서 요구하는 액티비티 쫒아다니면서 왜 더 일찍 갈걸 결정하지 않았지? 도데체 뭐가 날 그동안 붙잡은걸까? 라고 생각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