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에서 만드는 한식 이야기

우리 집 식혜와 파김치

by 하늘나라누리네


곰삭아서 알싸하며 톡톡 튀는 맛은 시원한 청량감을 준다. ‘이거 먹으면 밥 못 먹지 싶은데...’ 하면서도 불그스름한 국물에 가늘고 길게 썬 무와 당근, 그 위로 굵게 빻은 고소한 땅콩을 고명으로 올린 식혜를 보고 있노라면 뒷일은 제쳐두고라도 일단 먹고 봐야 했다.
사실 뒷일ㅡ배가 불러서 저녁밥을 조금 먹는 일ㅡ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오랜만에 고향 내려온 막내딸 먹으라고 엄마는 거뭇거뭇 검버섯 난 쪼그라진 손으로, 반쯤 굽어진 허리를 애써 들어 올리시며 또 한상 그득 차려 두셨을 테니 ㅡ엄마 고생시키는 것 같아 많이 미안하고 슬퍼지는 대목이다. 그래도 난 엄마밥상이 좋은 걸 어떡해.

“지혜가 학교 졸업하면 가자.” 하시며 엄마와의 제주도 여행을 미루셨던 울 아빠. 큰 아빠가 한국전쟁 때 전사하신 후 서울 계시던 울 아빠는 산골짜기 고향마을로 소환되셨다. 그 후 아빠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며 농사를 지으셔야만 했다. 농사 지을 체력이 아니셨던지 초기 정착 때는 우리 마을로 택시가 자주 드나들었다는 엄마의 말씀. 아빠를 급히 병원으로 데리고 가는 택시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다. 가끔씩 소화가 잘 안된다시며 꺼~~~ 억 트림을 길게 하시고 염소똥 보다 작고 동그란 한약 냄새나는 약을 드시는 것 빼고는 건강해 보이셨기 때문이다. 아빠는 육중한 경운기를 일주일에 하루를 제외하고 날마다 몰고 다니셨고 고추밭이며 마늘밭이고 김매고 약치시고 뙤약볕 아래 검게 탄 얼굴이 더 검어지셨지만, 무거운 쌀가마니를 번쩍 들어 올리실 때 그 힘은 검어진 얼굴만큼이나 더 강해지신 것 같았으니까. 우리 아빠는 유년시절 나의 눈에 늘 천하장사이셨다. 이런 아빠께도 약점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소화불량! 이러한 점 때문에 엄마는 더욱더 식혜를 자주 상위에 올리셨는지도 모르겠다. 그 손 많이 가는 작업을 엄마는 여든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까지 끈질기게 이어오고 계시다. 식혜를 즐겨 드시던 아빠는 땅에서의 소풍이 끝나 하늘로 돌아가셨다. 제주도 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로 말이다.

하지만 식혜를 사랑하는 사위들은 아빠를 대신해 남아있다. 엄마표 식혜는 사위들의 최애 음식이 되었다 식혜의 달 큰 알싸하고 톡 쏘는 맛에 반해 버린 것이다. 처갓집에 와서 안 먹으면 섭섭한 음식이 되었다. 고소한 땅콩과 아삭하고 오득 오득 씹히는 당근과 무의 조화로움이 입안에서 향연을 벌이는데 춤추지 않을 이가 있으랴! 달콤한 엿기름과 매콤한 고춧가루 국물에 시큼한 생강이 우리의 밥알과 어우러져 코끝을 자극하고 입맛을 끌어당기는데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으랴! 서로 다르게 살아왔던 장모와 사위가 음식 하나로 하나가 되는 감격적인 순간이다.


얼마 전 나는 파김치를 담았다. 어찌 된 일인지 남편이 나에게 마트에 파가 싱싱하다며 한번 담아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우리 남편은 어머님을 닮아 미각이 굉장히 뛰어나서 내가 만든 웬만한 음식은 맛있다 평해주지 않는데, 나에게서 파김치를 원했던 것이다. 타국에 살면서 김치 생각이 많이 나긴 했나 보다.
인터넷 채널을 통해 파김치 담그는 법을 확인했다. 다 담고 나서 맛을 보는 순간
내 두 눈이 휘둥그레진 이유는 이 셋 중에 뭘까?
1. 맛이 너무 없어서
2. 너무 짜거나 싱거워서
3. 엄마가 만들어 주시던 그 옛날 파김치 맛이 생각나서
맞다. 답은 3번이다.
먹는 내내 이상하고 오묘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파김치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를 한국의 어느 시골마을 허름한 집 마루에다 앉혀 놓았다.
‘어머머! 엄마가 만들어 주신 파김치랑 맛이 비슷하잖아!’
내 머리가 기억한 걸 내 입맛이 만들어 낸 건지, 머리가 잊고 있었던 걸 입맛이 이루어 낸 성과인지는 누가 가르쳐줄 수 있을까? 결과는 대만족이다. 파김치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대며, 어느덧 나는 우리 엄마가 차려주신 밥상 앞에 앉아 있다.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내가 먹은 음식이 내 몸이다.’ 정말로 어린 시절 먹은 음식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나 보다.
나는 한국에 있든 케냐에 있든 한국사람이다. 장모님이 만들어 주신 식혜 맛에 푹 빠진 사위들의 처제이며, 김치가 없으면 밥 한 술 뜨기 힘든 남자의 아내이다.
책이 우리 각각의 독서를 통해 다시 태어나듯이, 하나의 요리법도 우리 각각의 경험과 입맛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 내가 태어나 우리 집에서 먹어 온 한:식[韓食]은 여기 케냐 땅에서 나온 파로도 한국식 파김치로 다시 태어났다.





책은 각각의 독서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 보르헤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