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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 달빛 Jan 24. 2021

나, 그리고 우리의 코로나

문학아! 너라면? ②  - 알베르 카뮈 <페스트>

어느 순간부터 일상에서 느끼는 감각의 일부가 무감각해진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곧 만나게 될 약속을 하고 웃으면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순간이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한다. 잊고 있었던 감각은 한 통의 문자가 일깨워준다. 순간순간 잊고 있었던 바이러스의 공포는 내가 사는 지역으로, 내가 사는 동네로, 점점 가까운 사람에게 다가오고 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평범한 도시로 묘사되는 '오랑'을 무대로 한다. 오랑에서 발생한 페스트가 현재 전 세계로 번진 '코로나 19'로 옮겨져 왔을 뿐 소설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이야기는 현재 우리 세계에 그대로 적용된다. 오랑에서 발생한 페스트는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치지만 점차 도시 전체를 잠식해 버린다. 소설에서는 시민들을 '산다기보다는 차라리 떠다니면서 고통의 대지 속에 뿌리박지 않고는 힘을 얻을 수 없는, 방황하는 유령처럼 살아간다'라고 묘사한다.


지식인 타루의 제안으로 '자원 보건대'가 결성된다. 의사 리외, 하급 공무원인 그랑이 함께한다. 자원 보건대에서 필요로 하는 합산과 통계일을 담당하는 그랑을 카뮈는 영웅이라고 부를 만한 모델로 제시한다.


이 영웅, 보잘것없고 눈에 띄지도 않으며, 약간의 선량한 마음과 언뜻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운 이상밖에 가진 것이 없는 이 영웅을 제시하고자 한다.



리외는 페스트와 싸우는 것은 관념이 아니라 '성실성'의 문제이며 그 성실성은 곧 '내 직분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실성은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함께 나누고 공감하는 태도를 포함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페스트라는 불행 앞에 함께 나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유독 코타르라는 인물은 페스트 속에서 쾌활한 모습이다. 그는 타인의 고통과 죽음을 외면하고 오로지 '개인'으로만 존재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저지른 죄로 자살시도를 한 그가 페스트로 그 죄를 덮을 기회를 만끽한다. 더 나아가 타인의 고통과 죽음 앞에서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페스트가 끝나자 숨어있던 광기를 표출한다. 타루가 코타르에 대해 기록한 것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시민들은 자기들을 친밀하게 만들어주는 따뜻함을 절실히 필요로 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불신 때문에 그 따뜻함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멀어지고 있다. 이웃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이웃 사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페스트를 옮길 수 있고 방심한 틈을 타 감염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코타르처럼, 사람을 사귀고 싶어 하면서도 그 사람이 밀고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지내온 사람들은 그 감정을 이해한다.



철저히 '개인'으로 남은 코타르와 반대로 처음에는 개인의 감정과 행복을 중요시했지만 이후에 '혼자서만 행복한 것은 수치스러운 것'으로 생각의 변화를 갖는 외신기자 랑베르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리고 그는 개인의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을 잠시 접고 보건대에 남아 그들과 함께한다.


카뮈는 개인이 품고 있는 일상의 행복과 희망을 존중했다. 그리고 소설 속의 인물들은 각자가 품고 있는 작은 행복과 희망을 서로 공감해준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코로나가 끝나면 그동안 일상의 일부가 되어 소중함을 모르고 있었던 것의 고마움을 맘껏 느끼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지금도 우리는 그 작은 희망들을 품고 하루를 살고 있다. 이방인인 외신기자 랑베르가 자신의 아내를 보는 그날을 위해, 그리고 하급 공무원인 그랑의 멋진 소설을 완성하는 그날을 위해 각자의 희망을 품고 하루하루를 사는 것처럼.



알베르 카뮈는 나, 그리고 우리의 연대를 말하고 있다.


소설 속의 페스트는 종식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잠자고 있는 페스트가 언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나 평화로운 일상을 뒤흔들지 리외는 알고 있다.


도시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을 실제로 들으며, 리외는 그러한 환희가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기쁨에 젖어 있는 군중은 모르고 있지만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되지 않으며, 수십 년 동안 가구나 내복에 잠복해 있고, 지하실, 트렁크, 손수건, 낡은 서류 속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또한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페스트가 쥐들을 깨우고, 그 쥐들을 어느 행복한 도시로 보내 죽게 할 날이 오리라는 사실도 그는 알고 있었다.



코로나 19로 전 세계는 팬데믹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어둠 속의 긴 터널을 우리는 걷고 있다. 처음에는 '개인'의 문제였지만 지금은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그저 자신과는 무관한 일로 외면하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나'라는 개인에서 '우리'라는 연대를 통해 고통을 공감하고 함께 나아가는 것. 그리고 각자가 품고 있는 작은 감정과 행복할 권리를 외면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그러한 권리를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희망하고 그 희망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우리'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 알베르 카뮈는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문학아! 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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