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생은 이름을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밝을 명’에 ‘은혜 혜’라는 이름 때문일까? 나는 한 번 인연을 맺으면 그것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 정말 으리으리하게 노력하며 살고 있다. 하나를 받으면 최소 둘 이상을 돌려주기 위해 애썼고 도움을 준 지인들에게도 도움받은 것 이상으로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회사 또한 그러한 은혜의 대상 중 하나다.
2003년 9월, 나는 아침 일찍 꽃단장하고 면접을 보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버스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가을 햇살은 유난히도 따뜻했다. 나는 회사소개와 연혁이 적혀 있는 종이를 버스 안에서도 몇 번씩이나 꺼내 보았다. 그만큼 이 회사에 입사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다.
부푼 가슴을 안고 면접장에 도착한 나는 긴장한 상태로 차례를 기다렸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잠시 후, “이명혜님, 들어오세요.”라는 말과 함께 면접이 시작되었다.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마친 뒤, 본격적으로 면접관들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면접관은 내게 “당사는 토요일에도 근무를 합니다. 토요일도 출근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물었고,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저는 일요일도 출근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어떻게 그런 명답이 튀어나왔을까 싶다. 나는 정말 이 한 마디로 입사에 성공했다. 그렇게 입사에 성공한 나는 ‘일요일에도 출근한다는 애’로 소문이 나버렸고, 결국 주말 근무든 늦은 야근이든 찍소리도 못하고 조용히 회사를 다녀야만 했다.
입사한 뒤, 나는 면접관이었던 팀장님께 “팀장님? 저는 어떻게 뽑힌 거예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팀장님은 “네 자신감이 마음에 들었지.”라고 답해주셨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주신 이야기로 나는 내 입사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원래 회사에서는 3.0 이상의 학점을 가진 사람들만 입사 기준을 통과했다고 한다. 당시 내 학점은 3.0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인사팀에서는 학점이 부족했던 나를 불합격시키려고 했는데 직접 내 면접을 보았던 팀장님이 “이 친구의 가능성을 보자. 학점이 모든 걸 말해주는 건 아니니까.” 하며 적극 추천해주신 덕분에 나의 입사가 가능했다는 이야기였다.
뒷이야기를 알게 되자 나는 부족한 나를 선택해준 팀장님께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또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준 회사에도 반드시 의리를 지키고자 다짐했다.
의리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나는 이 의리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회사와 직원 사이에서도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갑’질을 하는 회사의 횡포, 대표자의 무례한 행동으로 늘 이슈가 된다. 거기에 세상의 모든 ‘을’은 분노하고 나 역시 그러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분노를 감추기 힘들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 모든 회사의 모습은 아니다. 적어도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그렇다. 때때로 상사의 무례한 언행에 놀랄 때가 있고, 부당함에 화가 날 때가 있고, 회사가 좀 더 복지에 신경 써주기를 바랄 때가 있다. 다른 회사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고 싶고, 좀 더 승진이 잘 되고 좀 더 내 시간을 확보해주기를 바랄 때가 있다. 우리는 그렇게 회사에 대해 수많은 것들을 바라고 요구한다.
그것이 틀렸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회사에게 받고자 하는 만큼 회사도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다. 회사는 우리가 ‘열심히’를 넘어 일을 ‘잘’하기를 원한다. 회사에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여 개인의 꿈과 회사의 비전이 함께 성취되길 원한다. 그래서 개인이 행복을 느끼면서 동시에 회사의 성장에도 기여하기를 원한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바탕을 만들어주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전체적인 것을 고려하여 개선해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방향성이 다른 회사라면 퇴사를 고려해라. 하지만 적어도 내가 노력하는 만큼, 내가 지키고 싶은 의리를 실행하는 만큼 회사는 나에 대한 배신 대신 그만큼의 대가를 가져다줄 거라 확신한다.
의리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일머리는 요만큼도 없던, 입사 기준에도 못 미쳤던 나를 뽑아 돈을 주며 일을 가르치고 다듬어 지금의 커리어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준 것이 회사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매일 회사가 가져다주는 부당함에 불평불만하고 있다면 한 번쯤 뒤집어 생각해보자. 나는 회사에 얼마만큼의 기여를 하고 있는가? 내가 받는 월급만큼, 혹은 그 이상의 기대를 채우고 있는가? 부정적 에너지는 나를 포함 내 주변을 모두 부정적인 에너지로 몰아간다. 언젠가 ‘시크릿’이라는 책에서 본 것처럼, 나의 긍정성은 주변의 모든 긍정성을 끌어들인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어떤 저자가 했던 말처럼 지금 당신이 힘들다면, 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당신을 응원한다. 퇴사하고 싶지 않지만 지치고 힘들다면, 회사의 부당함에 속이 상하다면 떠올려보자. 처음 이 회사를 선택했을 때의 이유, 합격했던 그 순간의 기분, 합격의 이유 등을…. 어쩌면 그 감정들은 회사에 대한 애정의 불꽃을 다시 피워줄, 잠시 잊고 있던 씨앗이 되어줄 수도 있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당신 가슴의 열정을 상기시켜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