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믿었는데...
내 나이 서른으로 넘어가는 겨울 베트남행 비행기를 탔다. 그곳에 사는 오빠의 어린 두 딸들이 함께 놀 친구가 필요했다. 그리고 2년의 시간이 지나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한국에 계시던 우리 엄마는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셨다.
일흔이 훌쩍 넘은 연세에 막내딸 시집보내려고 시니어 활동을 하시며 차곡차곡 돈을 모으셨다. 제법 큰돈이 모였다. 엄마는 돌아온 나에게 해외로 또 나가고 싶으면 결혼하고 가라고 하셨다. 아주 강하게!
이제 마지막 남은 엄마의 숙제. 안쓰럽고 어딘가 미덥지 못한 철없는 딸이 믿음직한 남편을 만나 잘 사는 걸 보고 싶으셨을 것이다.
나는 엄마가 그동안 겪으신 고생과 엄마의 간절한 바람을 알기에 내 주위 사람들에게 남자 소개를 부탁했다. 귀국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아는 동생이 꽤 괜찮은 사람이 있다며 만나 보라고 하는데 왠지 마음이 끌렸다.
베트남에서 온 후로 촌스러워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신경이 좀 쓰였다. 예뻐 보이고 싶은데...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언니가 단골 미장원에 가지고 했다. 수년 동안 길들여지지 않은 내 머리를 다듬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어떤 머리 스타일이 좋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언니와 함께 버스를 타고 미장원으로 갔다. 젊고 단아하며 꼼꼼해 보이는 미용사 언니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새로운 내 모습을 보며 만족해할 것이다. 상상 만해도 좋았다.
나는 물결 파마를 원했다. 하지만 미용사 언니는 내 머리는 물결 파마가 잘 안 나오는 머리라고 했다.
'음, 그렇다면
그냥 미용사 언니 손에 다 맡기자. '
"파마해 주시는데요, 최대한 귀엽고 사랑스럽게 잘해주세요. "
하고 파마는 시작되었다.
이것저것 머리에 뭘 바르고 돌돌 감아내는 솜씨는 역시 인기 있는 미용사의 솜씨였다. 룰루랄라~
두어 시간이 흐르고 개봉박두!
나의 머리는 감춰졌던 커튼을 걷어내고 한 올 한 올 찰랑거림으로 내려온다.
꼬불거리는 머리카락이 쌓이면서 부피가 점점 커진다. 나의 반짝이는 두 눈에 근심이 어리기 시작한다. 뭔가 반전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지켜보았지만 어깨까지 내려온 내 머리는 두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부터 머리끝까지 탱글 거리는 라면 면발처럼 꼬불거린다.
나는 퍼진 라면을 좋아하는데 미용실 언니는 탱글하고 꼬들한 라면을 선호하시는 건가? 그래서 내 머리를 이리 만들어 놓으신 건가...
나는 결혼하고 싶어 찾아간 미용실에서
이미 결혼한 듯한 사람이 되어 나왔다.
2년 묵은 촌스러움을 벗어버린 날에
나는 5년쯤은 더 나이 든 아줌마를 입은 것이다.
혹 떼러 갔다가
혹을 하나 더 붙이고 온
할아버지의 마음이 이랬을까? 으아악~ 난 몰라!
나의 기대를 완벽하게 벗어난 머리를 보며 파마 하나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소개로만 날 남자와 새로운 머리 스타일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미용사 언니 앞에서 내가 너무 호들갑을 떨었나 싶었다. 자책도 해 보고 미용사 언니에 대한 원망도 해 보았다. 1대 9의 비율로.
어쨌든 나는 그 다음날 사자머리에 리본을 꼽고 만남의 장소로 갔다. 어떤 남자가 택시에서 내리는 것이 보였다. 키가 그렇게 크지 않았으며 배가 볼록 나왔다. 왠지 저 사람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의 사전에 배 나온 남자와의 소개팅은 없었는데... 다가가 보니 그 사람이 맞았다.
그때 난 생각했다. '아 이런 볼록배라니... 그냥 편한 동네 아저씨라 생각하고 만나는 거야.'
이렇게 해서 볼록배 동네 아저씨와 사자머리 아줌마가 만났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볼록배 속에 있는 넓은 그의 마음을 보았고, 그는 사자머리 너머에 있는 순한 양 같은 나의 내면을 보았다(사귀고 몇 달안에 남편은 내 안에서 또 다른 사자의 모습을 발견한 건 비밀).
그렇게 우리는 실패처럼 보이던 서로의 모습 속에서 상대의 매력을 찾아냈으며 지금도 한 집에 살면서 서로의 매력을 애써서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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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그녀는 처음 그를 만나고 며칠 후
머리 펴는 약을 산다.
그리고 꼬불 머리를 곧게 편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그 후로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파마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소리가
어느 갈대밭에서 들리고 있다는...