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이야기

오래되어 더욱 그리운 우리 엄마의 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엉뚱한 이야기

by 하늘나라누리네

벌써 15년 정도 된 케케묵은 이야기이다.
이제 마흔 살 정도 된 나에게 15년 전 이야기라면 아주 오래전 이야기라 해도 되겠지?

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도 무지 엉뚱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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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야기 첫 번째! ㅡ반갑다며 멍멍!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살다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두고 부모님 계신 시골집에 내려갔다.
버스에서 내려 우리 집까지 가려면 논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아침 물안개가 멋진 연못을 지나야 한다. 그러면 비로소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이 보이는 그런 시골마을이 얼굴을 내민다. 동서남북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감추어진 마을이다. 버스가 다니는 큰길에서는 이런 마을이 저 길 끝에 들어서 있는지 상상조차 못 할 거다. 그렇게 그날도 나는 늦은 오후, 버스에서 내려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정든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10분 정도 후면 그리운 엄마와 아빠를 뵐 수 있단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가을이 내려앉은 산과 들에 취해 내 두 눈이 발걸음을 붙든다. 느린 걸음이라도 걷다 보면 어느덧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길 입구다. 엄마가 시간에 맞춰 나와 계시다. "엄마 나왔어? 금방 갈 건데..." 그저 반가운 마음에 하는 말이다. 엄마와 함께 들어가는 골목 길이 즐겁다. 우리 집 앞에 있는 집까지 왔을 때 전에 없던 건물이 눈에 띄었다. 커다란 철골 구조물만 덩그러니 있어 엄마께 여쭈었다.
"엄마, 여기 뭐 짓는데?"
"여기 개 짖는다."
어? 나는 의아했다. 개 집을 이렇게 크게 짓는다고?
놀라 다시 물었다.
"뭐? 개 짓는다고?"
"그래. 저 앞에 강아지 짖고 있제?"
앞을 보니 우리 집 강아지가 목줄에 묶인 채 꼬리를 연신 흔들면서 짖고 있었다.
멍멍 어서 와. 멍멍 오랜만이지?
반갑다며 멍멍멍!

+난 이 대화가 너무나 재미있어 지금까지도 떠올리면 큭큭 웃는다. 아니 개가 짖는 걸 누가 모를까? 하지만 우리 엄마는 막내딸 궁금해하니 강아지가 짖는 것까지 알려주시는 친절한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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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야기 두 번째! ㅡ귤을 부탁해.


늘 조금씩, 농사일을 많이 한 날이면 더 큰 무게로 아파 오던 아빠의 허리가 심상치 않다. 며칠 쉬어도 아프고 파스를 붙여도 낫질 않는다. 검사를 받기 위해 도시에 있는 대학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그 소식을 듣고 아빠가 계신 병원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왼쪽 끝에서 두 번째 정도로 기억한다. 아빠가 침대에 누워 계시다가 내가 온 걸 보시고는 일어나셨다. 아빠 곁에 계시던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지혜야, 귤 있다. 귤 먹어라." 하셨다. 내가 귤을 무척 좋아한다는 걸 엄마 아빠는 익히 잘 아신다. 고향 집에 내려가면 집에 있는 귤은 내가 거의 다 먹었으니까. 아빠는 아빠 드실 귤 안 드시고 까만 봉지에 모아 두셨다가 내가 가면 귤 봉지를 풀어 내게 돌돌 굴려 주실 정도였으니까. 아빠가 아파 누워 계신데 귤부터 먹기 죄송스러워 아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아빠는 팔에 간호사가 둘러 준 끈에 영어가 적혀 있는데 뭐라고 적혀있는지 내게 여쭤 보셨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으니 아빠는 허리에 관한 말이 없냐 하셨다. 아무리 봐도 없어 "없는데요. 없어요."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끼어들며 "있다. 있다" 하시는 거다. "뭐 엄마? 있다고?"
"그래. 거 귤 있다. 귤 먹어라."

+우리 엄마 머릿속에는 온통 귤뿐인가. 귤 좋아하는 딸 귤 먹어야 하는데 귤 귤 귤... 객지에서 못 먹던 귤 여기서라도 실컷 먹지... 안 먹고 뭐하니... 귤. 귤.. 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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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야기 세 번째!ㅡ정말 돈이 없을까요?

검사 결과 아빠의 병명은 암이었다. 뼈에 걸린 암. 이 소식을 듣고 내가 다니던 교회에 친한 언니 오빠들이 아빠 병문안을 왔다. 엄마는 와줘서 고맙다며 음료수를 꺼내신다. 열명 남짓되는 방문객들께 나누어 주시려나 보다. 나와 친한 언니 한 명이 음료수를 받기 미안했던지 "안 주셔도 돼요, 어머니. 저희 괜찮아요." 했다. 그렇지만 엄마는 계속 음료수를 꺼내신다. 와줘서 고마운 마음 이걸로 라도 표현해야 했기에. 언니는 "어머니, 정말 괜찮아요. 나중에 지혜한테 사달라고 하면 돼요."라고 다시 말했다. 이로써 모든 행동이 종료되나 싶었는데 엄마의 대답이 바로 나왔다. "지혜, 돈 없어요." 하시면서 음료수를 계속 꺼내신다. 우리 모두는 그 후 아무 말도 못 하고 받아 마시고 각자 집으로 갔다.

+우리 엄마는 이렇게 눈치가 없다. 센스가 부족하다. 그래서 그동안 아빠에게 잔소리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엄마가 좋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다. 그 이면에 있는 다른 뜻을 생각하지 않고 보이는 것 그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우리 엄마다.

에필로그ㅡ엄마 자랑 조금.
누군가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이 세상에서 역사를 통틀어 가장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한 사람씩 이야기해 보라고. 가장 선한 사람으로 먼저 떠오른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였다.
엄마가 다른 사람 욕하는 거 거의 들어본 적이 없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걸 본 적이 없다. 아빠한테 일을 영글게 못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누구보다 똑똑하신 분이시다. 똑똑하시지만 계산할 줄 모르시는 분. 이유 없이 누가 앞에서 욕해도 그저 그러지 마라 하시지 같이 욕하거나 싸우지 않는 분.
뭐든지 하나 있으면 아랫집 건넛집 저 건넛집 다 나눠주시는 분. 엄마 어렸을 때 엄마의 여동생이 심술궂어 엄마에게 따지고 화내도 엄마는 같이 화내지 않고 그냥 그 자리를 피해 도망갔다고 한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엄마를 곁에 두고 오랫동안 보고 싶어서, 같은 마을에 사는 남자에게 시집보냈다고 했다.
이런 엄마가 내 엄마라서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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