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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 Nov 19. 2022

1. 블루(Blue)

1. 불멸을 위한 광부의 노래

하늘이 청명한 가을이다. 푸른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다. 이 가을 하늘의 고창한 색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없다. 파랑은 고즈넉하다. 끝도 없는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경외감을 느낀다. 인간이 희구하는 미학의 결정체는 불멸(不滅)이라 하지 않았나. 경계선을 알 수 없는 광활한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영원을 느낀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본 적 있는가? 푸르다 못해 위를 바라볼수록 한낮인데도 시커멓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대기가 희박해서다. 하늘이 푸른 이유의 이면에는 대기가 숨어있다. 결국, 지구를 감싸고 있는 대기가 없다면, 하늘도 푸르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대기는 해로운 우주 광선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대기가 품은 수증기가 빛의 산란의 이유가 된다.  그 결과로 우리가 보는 하늘은 파랗다.  항상 파랗게 보이는 대기 속에 하늘이 실제로 올라서면 파랑이라는 색감은 자취를 감춘다. 그 창연한 색감을 느껴보려 발버둥을 치지만 결국 그럴수록 파랑은 저만큼 멀어진다. 인간은 광활하고 불멸인 파랑을 갈망하지만, 하늘의 파랑은 실존하지 않는다. 그저 현상일 뿐이다.  가까이 다가서면 푸른기 마저 사라지는 파랑. 파랑은 불멸의 상징임과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허무를 나타내니 두 얼굴을 가진 셈이다.


자연 속 파랑은 불멸인  그 속내를 감추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 속에서 파랑은 강력하다. 1937년 듀폰은 세계 최초로 프탈로시아닌 블루(Copper Phthalocyanine Blue)라는 유기 안료의 상업화에 성공했다. 이후, 내광성이 안 좋은 염료 수요를 빠르게 잠식했다. 프탈로시아닌 블루는 무수프탈산과 요소, 그리고 염화동(Cuprous Chloride)을 원료로 합성된다. 분자구조를 보면 무수프탈산 네 개를 중심의 금속 구리가 착물의 형태로 잡고 있는 구조다. 정방형이고 대칭 구조인 안정한 화학제품은 생긴 것처럼 안정하다. 그래서 쉽게 이 구조는 깨지지 않는다. 불멸의 화학적 원리다.



혹시, 오래된 인쇄물을 본 적이 있는가? 특히 칼라 인쇄된 출력물을 빛에 오래 놔둬 본 적이 있는가? 이상하리 만치 인쇄물들은 색이 바래 푸른빛을 띤다. 사실 푸른빛을 띠게 되는 것은 푸른색 이외의 색이 빛에 노출되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탈색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인쇄는 색의 삼원색과 흑색으로 인쇄된다. 파랑, 빨강, 노랑, 소위 Cyan, Magenta, Yellow, Black. CMYK란 약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네 가지 잉크는 각각의 안료를 이용해 제조된다. 그중에서도 파란색 안료는 가장 내광성이 좋다. 빨강과 노랑도 내광성이 뛰어난 안료들이 많지만 대량 인쇄에 적합할 만큼 경제성이 나오는 안료가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빨강과 노랑은 내광성이 떨어져도 할 수 없이 경제적인 안료를 채용한다. 색이 바래는 직접적인 이유다. 인쇄물이 외부에 빛에 장시간 노출되면 빨강과 노랑의 경우 안료의 구조가 빛에 깨져 발색단을 상실하면 탈색된다. 색이 없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가장 오래 남는 파랑만 남게 된다. 파랑은 그렇게 인쇄의 세계에서도 '불멸(不滅)'의 상징이다.


불멸의 블루는 그 존재조차 알기 어려운 한 무리의 남미 광부들의 숭고한 노고로부터 처절한 탄생의 몸짓을 시작한다. 광부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프탈로시아닌 블루 안료의 중심을 단단히 옳아 매주는 중심에는 구리가 있다. 구리는 전 세계 생산의 약 40%는 칠레에서 생산된다. 혁명가 체 게바라는 남미를 여행하던 중 칠레의 한 구리 광산의 끔찍한 노동 환경을 보고 혁명가의 꿈을 품었다고 한다. 바로 추키카마타 광산이다.


현대사에서 풍부한 천연자원은 침략의 원인이 되었다. 페루 포토시 광산의 은이 그러했듯이 스페인은 철저히 식민지의 자원을 수탈했다. 결과로 본국의 유럽 국가들은 부유해졌지만, 식민지인 남미나 아시아 국가들은 빈곤해졌다. 세계 최대의 구리 광산을 보유한 칠레는 부국의 꿈을 푸른 구리 광석에 실었다. 일찌기 구리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던 칠레는 구리 광산만큼은 외국의 제국주의 자본으로부터 잘 보호하길 갈망했다. 한때 구리 광산의 자국 소유를 달성했지만, 그 '푸른'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1973년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는 오랜 칠레인들의 꿈인 구리 광산 국유화의 길을 버리고, 외국 자본에게 광산 소유권을 넘겨준다. 부당한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근본 없는 쿠데타 정권이 서방의 자본에게 이권을 넘겨주는 대가로 자신을 비호해 주길 바라는 가장 저열한 짓이다. 안타깝게도 현대사 속 개발 도상국 어디에도 흔하게 발생했던 일이다. 칠레도 그랬다. 한때 자국의 국영기업이 보유했던 구리 광산은 그 소유권을 속속들이 서방의 대기업으로 넘겼다. 그럴수록 칠레의 구리 광산 광부들은 더 깊은 갱도 속으로 들어갔다.

칠레의 구리 광산 @REUTERS / LVAN ALVARADO

2010년 8월 칠레에서 대지진이 발생했고, 한때 비철금속 구리를 다루는 런던의 LME  시장의 구리 가격은 폭등했다. 한국에 살고 있던 나는 속절없는 가격 폭등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야 했다. 주문을 취소하는 고객이 늘어갔다. 그런데 그 시각 대지진은 칠레의 광부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칠레 북부 코피아포 광산에서 붕괴 사고가 났다. 33명의 광부들은 광산이 붕괴된 이후 69일 만에 구출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불멸의 블루의 재료가 되는지도 모르면서 서방 기업의 합법적인 노예로 일하던 광부들이 만든 기적이다. 그들은 사지에서 서로에게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서로를 응원하며 도왔다는 후문이다. 세상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생명을 담보로 구리를 채굴하던 광부들. 어쩌면 그들은 인간이 스스로 불멸임을 증명해냈던 것은 아닐까?


칠레에서 생산된 구리는 이제 인도로 넘어간다. 인도 북부 구자라트 주는 인도 화학 산업의 메카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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