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역마살 Aug 16. 2022

막존지해(莫存知解)

부모님 건강

부모님이 건강하시다는 것은 축복이다. 다행히 부모님은 두 분 다 아주 건강하시다. 오히려 내 건강 상태보다도 좋으시다는 것을 가끔 느낀다. 아버지는 여전히 내 주량 보다 훨씬 더 드시고도 멀쩡하시다. 때로 내가 술에 먼저 취할 때면 젊은 애가 그게 뭐냐고 핀잔주며 노익장을 과시하신다. 모아 놓은 재산은 별로 없어서 내게 물려주실 것도 없지만, 대신 아직도 경제 활동을 하신다.  어머니는 관절이 약해지신 것 외에는 별달리 아프신 곳이 없다. 두 분 모두 몇 해 전 건강 검진에서 나온 것이 별로 없다. 그에 비해 나는 해가 갈수록 건강 검진에서 예의 '추적 관찰'이 늘어간다.

부모님의 정정한 건강 상태는 마음가짐에서 오는 것 같다. 큰 욕심 없이 오늘 하루를 즐기고, 또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하신다. 카르페 디엠의 실천이며, 아모르파티의 증인이시다. 명절 때나 전화 통화를 할 때, 레퍼토리처럼 말씀하시는 것은 '세상사 너무 애쓰지 마라, 스트레스 안 받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라는 가르침을 잊지 않으신다. 건강한 마음가짐. 매우 중요한 가르침이다. 모든 병은 마음에서 오는 것 아닌가? 린다 그래튼 교수의 말을 빌자면, 우리 부모님은 활력 자산과 변형 자산을 가지고 계신 것이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또 계속될 거다. 린다 그래튼 교수는 저서 '100세 인생'에서 장수하는 것이 '온딘의 저주'가 되지 않으려면 대비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노후라는 개념이 희박했을 때는 경제적인 부분만 해결이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삶은 교육과 취업 그리고 은퇴의 3단계로 되어 있었고, 대부분의 사회보장제도는 은퇴 후 20년 전후의 삶을 보장하는 데 포커스를 맞췄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그런 삶은 이제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삶은 다단계로 기획되고 준비되어야 한다. 부부의 힘의 필요하다. 남편이 한 직업을 끝내고 다음 직업을 준비하느라 안식년을 가지는 사이 아내가 생계를 책임지고, 다시 아내가 안식년을 가지면 남편이 직업 전선에 나서는 그런 식의 공조를 린다 그래튼 교수는 설명했다. 긍정적인 정서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관계와 건강을 유지하는 활력 자산과, 시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는 생산자산도 필요하다. 긍정적은 태도와 유연한 사고에서 기인한 변형 자산도 중요하다 하였다.


언제고 늦은 밤 대학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작년에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셨고, 지금은 혼자 계시는 어머님마저 건강이 안 좋아져서 요양원에 모셨는데, 갑자기 졸도하셔서 집 근처 병원에 입원시켰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두 시간 거리의 본가에서 편찮으신 어머님 혼자 계시는 것보다 집 근처 요양원이나 병원에 모시니 마음은 한결 편하다는 친구의 이야기. 나도 그 이야기에 안심이 되었다. 더불어 부럽기까지 하였다.  


사실 친구나 나나 이제 쉰이 되었다. 직장 생활 속에서 50대 나이 든 부장들의 신세는 오죽하면 '젖은 낙엽'이라고 불렀을까? 젊었을 때의 총기는 사라지고, 어느새 조직에서 쓸모없는 '잉여'만 되지 않아도 언감생심이다. 내가 친구를 부러워하는 포인트는 부모님이 먼저 돌아가시고 지금 편찮아서가 아니다. 친구는 그래도 좋은 직장 현직에 있을 때 부모님을 건사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는 점이다.  부모가 편찮으실 때 아무것도 도와드릴 수 없는 실직자 상태가 된다면, 발만 동동 구를뿐이지, 얼마나 비참한 생각이 들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리라.


건강한 마음과 체력은 가장 기본이 되는 노후 대비임에 틀림없다. 최대한 건강하게 살다가 병으로 앓는 시간을 최대로 줄이고, 어느 날 갑자기 자다가 죽는 것이 최고의 삶 아닌가? 그런데, 그것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 병 앞에 효자 없다고, 아무리 가족이고 식구고 해도, 자식들에게 짐이 된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뜬금없이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응... 저기.. 내가 있잖아, 몸이 아프고 정신이 없으면 연명 치료하지 말라는 데 동의했다. 알고 있거라".

오늘 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미리 걱정하는 내 성격은 가족의 내력이란 것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